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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이리온 Apr 02. 2020

어느 작은 캔버스의 인상

프리다 칼로에 대한 기억

2018.08.20


어느 특별한 것 없던 날, 출근하던 새벽의 지하철 5호선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나와 함께 탔다. 워낙 이른 시간이어서 지하철은 한산했고, 특별히 서로 불편할 일도 없었다. 다만 유독 침울하고 피로해 보이는 그녀의 표정이 약간 마음에 걸렸다. 


사진 출처: gettyimages


어쩌면 사고로 최근에 장애인이 된 것일지도 모르지,


라고 제멋대로의 생각도 들었지만 딱히 이상하게 여길 정도는 또 아니었다. 그 시간에 출근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원래 그닥 밝지 않으니까. 금새 그녀에 대한 생각은 지워졌고, 빈 자리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았다.


졸다보니 금새 회사 근처 목적지에 다다랐고, 허겁지겁 내리면서 문 앞에 있던 그 휠체어 옆을 지나쳤다. 그러면서 흘낏 눈에 들어온 그녀의 아이폰 배경화면에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이 보였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 그림에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드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프리다 칼로, '가시목걸이와 벌새를 두른 자화상' (1940)




몇 년 전, 나는 서울의 소마미술관에서 프리다 칼로의 개인전을 본 적이 있다. 프리다 칼로라는 화가의 작품과 그의 일생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16세의 소녀 칼로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전차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하고, 철골 구조물에 몸이 관통당하는 중상을 입는다. 당시 멕시코의 의사 파릴 박사의 집도로 7번에 걸친 대수술을 통해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그 당시 의료기술의 한계로 그녀는 평생 고통에 시달리며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고통을 토해내듯 그려낸 그림에서는 특유의 강렬하고 섬뜩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프리다 칼로, 짧은 머리카락의 자화상 (1940)


당시 나는 미술관을 거닐며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처음으로 직접 보면서, '역시 이런 강렬한 느낌과 감정은 작은 모니터 화면으로 봐서는 느끼기 힘들지. 이렇게 미술관에 와서 직접 캔버스를 보아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이지' 라고 젠체하며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여전히 틀린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 미술관에서 거대한 크기의 작품을 두고 유화의 질감을 느낄 정도로 가까이 마주하며 보았을 때의 느낌은 완전히 다르니까.

 

하지만 때로는 휴대전화의 그렇게 작은 화면으로, 심지어 스쳐 지나가듯 본 그림 하나에서도 강렬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멍하니 플랫폼에 서서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침울했던 표정도 새삼 떠올랐다. 그녀는 매일 휴대전화 속의 칼로를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고작 이른 출근시간 따위를 인생 최대의 불행처럼 여기던 당시의 나로써는 상상도 하지 못할 삶의 고통 속에서, 그녀에게는 그 그림이 어떤 위안이 되고 있었을까. 


프리다 칼로, 파릴 박사의 초상을 그린 자화상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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