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스크 혐오
코로나-19 시대에 마스크는 생활 속 필수품이자 매너템이다. 거리에서 사람 얼굴을 보는 건 어색한 일이 되었고 길에서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을 보면 멀찍이 돌아 간다. 그런데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이 내게 다가온다면 어떨까.
정류장에서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버스 표지판을 보던 아저씨가 뒤돌아 불쑥 날 보며 물어본다.
“00번 여기서 타는 거 맞아요?”
나를 향해 뒤돈 그 사람은 마스크를 안 쓰고 있다.
흠-칫.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은 얼굴에 내 몸이 먼저 반응한다. 모르척 외면하고 싶었지만 불행히도 그는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 자리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로 다가올까 두려워 서둘러 저쪽에서 타라며 손짓으로 가리키며 그 이상 내게 다가오지 말아 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보통은 내 반응을 보면 상대방도 아차, 죄송하다며 마스크를 쓰고 지나가기 마련인데 그는 여전히 마스크를 귀에 건 채로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간다. 끝까지 마스크를 안 쓰는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저 멀리로 가고 있으니 이젠 안심이다.
‘그래.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알려드렸으니 나는 최대한의 친절은 베푼 거야. 왜 마스크를 안 써서 사람을 놀라게 해.’
라며 스스로를 위안하고 놀란 마음을 추스르던 때, 스릴러처럼 그가 가던 길을 돌아 다시 내 쪽으로 걸어온다. 한 걸음씩 가까워질수록 버스고 뭐고 그냥 집까지 걸어가고 싶었다. 그를 외면하고 도망가버리고 싶었는데 정류장에 있는 사람 아무도 그와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은 눈치다. 내 옆에 서 있는 사람은 많았지만 ‘다들 나와 비슷한 마음이겠지, 대화하고 싶지 않겠지.’라고 생각을 하니 알려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생각에 자리를 뜰 수도 없었다. 생면부지의 그가 원망스러웠다. 그는 왜 마스크를 안 써 남을 불안하게 만드는가. 나의 사정거리 안에 들자 그는 여전히 마스크는 귀에만 건 채로 똑같은 질문을 했고, 나는 아까보다 인상 쓴 얼굴로 답을 해주며 저쪽이 맞다고 다시 알려주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찝찝한 마음에 나는 마스크를 바로 버리고 평소보다 더 꼼꼼히 손을 씻었다.
정류장에서 일어나는 흔한 일상일 뿐이었는데, 내겐 너무 긴장되고 짜증 나고 불안한 3분이었다. 그 사람이 마스크를 못 쓰는 불가피한 상황까지 이해하는 여유가 있었다면 그에게 정중하게 마스크를 쓰고 얘기해달라며 친절하게 말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마스크를 써달라는 부탁이 되려 그와의 언쟁으로 이어진다면? 그래서 그와 더 얽히기라도 한다면? 마스크를 둘러싼 실랑이는 뉴스에서도 보았다. 이런 상상을 하는데 까지 1초도 걸리지 않았고 얄팍한 친절함으로 그와 원만하게 이 상황을 모면해버리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결국 나는 진짜 친절을 베풀지 못했다.
나는 불안했고 그가 미웠다. 마스크를 안 쓴 모습을 보는 순간 내 안의 생존본능이 앞섰다. 그리고 내 안의 생존본능은 순식간에 너무나 쉽게 타인에 대한 혐오로 이어졌다. 아무튼, 마스크를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