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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Sep 09. 2023

신이 내린 열매, 감람 혹은 올리브


넷플릭스 다큐 ‘풍미원산지’를 보면 중국 차오산 지역에서 다양한 요리에 쓰인다는 감람 열매가 소개된다. 차오산 현지 사람들은 감람 열매를 즙으로 짜서 마시기도 하고, 절여서 반찬으로도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아마 성당이나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감람이라는 이름이 꽤 익숙할 것이다. 대추야자를 종려라고 했던 것과 비슷하게, 성경이 아시아에 전해지면서 올리브라는 이름은 외양이 닮은 감람으로 대체됐다. 실제로 중화권에서 감람 열매의 영문 표기는 'Olive’이고, 올리브유는 한자로 감람유(橄欖油)라고 불린다. 그럼 두 식물은 같은 종류인 것일까?


분류상으로 보면 감람은 감람나무과, 올리브는 물푸레나무과 식물로 그 계통이 다르다.  다만 두 나무의 열매는 그 생김새가 무척 비슷한데다 초록색과 검은색 두 종류가 있는 것, 반찬부터 절임까지 다양한 조리법이 있는 점 등 공통점이 많다. 다만 올리브는 특정 지역에서만 소비되는 감람괴 달리 고대부터 광범위한 지역에서 사랑받아온 작물이다. 올리브 기름은 식용 뿐 아니라 미용, 약용, 등불을 켜는 것 등 그 쓰임새가 무궁무진했다. 


성경을 보면 방주를 타고 떠돌던 노아는 비둘기가 물고 온 올리브 나뭇가지를 보고 신의 심판이 끝났으며 육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때부터 비둘기와 올리브는 평화의 상징이 됐다고 한다. 또한 그리스 신화에서 아테네 시민들은 말을 선물한 포세이돈 대신 올리브를 준 아테네 여신을 도시의 수호신으로 받들게 된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올리브가 종요로운 열매였다는 의미다. 


올리브는 인류가 최초로 대량 재배한 과수로도 알려져 있다. 중동의 8000여년 전 ‘가슐’이라는 곳의 도시 유적을 보면 올리브를 재배한 흔적이 있다. 당시 사람들은 올리브 과수원에 수로를 건설하는가 하면 기름을 담기 위한 도자기들도 만들었다. 올리브가 생산되는 지역에서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상업이 발달하게 된다.


올리브를 처음 맛본 사람이라면 이 씁쓸하고 낯선 향을 지닌 열매가 그토록 쓸모가 많다는 사실이 잘 와닿지 않을 것이다. 특히 막 나무에서 딴 올리브는 그냥 쓴맛만 난다. 고대인들은 우연히 바닷물에 빠진 올리브 열매가 생 열매와 다르게 쓴맛이 빠지고 더 맛있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소금과 식초 등으로 양념한 올리브는 고대 이집트에서 처음 시작됐다고 하며 오늘날에도 올리브는 절여서 먹는 것이 국롤이다. 


올리브 기름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다 보면 말 그대로 심심할 만하면 등장한다. 아폴론과 히야킨토스는 올리브유를 온몸에 바르고 운동을 함께 즐겼다. 고대 올림픽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에게도 올리브유는 필수품이었고, 신들에게 바치는 성유로도 쓰였다. 그리스 도시국가 시민들은 빵과 올리브, 양파를 주식처럼 먹었다고 한다. 


성경 속 올리브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러나 나는 하느님 집에 있는 푸른 올리브 나무 같아라. 영영세세 나는 하느님의 자애에 의지하네.(시편 52,10)" 같은 구절을 보면 알 수 있다. 구약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바로 왕위 계승권을 받은 다윗 왕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한 올리브유는 축복과 각종 제례에 쓰이는 성물이기도 하다.  


이슬람교에서도 올리브나무는 신성한 존재로 취급된다. 남유럽과 같은 지중해성 기후를 공유하는 중동에서 가장 기르기 쉽고 흔한 작물인 올리브가 중요한 음식이 된 이유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올리브와 올리브유는 신이 허락한 할랄 식품이며 아라비안나이트 같은 민담에도 빈번하게 등장한다. 또한 올리브가 가진 녹색은 중동권 각 나라의 국기에도 사용되는, 이상향을 상징하는 빛깔이기다. 


유럽에서 주로 사용하는 식용유를 보면 알프스 이북에서는 버터를, 남부에서는 올리브유가 대세다. 우리나라의 고추 마늘처럼, 이 지역 사람들은 올리브 열매와 올리브유를 거의 모든 요리에 사용한다. 짭짤하게 절인 올리브는 장아찌, 김치만큼이나 매끼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가장 질이 좋은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는 한국의 참기름처럼, 각종 음식에 고급스러움을 더하는 재료다. 


심지어 컵에 담긴 올리브유를 요리에 통째로 붓거나 아예 마시는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다. 더위를 이기고 스태미너를 키우는 데 그만이라고 한다. 현지의 고급 올리브유를 맛보면 풀향이 강하고 삼킬 때 매운맛이 감돈다. 쉽게 친해지기 힘든 맛이지만 익숙해지면 중독성도 강하다. 인도인들에게 우유로 만든 기버터가 신성한 음식이듯, 유럽과 중동에서 올리브유는 신이 내린 선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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