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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Mar 19. 2024

요리왕 비룡은 일본계 중국인?

같은 음식을 둔 한국과 일본의 다른 해석

오래전 중국 베이징의 한인촌 왕징에 머물 때였다. 동네 옐로페이지를 뒤적이다 재미있는 문구 하나를 발견했다. 중화요리(중국요리가 아니다!)점 광고에 "한국에서 ~년간 수련하고 온 요리사"라고 쓰여있는 것. 그러고보니 실제로 중국에서 한국식 짜장면과 짬뽕은 거의 남의 나라 요리 취급이다. 


귤이 회수를 넘어가면 탱자가 되듯, 국경을 넘어간 음식들은 다양한 변형을 겪으며 진화한다. 이탈리아의 파스타와 피자가 그렇고, 멕시코 요리도 북미로 전해져 고기와 사워크림이 듬뿍 든 텍스맥스로 변형됐다. 이 중에서 특히 극단적인 베리에이션을 보이는 요리는 중국요리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각국의 입맛 차이 외에도 전세계에 흩어진 화교들의 출신 지역이 제각각이라는 데 있다. 


가령 구한말부터 우리나라에 정착해 살았던 화교들의 출신지는 대다수가 산둥 지역이다. 산둥성 향토요리인 '작장면'이 한국식 중화요리를 대표하는 짜장면이 된 것은 결국 우연이 아닌 셈. 한편 짬뽕이 전해진 경로는 좀 더 복잡하다. 이는 중국집에서 뜬금없이 일본식 단무지를 내놓게 된 원인과도 통한다. 짬뽕의 기원은 중국도, 한국도 아닌 일본 나가사키다. 중국인 사장이 가난한 동포 유학생들을 위해 남은 재료들을 때려넣고 만든 '사라우동'이 밥을 먹는다는 뜻의 중국어 '吃饭(니취팔러마?)'이라는 명칭으로 변경되고, 다시 '짬뽕'이라는 발음이 됐다는 게 유력한 썰. 


하얀 닭고기 육수 베이스였던 '찬폰'은 한국으로 건너와 매운맛 패치를 거쳐, 오늘날의 새빨간 국물을 지닌 짬뽕이 됐다. 그리고 일본식 짬뽕을 만든 요리사는 중국 남쪽 지방의 푸젠성 출신이다. 국부천대 때 대만으로 건너간 본성인들도 상당수가 이곳 사람들이고, 또 일본의 화교들은 대만과 푸젠성을 고향으로 둔 이들이 절대다수를 이룬다. 따라서 비슷한 시기에 같은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중화요리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진화할 수밖에 없었던 것. 서두가 길었는데, 아무튼 우리에게는 꽤 낯선 존재인 일본식 중화요리가 MZ세대들 사이에서도 유행하기 시작했고 을지로3가 '지유켄'이 바로 일본식 중화요리를 표방하고 있다.

차항과 마파두부. 두부는 매일 아침 초당에서 공수해 온다고 함.

굽는 정도가 살짝 아쉬웠던 교자

일본라멘의 기원이라는 중화소바. 맑은 육수의 퀄이 꽤 훌륭하다.


한국식 중화요리와 비주얼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만 일단 마파두부의 경우, 순두부를 사용하고(일본에서는 연두부가 기본) 산초(초피)양념이 추가됐다. 고추장을 사용해 뭔가 니맛도 내맛도 아닌 한국 마파두부보다는 오리지널에 조금 더 가까운 셈이다. 칼칼함을 살린 지유켄과 달리 일본에서 맛봤던 마파두부는 매운맛이 덜하고 대신 단맛이 추가됐다. 중화요리로 유명한 나가사키의 경우 기본적으로 간을 달게 하는 편이라 몇년 전 방문했던 중식당의 메뉴들은 내입에는 좀 과하게 달았던 기억이 난다. 


군만두인 교자도 일본에서 사랑받는 중화요리의 대표주자격이다. 다만 한국과의 차이는 직접 반죽한 만두피를 사용하는 등 공이 엄청나게 들어간다는 것.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가 군만두 맛만으로 중국집을 알아낼 수 있었던 이유는 만두가 일본식 중식당에서는 일종의 시그니처와 같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제대로 만두를 빚어 파는 가게들이 없지 않았었는데...이연복 셰프가 일본에 체류 후 돌아왔을 때 공장제 튀김만두를 서비스 메뉴로 제공한다는 걸 알고 망연자실, 아예 만두를 접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육식을 금지한 영향인지 일본인들 중에는 고기소 듬뿍 들어간 만두에 진심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각 지역마다 명물 만두가 있는데 오사카의 551 호라이만두는 오픈런을 해야 할 정도의 인기 메뉴이고, 하마마츠와 우츠노미야 등이 교자로 유명하다. 특히 여름철에는 차가운 맥주와 함께 즐기는 '히토구치(한입) 교자'가 별미로 꼽힌다. 녹말물을 뿌리고 팬 뚜껑을 덮어 바닥은 바삭~하게, 윗부분은 물만두처럼 촉촉하게 만드는게 포인트. 푹신한 찐만두에 달달하게 조린 동파육을 넣은 '부타만'도 일본에서 맛봐야 할 요리 중 하나다.


한편 일본 하면 떠오르는 요리를 한국인들에게 묻는다면 많은 이들이 '라멘'이라고 말할 것이다. 나름 국민 메뉴인 셈인데 의외로 일본에서는 라멘을 '원조' 일본 요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라멘은 중화요리"라는 인식이 일반적이고 그런 면에서는 한국의 짜장면과 포지션이 비슷하다. 하기야 라멘 육수는 메이지 유신 전까지 일본인들이 먹지 않았던 '고기'를 기본 재료로 하고 있다. 가장 흔한 재료는 닭육수인데 도쿄 등 간토 지방에서는 여기에 간장, 간사이에서는 미소로 맛을 낸다. 돼지뼈를 푹 우려내 뽀얗고 끈적하기까지 한 돈코츠는 라면계에서는 비교적 뉴비에 해당한다. 라면 위에 올라가는 고명 차슈 역시 중국식 조리법을 사용하는 음식이다. 심지어 인스턴트 라면을 고안한 안도 모모후쿠는 대만 출신의 화교다. 


요리 배틀 만화 중 아마 가장 친숙한 작품을 꼽자면 오가와 에츠시 원작의 '요리왕 비룡'이 있다. (원제는 신 중화일미) 19세기 청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특급주사 비룡이 만들어내는 요리들은 거의 모두 일본식 중화요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즉, 음식 고증 따위는 애초에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만화라는 것. 만화 속 메뉴를 간접체험하고 싶다면 중국 본토가 아닌 요코하마나 나가사키의 차이나타운을 찾을 것을 권한다. 어쨌든 오리지널과는 몇 광년이나 멀어진 중화요리지만 각 나라의 문화와 취향이 반영되고, 나름의 역사적인 스토리텔링도 존재하는 중국요리 아닌 중화요리는 우리에게 흥미진진한 맛의 세계를 제공하고 있다. (다음번엔 미국식 중화요리, 판다 익스프레스를 방문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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