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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Jun 28. 2019

지경사 시리즈와 한밤중의 파티

진저에일, 정어리, 페퍼민트크림의 맛은?

나는 80년대말 무렵에 유행했던 지경사 시리즈를 읽고 자란 세대다. 소녀 취향의 가벼운 소설들로 채워진 이 책들이 일본에서 건너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꽤 나중의 일이다. 한국 작가의 작품이나 안나 파블로바의 전기 같은 것들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영국의 기숙사 학교를 배경으로 한 성장물이었다. 그 중에서도 말괄량이 쌍둥이 시리즈는 두 자매가 1학년에서 6학년이 될 때까지 꽤 길게 연재됐다.


영국 배경의 작품이 많았던 건 아마 그시절 일본 소녀들이 열광하던 캔디 캔디나 작은 숙녀 링 같은 애니의 영향이 아닐까 추측되는데 사실 지금 읽어보면 시대가 시대인지라(?) 의아한 설정이 종종 나온다. 가령 신입생이 상급생들의 방을 청소해 주는 등 시다바리를 한다거나, 학생들의 용돈을 전부 걷어서 책 한권 사기도 빠듯한 20센트씩만 지급한다거나 하는 식....(심지어 규정을 어긴 학생을 전교생 앞에서 인민재판하기까지 한다. ㄷㄷㄷ)


그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소재를 꼽자면 매년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한밤중의 파티가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영미권에서는 여자들끼리 한밤중에 파자마 입고 모이는 파티가 꽤 흔한 문화인 모양이다. 문제는 학교에서 금지를 하다 보니 파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소동이 발생하는데, 이게 나름 재미 돋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1학년들끼리 처음 모인 파티에서는 교내에 연쇄 절도 사건(?)으로 흉흉한 가운데 평상시 짠돌이로 유명한 친구가 값비싼 케이크를 사와서 아이들을 놀라게 한다. 음주(실제로는 술이 아니라 무알콜 샴페인이지만) 가무를 즐기는 와중에 거울이 와장창 깨지는데, 평상시 학생들에게 호구 취급 당하던 선생님이 하필 그날 불침번이었고 다 알고서도 시크하게 넘어가자 그녀를 보는 아이들의 시선도 바뀌게 된다.


그런가 하면 2학년들이 주축이 된 파티에서는 생일을 맞은 선배가 소시지까지 굽는 등 혜자로운 음식들을 준비하면서 기대를 모으지만 평상시 고자질장이라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던 소녀가 제일 무서운 불어선생님에게 밀고를 하면서 한창 흥겨운 타이밍에 파토가 나고 만다.  학생들의 숨기기 내공도 나름 연차가 올라가며 쌓인 탓인지 상급생이 돼서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완벽한 파티'를 여는 데 성공한다.


파티 장면에서 특히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당연하게도(!) 각종 음식들이다. 냄새 나는 음식을 조리하기는 어렵다 보니 과자나 케이크 종류가 대부분인데 개중에는 처음 들어보는 메뉴도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일본판을 그대로 옮겨온 탓에 오역도 상당했던...) 티타임에 하나씩 감춰둔 빵에 정어리 통조림(써딩이라는 발음으로 표기...)을 넣어 샌드위치를 만드는가 하면 프루츠케이크, 진저케이크, 가당 연유, 페퍼민트크림 등등등.... 생강으로 만들었다는 진저에일이란 음료도 생소했다.


한밤중의 파티 때 나오는 음식은 아니지만 기말파티나 라크로스 경기 때도 진수성찬이 펼쳐진다. (영국 아니랄까봐) 홍차에 매쉬포테이토, 소시지, 그레이비, 스콘 등이 가득이었다는 묘사를 보니 호그와트에 입학한 해리 포터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든 신입생 환영파티가 연상되기도 한다. 어쨌거나 한밤중의 파티가 갖는 진짜  묘미는 은밀한 일탈이 주는 스릴에 젓가락만 굴러가도 웃음이 나온다는 사춘기 소녀들의 감성에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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