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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Apr 09. 2019

'동백 아가씨'가 사랑한 과자의 정체

오페라 글라스, 동백꽃 한다발, 그리고 포도 설탕절임

우리나라에는 '춘희'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소설 'La Dame aux camélias'에는

'설탕절임 건포도'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옛날에도 지금처럼 먹을것에 대한 궁금증이 엄청났던 나는

정작 남주 아르망이 마르그리트의 신분을 알고는 대놓고 실망하는 장면보다는 그녀가 가장 좋아한다는

그 과자에 먼저 관심이 갔다. 오페라 글라스와 동백꽃 한다발, 그리고 설탕절임 건포도가 바로 당대를

풍미한 파리의 고급 콜걸 마르그리트의 상징이었다고...



지금처럼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닌데다 불어도 할줄 모르다 보니 어린 나는

멀쩡한 건포도를 설탕에 부비부비 해보는가 하면 불을 붙여서 큰 사고를 칠뻔도 했다. 조금 나이가 든 이후엔

안그래도 달디 단 건포도를 설탕에 절인다는 게 이해되지 않아 혹시 오역이 아닌가 상상을 하게 됐다.

나중에 읽은 다른 판본에는 또 생뚱맞게 '포도사탕'이란 표현이...


우리나라에 아몬드가 수입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990년대이고, 그 이전 외국 문헌에 등장하는 아몬드는

'편도'라는 이름으로 번역이 됐다. 그래서 나는 혹시 마르그리트가 좋아했다는 그 과자가 실제로 19세기

프랑스에서 유행했고, 설탕을 입힌 아몬드를 소재로 한 '프랄린'을 가리키는게 아닌가 추측해 봤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를 배경으로 한 에밀 졸라의 소설 '나나'에도 바로 이 프랄린이 나온다.)


당장 비주얼을 상상해 보더라도 우아하게 드레스를 차려입은 사교계의 여왕이 즐겨먹는 과자가 쭈글쭈글한

건포도일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양주가 든 트러플 초콜릿이나 고상한 단맛을 지닌 아몬드가

훨씬 잘 어울리지 않나...?


최근까지도 궁금증을 풀지 못한 나는 결국 안되는 불어로 구글검색을 했고, 마침내 마르그리트의 '최애'

과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바로 아래의 이녀석이다.



이 과자의 이름은 'raisins glaces', 직역하면 얼음 포도로 대륙의 빙탕후루와 비슷한 느낌이다.

건포도란 번역이 나온건 아마 raisin이 영어로 건포도여서 나온 혼동 같고...

암튼 결론은, 번역가는 열일 했음.


설탕이 귀했을 19세기에 생과일을 절여서 먹는 과자는 상당히 고급품이었을 것이다.

밤을 설탕물에 졸인 마롱 글라세는 심지어 만들다 부서지기 쉽다 보니 더더욱 비싸진다.

(리틀 포레스트에 나온 밤껍질 조림보다 한 단계 난이도가 높다고 보면 됨)

제삿상에 올리는 생밤 치듯 깎으면 절대 제 모양이 안나오며 살짝 삶아서 가닥가닥 붙은

섬유질 껍질까지 일일이 제거해야 하는, 하다보면 쌍욕 나오는 공정이 수반된다.


생과일의 풍미를 그대로 간직하면서 단맛까지 업그레이드한 설탕절임은 오늘날에도 사랑받는다.

산사나 딸기에 물엿을 발라 굳힌 빙탕후루는 말이 필요 없는 중국의 국민간식이다.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생강과 감귤, 자두 등을 설탕에 절인 과자도 꽤나 고급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보니 과일에 당분을 넣어 조린 한과도 있다. 도라지, 연근, 살구에 꿀과 물엿을 첨가해 만든

각종 '정과'가 그것이다. 심지어 산딸기로 만든 정과는 드라마 '대장금'에까지 등장할 정도...

새콤한 살구의 향이 살아있는 살구정과는 특히 매력 있는 아이템이지만 안타깝게도

시중에서 제대로 된 정과를 맛보기는 쉽지 않다.


청년 아르망이 바라본 마르그리트는 동백꽃에 둘러싸여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살기 위해 가면을 쓰고 웃어야 했던 그녀의 존재는 마치 달콤한 설탕옷 밑에

시큼한 속살을 숨겨야 했던 과일과 같은 게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는 순정파와 거리가 멀었다는, '마농 레스코'와 닮은 마르그리트의 실제 모델

마리 드프레시스의 삶에 대해 더 탐색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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