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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준희 Apr 19. 2020

1. 17년 전 계획하지 않은 유학의 시작

팔자에도 없는 조기유학생이 되다

내 부모님은 원래 나를 유학시킬 생각이 전혀 없으셨다. 내 부모님은 별로 교육열이 높지 않았고, 공부를 잘하거나 열심히 해야 한다고 가르치신 적도 없다. 부모님이 나를 위해 그린 그림은 무던하게 자라서, 웬만한 대학에 가서, 비슷한 가정에서 무난하게 자란 남자와 결혼해서 전업주부로 사는 것이었다. 나는 일하는 여성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혹시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결혼하기 전에 잠깐 다니는 직장 정도를 상상하셨을 것이다. 당연히 내 유학은 전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그리고 나도 공부를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고 어느 것 하나 두각을 나타내는 것 없이 방에 틀어박혀 '아싸' 기운만 물씬 풍기는 아이였다. 말이 없고 친구도 별로 없고 음침했던 나에 반해 우리 오빠는 외모도 성격도 뛰어나게 좋은 '인싸'였다. 오빠는 중학교 때 이미 어른의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 당시 유행하던 귀여니의 웹소설 주인공 남자들처럼 화려했고 옆 학교들에서도 유명했다. 프리첼에 팬클럽도 있을 정도였다. 눈에 띄는 오빠가 선배들한테 폭행을 당하는 등 이런저런 작은 사건들에 휘말리게 되자 부모님은 오빠가 불량한 친구들을 사귈까 봐 서둘러 유학 보내셨다. 그러나 고기도 냉동 아닌 냉장고기만 먹였던 애지중지하는 오빠가 미국에서 날이 갈수록 초췌해지는 게 너무 가슴 아파서 우리 가족은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오빠가 유학을 시작한 지 1년도 안돼서 엄마가 미국으로 건너가 오빠를 직접 뒷바라지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엄마가 미국으로 가게 됐기 때문에 나도 1+1으로 따라오게 된 것이다. 이렇게 순전한 우연으로 나는 유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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