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교화는 고양이로 이루어진다.
“언니는 살면서 두 번 거듭난 거 같아. 처음엔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리고 얄리를 만났을 때. “
얼마 전 통화 중에 얄리와 하루라도 더 살 수만 있다면 나는 기꺼이 얄리 똥도 매일 먹겠노라고 한 나의 말에 친한 동생이 한 말이다.
3년 전 얄리가 처음 우리 집에 온 날 남편은 나에게 “You are the mommy now.”라고 말했다. 아이 없이 남편과 단출하다 못해 고요한 내 인생에 큰 돌 하나가 쿵 하고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당시 작고 말랑한 이 이쁜 것을 내 품에 꼭 안고야 말겠다는 욕망과 평생의 책임이라는 무게를 곱씹고 다짐하느라 내가 mommy가 된다는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순간 멍해졌었다.
나는 바늘로 찔러도 진물 한 점 안 나온다는 INTJ에, 살짝 간지러운 장면이라도 나오면 채널을 즉시 돌려버릴 만큼 간지러운 것들을 병적으로 거부하는 환자이다. 진지하게 심리상담을 받을 만큼 얼음장이고 마음의 벽이 두텁고 높은 사람이다. 거기에 늦은 나이게 시작한 공부로 인해 차도가 없는 우울증 약까지 복용 중이었다. 이런 내가 이 간지럽고 보드라운 작은 생명체로 인해 콘크리트같이 단단하게 쌓아온 내 정체성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 일종이 선전포고와도 같았다. 탄도미사일이 떨어질 거지만 죽지 않고 괜찮을 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무게였다.
얄리가 집에 온 후 일주일쯤 지났을 적 나도 모르게 ”Yally, come to mommy.”라는 말이 무방비로 터져 나왔고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었다. 그리고 드는 생각이 내가 너무 사람에 질려하고 은둔만을 고집하니 하나님이 꾀를 내어 이렇게 나를 녹이시나 싶었다. 가만히 잘 계신 하나님 핑계를 대며 마음의 완충제라도 삼지 않고서는 변화를 받아들이기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얄리는 작고 약했던지라 병치레가 잦았고, 응급실 문턱을 넘어 대느라 나의 이질감은 개나 줘버릴 사치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를 의지하는 이 작은 솜뭉치를 너무도 빠르게 사랑하게 되었다.
“엄마가 전 재산을 팔아서라도 너 안 아프게 해 줄게. 엄마만 믿어! “
나는 이렇게 엄마가 되었고, 내 안 깊은 감옥에서 서서히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옴뫄 놔~ 우리 얄리 똥도 이뿌게 싸네~ 아유 이뽀랑~ 하트 뿅뿅~ <3“
단단한 콘크리트를 깨고 굳게 잠겼던 나의 철창문을 스스로 열고 나오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무서운 사람도 없고, 두려운 관계도 없고, 여전히 재수가 많이 없는 그런 독한 년이지만, 그래도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 얄리부터 목청 높여 부르며 내 안의 단단한 것들을 벗어던진다. 그리고 얄리와 뒷마당으로 뛰쳐나가 참으로 행복한 시간들을 보낸다. 매일밤 잠결에 벌떡 깨서 혹여 얄리가 이불을 차고 자지는 않는지 확인하고 다시 잠에 들기도 한다. 나보다 얄리를 더 사랑하는 남편이 용서가 되고, 만약 집에 불이 나면 얄리랑 얄리 사진첩을 먼저 들쳐업고 뛰어나가리라 결심을 한다. 남편에게도 얄리 먼저 구하라고 오래전에 이미 말을 해뒀다. 사랑이 넘쳐 병이 될 지경이다.
인생에는 수많은 문들이 있고, 다행히도 이 신중이는 행복한 문을 잘 골라 열었다. 그 문을 열기까지 많은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지만, 그 문을 열고 얄리를 만난 것은 내 생에 잘한 일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비몽사몽 아침잠에 깨어 느끼는 첫 감정이 행복이라는 것은 정말 커다란 축복이다. 막 침대에서 내려온 나의 다리를 보드라운 털로 인사하는 얄리덕에 나는 매일 아침이 행복하다. 참으로 축복받은 인생이다. 얄리를 쓰다듬으며 스스로에 늘 말한다. 오늘이 제일 행복하다고… 그리고 내일도 행복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