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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feel co Nov 07. 2023

인도네시아에 살며 내가 얻은 것

불평같지만 내가 얻은것.


주말에 문득 남편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나 : "여보. 여보는 이곳에 살면서 얻은 게 모야?"

남편 : "얻은 거?"

나: "얻은 거, 배운 거, 변해서 좋은 거 뭐 이런 거"

남편: "글쎄.."




 선진국에서 태어나 나고 자란 내가 개발도상국에서 살아보는 것. 그것은 나를 여러모로 바꾸어 놓았다. 인생에서 바꾸고 싶었던 면이었는데 환경이 바뀌니 어찌어찌 바뀌게 되었다. 그것은 무엇일까?


1. 바퀴쯤!

동남아시아에서 벌레란? 한국에서는 모기, 개미, 매미 정도의 벌레를 봤다면 이곳에서는 곤충집에서 봤을법한 다양한 벌레들이 이곳저곳에서 등장한다. 고층아파트에 살지만, 가끔 어디서 들어왔는지 찍짝(작은 도마뱀)이 토스트기 아래에서 발만 빼꼼히 내놓고 있던 적도 있었다. 토스트기 아래만 그럴까? 갑자기 등장해서 나를 놀라게 한 적이 종종 있다. 아파트 산책하다가 내 주먹만 한 달팽이를 밟은 그 느낌은 여전히 잊지 못한다. 통통한 지네도 자주 본다. 그 외에 이름도 모를 벌레들이 많다. 바퀴쯤은 잘 안 보일 뿐이지 언제든 등장 가능한 벌레다. 개미는 어떻고? 한국에서 봤던 개미는 귀엽지, 이곳 개미는 내 발등에 올라와 어쩌니 무는 지 따가워서 깜짝 놀라곤 한다. 동남아에 살면서 웬만한 벌레와 파충류에 놀라지 않는다. 아파트에 두꺼비도 등장한 적도 있고, 우기 때는 하수구로 커다란 뱀이 들어온 적도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벌레라면 나와 내 아이들 다 놀라곤 했지만, 이제 벽에 붙어있는 아기도마뱀은 귀엽고 10cm 되는 지네가 지나가면 구경한다. 


2. 청결은 잠시...

사실 나는 한국에서 길거리 음식은 잘 먹지 않았고, 조금이라도 이곳이 청결하지 못하다고 느껴지면 아무리 맛집에서 밥을 먹어도 소화가 안되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살이 3년 차,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오면 그냥 머리카락 나온 부분의 음식을 긁어서 버리고 먹는다. 이런 상황은 5성급 호텔이라고 다르지 않다. 아이들 방학 때 종종 가던 호텔의 조식의 접시가 깨끗한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외식을 할 때 그래도 깨끗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식당에 가서도 종종 음식에서 이물질 나올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과

"우리가 눈으로 봤다와 안 봤다의 차이일 뿐이지, 뭐 얼마나 다르겠어"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아마도 키친 안으로 들어가서 그 광경을 보면, 인도네시아에서 외식을 절대 못할 거다. 얼마나 외부환경이 믿을 곳이 못된지, 이곳에서는 집에서 만들어서 음식을 파는 것이 보편화돼 있고 그것을 '청결하고 건강하고 믿을 수 있다'로 인식되어 있다.(한국에서는 주거지 집에서 음식을 파는 것은 불법이다.) 음식 외에도 5성급 호텔의 청소상태도 그저 그럴 때가 있다. 하수구 냄새, 이불에 오물 자국은 기본이다. 개미가 줄지어서 호텔방을 통과하는 것도 기본이니까, 발리에 가실 때 개미약 들고 가는 거 정말 추천한다.

지금의 나는 한국 길거리 음식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고, 한국 어디 식당을 가도 이제는 꺼림칙하다는 느낌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한국의 어느 숙소를 가도 숙면을 한다. 인도네시아보다는 깨끗함에 신뢰를 하니깐!


3. 예상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아.

일처리 속도. 아마도 외국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한국이 세계최고라는 것을 알 것이다. 노트북이 고장 나서 AS를 맡겼는데 한 달이 지나도록 받지 못해서 기술자에게

'노트북 안 고쳐도 좋으니 제발 내 노트북만 돌려줘' 

라고 몇 번을 메시지를 보냈는지 모른다. 일본엄마는 가죽신발 전문점에 본인의 신발 고치는 것을 맡겼는데 그 신발집에서 신발이 없어졌다고 하고 무책임한 태도로 나오다가, 일본엄마가 매우 화를 내자 갑자기 그 신발을 찾았다고 연락이 오기도 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어?' 하는 상황들이 비일비재 하지만, 그럴 때마다 화를 내면 손해 보는 건 '나'이다. 노트북은 고쳐지지 않았지만 다시 돌려받아서 다행이고, 집에 문제 생긴 것이 해결되기까지 오래 걸렸지만 해결이 돼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그렇게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AS 맡겨서 안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여기서는 괜찮았던 물건도 고장 나서 올 수 있으니까...




이곳에 오기전에 나는 예민하고, 예상치 못했던 일을 힘들어 했는데,  조금은 둔해지고 느긋해진 내자신을 발견할때 기분이 좋다. 아마도 한국에 있었으면 나에게 주어진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좋은 건지 몰랐을 텐데, 이렇게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나는 조금 더 성장했다. 누군가는 굳이 경험하고 싶지 않기도 하겠지만, 서울 도시에 살면서 너무 계획된 틀 안에 갇혀 살다가 여러 벌레도 만나고, 조금은 덜 청결하고, 예상대로 되지 않는 문제들을 직면할 때 '괜찮아' 하고 태연하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 나는 주재원 생활을 하며 가장 크게 얻은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가서 나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함을 모르고 무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때 다시  내 브런치글을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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