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我怡)'에게 보내는 팬레터] #06

서른에 멈추지 않고 흘러가기로 한 너에게

by Selah

안녕 아이야,

오늘 햇살이 말랑해서 5분이라도 햇볕 샤워를 해주면 축축했던 기분이 참 바싹해질 것 같은 날이야.


새해 시작은 1월이긴 한데, 진정한 시작은 3월이지 싶은 느낌이 살짝 있어. 학창 시절에는 방학이 끝나고 개학하는 3월이 늘 시작이라 그런가 싶었거든. 근데 가만 보면 1~2월은 12월에 입던 겨울옷을 계속 입는 추위가 이어지잖아. 그 추위가 3월쯤 되면 사뭇 햇볕도 포근하게 느껴지면서 자연과 사람들이 옷갈이를 시작하고, 바람의 향기도 푸릇하게 바뀌어 가는 걸 오감으로 느끼게 되니 그런 게 아닐까 싶어.


아이야, 사실은 오늘 햇볕 샤워를 하는 도중에 문득 학창 시절 네가 딱 서른 살까지만 살겠다고 했던 게 생각났어. 만약 정말 그랬다면 지금쯤 이 편지들은 하늘나라로 보냈겠지. 곧 마흔을 앞둔 요즘, 그 생각은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네. 그때 그 시절의 삼십대는 우리들에겐 거대하고 대단한 어른으로 보였잖아. 부모님, 선생님, 삼촌 이모들... 전부 그때쯤이었을 테니 말이야.


네가 그랬지.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이십대를 활활 불태우고, 딱 서른 살에 마무리하면 괜찮지 않아? 왠지 그 이후 삶은 너무 고단해 보여." 마흔을 코앞에 둔 사십대를 맞이하려는 너는 왜 하필 딱 서른 살이라 정했을까. 네가 한 말로 이유를 유추해 보자면, 아마 너무나도 잘 살고 싶은데 자신이 없어서 '어른'이라는 무게를 내려놓고 도망가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네. 이제는 인간의 평균 연령이 백세 시대를 지나 백이십 세 시대라는데, 네 삶이 서른까지였다면... 어휴. 너무 아니다 싶지 않니? 상상하니 마음이 너무 먹먹해졌어.


예전에, 오늘 딱 하루가 버겁던 시간들을 지나올 때 말이야. 주변의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그랬잖아. '아프니까 청춘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하는 거다. 고생이 결국 다 자산이다. 고생한 애들이 나중에 잘 산다.' 등등.

정말 온 진심을 다해 넌 너무나도 듣기 싫어했지. 얼굴이 완전 벌게져서는 "아니, 그게 위로야? 아님 뭐 충언인가? 본인들이 잘났다고 자랑하는 건가? 와... 나 진짜 순간 '너나 잘하세요'라고 대답할 뻔!!"이라며 씩씩거렸지.


지금에 와서 그 말들을 '어른들'스럽게 해석해 보자면, 단순 '고생해라'라기보다는 '극복해봐'를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왜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처럼 말이야. 사실 말이야 쉽지, 고생이란 긴 터널 한가운데 홀로 서 있을 땐 그저 앞이 잘 안 보이고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는 걸 그들은 몰랐던 걸까, 아니면 모르고 싶었던 걸까.

그래서일까, 우리는 타인의 고생을 한낱 '자산'이라 함부로 말하지 않는, 조금 더 사려 깊은 위로를 건네는 어른이 되고자 부단히 애쓰는 중이기도 해.


아이야. 네게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냐'고 물었던 거 기억나? 왜 누구나 인생에 한 번쯤 겪는 황금기나 전성기 같은 거 있잖아. 내심 네가 왠지 이십대로 돌아가고 싶어 할 거라 생각했거든. 후회, 그리움 또는 아쉬움이 남아 있을까 싶어서.

그런데 너는 단단하고 차분하게 대답했어.


"아니, 돌아가고 싶은 시절 전혀 없어. 너무 후회 없이 잘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다시금 그 고단했던 시기와 시절을 반복하고 싶지 않거든. 그냥 지금도 괜찮아. 그리고 앞으로는 더 좋아질 것 같아."

"그래? 한 번쯤은 이십대로 돌아가서 청춘을 불태워보는 삶 살아보고 싶지 않아? 못 해봤잖아."

"글쎄... 그럼 오늘의 나는 없지 않을까? 지금보다 더 괜찮은 내가 될 수 있었을까. 아닐 것 같아. 결국 나는 내가 데리고 돌보며 살아가야 하는데, 지금도 충분히 괜찮거든."


지금도 괜찮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네 삶과 마음에 난 또 한 번 반했어. 사실 그렇잖아. 오늘은 너무 괜찮다 싶다가도 다음 날이면 한없이 무너지고. 마음먹은 일은 뭐든 다 해낼 것 같다가도 억장이 무너지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기도 하는, 그런 매 순간을 지나가고 있잖아. '뭐해? 잘 지내? 별일 없고?' 인사가 어떤 날은 너무 반가워 한달음에 전화를 걸다가도, 또 어떤 날은 '뭐지? 약 올리나? 할 말 있나?' 하는 삐딱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거.


어릴 때 기대한 어른은 뭐든 다 품어주고 이해해 주는 모습이었지. 그래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어른들에게 질려서 미움만 한가득이었잖아. 하지만 지금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주어진 책임과 책무를 묵묵히 해내며 나 자신을 잘 돌보고, 그런 내가 다시 주변을 살피는 사람이 아닐까 싶어.


바람이 불 때 뻣뻣하고 완고하게 버티지만 말고, 우왕좌왕 흔들릴 때 '아, 지금 내가 흔들리고 있구나. 흔들리다 보면 바람이 지나가겠구나' 하고 마음을 다잡아 보는 것도 참 매력 있더라. 한번 잘 봐봐.


아이야, 고마워. 네 삶의 시계를 서른에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가게 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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