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我怡)'에게 보내는 팬레터] #05

지독한 비혼주의자가 '포옹' 한 번에 무너진 이유

by Selah

안녕 아이야.


네가 은근하게 나의 편지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완전 두근두근했지 뭐야. 사실 팬레터라는 게 때로는 사무치는 외로움을 더하기도 하는데, 너의 소식 덕분에 내 마음은 사랑스러움으로 가득해졌어.


문득 네가 편지를 기다린다 하니, 한편으론 '절대적이고 열렬한 사랑'이 필요한 시점인가 싶기도 해. 오늘은 너를 향한 사랑이 아닌, 네가 향했던 사랑의 조각을 한번 꺼내보려 해. 이거 완전 쫄깃쫄깃하다.


음, 너는 정말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단호한 '철벽 비혼주의자'였어. 기억나지? 그런 네가 "나 결혼해"라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오늘 만우절이야?"라고 했을 정도였으니, 영화 <식스센스>급 반전은 저리 가라 수준이었지.


너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어질 정도의 깊은 연애 자체를 기피했지. 결혼하면 행복해질 거라는 믿음이 없었거든. 편안하고 다정하게 지내는 가정을 보고 자란 경험치도 부족했고 말이야.


"결혼하는 순간부터 여자 인생은 내리막이고 불행해지는 거야." 학창 시절에 네가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참 놀라워. 너무나 확고해서 너는 정말 평생 싱글로 지낼 줄 알았거든.


"연애는 연애고, 결혼은 결혼이지. 왜 연애의 결말이 꼭 결혼이어야 해? 헤어지는 연애는 다 망한 거야?"

지금 이 질문에 너는 뭐라고 대답할까?


아이야, 생각해 보면 그건 네가 어렸기 때문도, 철이 덜 들어서도 아니었어.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했고, 무엇보다 진지하게 자신의 삶을 지키려 했던 마음이었으니까.


참 다정하고 따뜻한, 몽글몽글한 마음을 가졌으면서 왜 대왕 고슴도치마냥 바짝 가시를 곤두세워 서늘하게 지냈을까.

사실은 사랑하고 싶고 행복하고 싶은데, '난 그럴 수 없을 거야'라며 미리 두렵고 무서웠던 거지.

전투적인 사랑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냉랭함과 서늘함을 택했던 거야.


그런 너에게 "내가 왜 좋아?"라고 백 번 천 번 물어도 "왜는 무슨 왜야, 그냥 너라서 좋은 거지"라고 대답해 주는 동반자가 네 곁에 있음에 나는 참 행복해.

(물론! 나보다 너를 더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야.)


아이야, 평생 비혼을 선언했던 네가 왜 문득 결혼을 결심했는지 물었을 때, 네 대답이 참 기억에 남아.

"우연한 기회로 그분 부모님과 식사 자리를 가졌는데, 어머님이 나를 안아주시더라고. 너무 따뜻해서 마음이 사르륵 녹았어. 아, 이런 부모님 밑에서 자란 사람이구나. 내가 힘들다 하면 언제든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겠구나."


다시 쓰고 나니 괜히 콧등이 시큰해지네.

잔잔하고 은은하게 다가와 우두커니 옆을 내어주는 그 사랑을 언제나 응원해.


오늘부터 아침엔 굿모닝 저녁엔 굿나잇 인사 해줘.

사랑은 쟁취하는 게 아니라, 지켜내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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