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엔 자물쇠를, 주머니엔 열쇠를 챙기는 어른이 된다는 것
안녕 아이야.
"올해 겨울이 역대 가장 추운 겨울입니다"라고 매번 예보하는 기상청이 피노키오마냥 얄미운 구석이 있어.
겨울인 덕분에 집콕을 좋아하는 너는 "추우니까 다음에"라고 말하며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피어나. 이불 안전지대 속에서 뭉글뭉글 움직이는 너는 마치 겨울잠에 흠뻑 취한 곰돌이 같거든.
"여름이 좋아, 겨울이 좋아?"라는 질문에 "봄이나 가을이 좋아! 여름은 더운 것보다 모기가 많아 괴롭고, 겨울은 추운 것보다 입김에 목이 따가워 힘들어."
추위에는 한없이 약하디 약하니까 너무 당연하게도 여름이 좋다고 대답할 줄 알았거든. '뻔한 건 재미없잖아'라며 늘 입버릇처럼 말하는, 정말 가장 너다운 대답이다 생각이 들더라.
대체로 주변 사람들은 네가 항상 '좋아요, 싫어요'를 야무지게 말해 좋다고 하겠지. 우물쭈물하지 않으니 추진력이 있고, 애매하게 흐릿하지 않으니 명쾌하다 하겠지.
"어머나? 그럴 리가요! 아이는 완전 쫄보에 울보에, 소심이와 걱정이의 찐 베프일 텐데요?"
라고 두 손 꼭 붙잡고 말해주고 싶더라고. 아, 물론! 실행에 옮기진 않았으니 놀라지는 말고.
네 안에 갖고 있는 모습과 네 겉에 보여주고 싶어 하는 모습, 굉장한 거리감이 있다 생각하지? 그치만 그게 '다른 사람' 또는 '변한 사람'도 아닌 전부 다 '온전한 너' 그 자체잖아.
예전 어리고 여린 시절은 하고 싶은 말도 그저 꾹 참고 "네, 알겠습니다" 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게 고구마 천만 개 먹은 것 마냥 속이 뒤틀리면서 완전 답답하고 갑갑했거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으면 일단 좀 전달을 하면 좋겠거늘, 입술에 철통 보안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는 집에 두고 온 건지, 그저 마냥 참고 또 참고만 있는 거야. 말을 안 하면 상대방은 예상할 수는 있겠지만 정확하게 알 수는 없는 건데 말이야. 단순하게 '속상하다'라기보다는 답답하면서 안타깝고 안쓰럽더라고.
"아니, 그 당시에는 진짜 머리가 완전 새하얘져. 당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1도 생각이 안 나, 진짜로." "근데 더 내 스스로도 별로에 굴욕인건 왜 꼭 잠들기 직전에 할 말이 떠오른다는 거야. 그렇다고 내일 가서 '어제 말 못한 거 오늘 해도 될까요?' 하고 말하면 찐 도라이 되겠지..."
그러진 않았다는 건 천만다행이야. 영원한 흑역사 남길 뻔했잖아.
돈데크만을 불러내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던가, 알라딘 양탄자를 타고 지금 날아가 할 말을 하고 싶다던가, 세일러문이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라고 해줬으면 좋겠다던가, 얘기할 때 웃자고 하는 말인지 진심 백 프로인지 어렵고 난해했었어.
웃자고 하는 말이려니 했는데, 지나고 보니 온 마음을 다한 진심이었더라. 그만큼 네 말을 전하고 싶어 했던 거구나, 싶었어.
그렇게 이불킥 하고 캐릭터에게 빌며 고민했던 시간들이 마일리지처럼 차곡차곡 쌓아둔 덕분이겠지? 이젠 입술에 자물쇠를 채우되, 열쇠도 갖고 다니게 되었으니 말이야.
아이야, 네가 마음의 스위치를 바꿔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게 되었던 말 기억나? 네 눈시울이 정말 아른아른해지던 그 찰나의 순간이 나에게는 박제되어 있거든.
"착하지 않은 사람도 착한 척과 행동을 10년 하면 착해지고 '착한 사람'이라며 평판이 바뀌는 거예요."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본 건데, 효리 언니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잖아. 학창 시절에는 조용했던 성격이었는데, 어떤 PD님의 제안으로 '예쁘니까 당당하게 공주병 캐릭터로 가라' 해서 본인의 캐릭터를 설정했다고. 그렇게 설정한 캐릭터로 오래 하다 보니 그 또한 내 모습이 된 것 같다고 말했지.
정답도 결론도 없으니 끊임없이 고민하며 지속적인 찾음으로 인해 차곡차곡 만들어 가는 삶의 과정이구나, 생각하는 건 어때?
마치 우주에 떠돌고 있던 생명체가 지구로 배정된 후, 생명력을 갖고 태어난 한 사람이 그저 누워만 있다가 뒤집기를 하고, 배밀이하다 걷게 되는 순리처럼 말이야.
하염없이 무너지고 미친 듯이 부러지지. 팩트 폭행 난도질에 세상 제일 억까해도 말이야. 매 순간 정말 나만 바라보고 무조건 내 편 해주는 딱 한 명만 있어도 그 인생 좀 살아볼 만하지 않아? 네 편 여기 있잖아. 1호 팬.
자꾸 나이가 드니 거울 보기가 싫으네, 체력이 예전 같지 않네, 성격이 너무 까탈스러워지는 게 아니냐는 둥... 새해와 생일이 왜 이렇게 금방 오냐며 투덜이 타임이 길어지는 걸 보니, 회사에서 누구랑 또 한판 하고 마음이 부대껴 고되구나 싶더라.
투덜투덜 궁시렁대면서, 깊숙한 저 어느 곳에 있는 그 마음을 다 꺼내놓지 않을지라도, '힘들다' 슬쩍 읊조려도 돼.
넌 그냥, 언제나 무조건 그래도 돼.
아이야, 아무리 긴 터널일지라도 입구로 들어갔으니 반드시 출구가 있는 거야. 너무 캄캄해 무서울 때가 있고, 이 길이 진짜 맞나 싶기도 하겠지만 그때마다 한번쯤 꼭 기억해. 내가 곁에 있음을 말이야.
오늘은 시원하게 자물쇠랑 열쇠 둘 다 집에 놓고 나와! 달달하게 두쫀쿠 먹으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