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我怡)'에게 보내는 팬레터] #03

네 소중한 하루를 바라보는 티켓팅은 언제든지 성공할게

by Selah

안녕, 아이야. BTS 콘서트 티켓팅 성공했어?


그들의 군대에 들어가는 날부터 제대하는 날까지 너는 다짐하듯 말했잖아. "완전체로 콘서트를 하게 되면 정말 무조건, 꼭, 반드시 티켓팅 성공할 거야!"라고.


티켓팅 화면 접속 대기자 3만 명, 액정 속에는 기다란 그래프와 숫자가 천천히 줄어들고 있었어. 그걸 보면서 문득 나의 스타인 네가 떠오르더라. 처음으로 "나 너무너무 좋아하는 가수가 생겼어!"라며 여기저기 소개하고 자랑하던 그날 말이야.


비록 전투적인 피켓팅에서 승리의 깃발을 얻지는 못했지만,

아쉬운 마음은 너의 그 반짝이던 날로 나의 속상한 심신을 대체하려 해.


너 정말 그날, 볼은 발그레한데 전투력이 뿜뿜 하며 뛰어다니는 모습이 마치 피카츄랑 흡사했어. 귀여움의 포텐이 팡팡 터졌거든.


아마 그날이 주말로 기억해. 아침에 다소 늦잠을 자던 중 밀려오던 허기에 눈이 번쩍 뜨였지.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은데 냉장고에 재료가 마땅치 않아서, 신속하게 사골육수 한 알 퐁당, 떡 퐁당당 넣고 보글보글 끓여 간단하게 아점을 먹으며 네 블로그를 보던 중이었어.


가끔씩 맛집과 여행 후기, 또는 핫템 자랑의 쇼핑을 기록하던 네 블로그에 보기 드문 "BTS"라는 섹션과 'N' 박스가 표기된 메뉴바가 여럿 생긴 걸 보고 깜짝 놀랐지. 'BTS? 갑자기?' 하며 찬찬히 하나하나 메뉴를 열어 안에 적은 글을 보고 있는데 자칭 네 스스로 'ARMY' 라며 부지런히 글과 영상을 올리고 있더라고.


10대 소녀 감성이 정말 만무했지? 네 눈엔 하트가 뿅뿅이고 목소리는 핑크빛이 뭉클 퐁퐁 가득했어. 너의 사무실과 방안은 점점 보랏빛으로 물들어 가고 말이야.


나의 관심사는 오로지 너였기 때문에 주변에 눈길을 잘 돌리지 않는 편이거든. 근데 네 덕분에 나조차 BTS를 영접하게 되며 너와 함께 그들의 매력에 풍덩 빠져 입덕하게 된 거야. 그때만 해도 그들이 전 세계 무대를 누비고 아미 군단이 생기게 될 줄은 상상치 못했거든. 근데 넌 그때 단호하게 말했어. "나는 믿어. 마음을 울리고 전달하는 사람은 뭘 해도 다르거든."


한껏 그들에게 푹 빠져있는 너를 보며 나의 마음이 참 오묘했어. 마치 내가 너를 이렇게까지 덕질하게 될 줄 몰랐던 것처럼 말이야. 그때 당시는 질투에 가까운 감정이라 생각했거든.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니 알겠더라. 그 당시 너는 영혼 없는 좀비처럼 회사-집-회사-집을 반복하고 있었고, 그 삶에 그들이 '별'처럼 나타나 반짝임을 건네준 게 나는 참 부러웠던 거야. 오랫동안 너를 지켜보는 나는 그래주지 못했는데, 너의 이름조차 모르는 그들이 너에게 '영혼의 숨결'을 불어넣어 준 거잖아. 질투가 전부는 아니었을 거고, 아마도 존경과 동경 그 사이 어딘가쯤일 거야.


그러고 보니 아이야. 너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어. 학교에서도 다른 친구들은 왁자지껄 까르륵 웃고 떠들며 뛰어다니기 바빴는데, 너는 홀로 귀에 이어폰을 꽂고 엎드려 있던 시간이 많았지.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을 학창 시절, 혼자가 되는 걸 선택한 네가 그때는 이해되지 않더라.


시간이 지나서 보니 너는 세상의 소란스러운 소음에서 너 자신을 철저하게 보호하는 방법을 '노래'로 택했던 거야. 주변에서 하도 공부 안 하고 노래만 듣고 있는다며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영어 학습지 테이프에 좋아하는 가수 노래를 덧녹음해 들으며 "공부하고 있잖아"라고 대답하고 굉장히 흐뭇해하며 말이야.


나 또한 출퇴근을 하며 알게 된 건데, 사람은 누구나 군중 속에서도 공백과 여백이 필요하다는 거야. 그게 쉽지 않잖아. 그래서 각자 이어폰을 꽂고 주변을 차단해 눈과 귀에 공간을 마련해 주는 거지. 그때는 그저 '못 말리는 소녀구나'라고 생각하며 이해가 참 안 되었는데, 이젠 충분히 공감해.


네 덕에 나 또한 '주크박스'를 만들었어. 그들의 앨범에 담긴 수록곡을 나만의 감정으로 '응원이 필요할 때, 위로가 필요할 때, 떼창이 필요할 때, 잠이 안 올 때' 등으로 나눠서 들으며, 무언가를 먹거나 어딘가를 가거나 하지 않고 가만히 내 마음을 충만하게 충전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 셈이지.


비록 너는 어린 나이였지만, 스스로를 지키며 위로하는 방법을 알고 있던 아이였어.

그걸 지금도 못 하는 어른도 많거든.


너의 그 시절 습관은 지금까지도 이어진 걸까? 그들의 노래를 듣고 가사를 읽고 또 읽어 내려가며 눈물을 그리 많이도 흘리잖아. (약간 주책... 아니야, 소녀감성.)

그중에서도 내가 참 기억나는 노래는 'Magic Shop'이라는 곡이야. 너무 잘 알지?


처음 발매일 알림 맞춰 실시간으로 전곡을 들으며 끄덕끄덕 흥얼흥얼 흐뭇해하다가, 갑자기 또랑한 눈에서 눈물이 또르륵 하더니 주르륵이 되던 장면이 잊히질 않아.


"왜 그렇게 갑자기 우는 거야? 슬픈 노래야? 무슨 노래를 들으면 그렇게 엉엉 울게 되는 거야"라고 옆의 동료가 물으니, "가사가 미쳤어... 진짜 미쳤다는 표현 말고는 떠오르지가 않아... 한번 들어봐... 들어봐야 알아..." 해서 바로 그 동료가 듣고 2분도 안 지난 채 같이 엉엉 울던 거 기억나지?

이제 와서 웃는 거지만 그때는 정말 너무 깜짝 놀랐거든. 두 여자가 사무실에서 이어폰 하나씩 나눠 끼고 엉엉 우는 장면이 흔하게 보는 장면은 아니니 말이야.


아이야. 고백 아닌 고백을 하자면 네가 아니었어도 나 또한 그들을 사랑하게 되었을 거야. 그렇지만 네 덕분에 나만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그들을 깊이 있게 알게 해 줘서 고마워. 그저 노래를 잘하고, 퍼포먼스가 뛰어나고, 인기가 많은 아이돌이 아닌 그들의 기나긴 여정과 진심 어린 가사 속 의미, 그리고 팬을 ARMY라고 부르는 그들의 진정성을 공유해 줘서 고마워. 8090 노래만 듣던 나의 옛스러운 귓가에 네 덕분에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또 새로운 시선의 위로를 받아갈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의미 없고 영혼 없이,
그저 의무감만 남아 회사-집 생활만 반복하던 너는,
마치 사막보다 더 바스락거리게 마른 땅 같았거든.


그들을 눈과 마음으로 쫓으며 너에게 생기가 생기고 활력이 생기고, 하루의 소중한 시간을 조금은 더 의미 있게 보내게 되었잖아. 그게 나는 참 고맙더라.


나도 너를 그런 마음으로 늘 쫓고 응원하며 사랑하고 있어. 그러니 어제보다 오늘 한 모금, 오늘보다 내일 더 한 움큼 너 자신이 빛나고 있음을 기억해 줘.


비록 그들의 콘서트 티켓팅은 실패했지만, 네 소중한 하루를 바라보는 티켓팅은 언제든지 성공할게.


오늘 하루 잠들기 전 오랜만에 'Magic Shop'을 틀어봐도 좋겠어.

잘 자, 아이야. 좋은 꿈 꿔.

작가의 이전글['아이(我怡)'에게 보내는 팬레터]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