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我怡)'에게 보내는 팬레터] #02

남들보다 일찍 인생의 마스터키를 쥐게 된 너에게

by Selah


안녕 아이야, 지금 밤 11시를 지나가고 있어.


시계를 문득 보고 나니 네가 이 시간은 유독 많은 생각이 든다 했던 게 기억나서 펜을 들었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아 사색이 짙어지는 시간이라 그런가, 네가 처음 회사 생활을 하기로 결심했던 그날의 마음 조각을 유독 꺼내고 싶어.


아이야, 너는 참 이른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했지? 고등학교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대학교 등교가 아닌 직장으로 출근을 했으니 말이야. 그 당시 너는 "남들 다 하는 거 기왕이면 일찍 시작하면 좋지 뭐!"라며 태연하게 말했거든.


근데 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거지? "남자 셋 여자 셋이나 논스톱처럼 싱글 생글하면서 찐한 캠퍼스 생활을 해보고 싶어"라고 말이야.


그런데 넌 그 말을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어. 네 자신에게 '그래, 이게 맞아.'라며 스스로 주문을 걸었던 거야. 주변 사람들에게는 아주 호기롭게 "나 이제 월급 받는 사회인이다! 용돈 받는 애들하고는 다르지!"라며 호탕하게 웃었지만, 아마 그날 너는 '괜찮다'는 가면을 쓰고 난 뒤 '초년생 사회인 페르소나'를 만들었겠지.


너는 솔직한 마음을 밖으로 꺼내는 게 참 어색한 아이였어. 그땐 나도 미처 눈치채지 못했거든. 그 어린 나이에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어른스러운 배려심을 차곡차곡 담아내고 있었는데 말이야. 네 자신을 스스로 책임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닫고 받아들였잖아.


단순히 '일찍 철들었네'라는 흔한 말로 너를 정의하고 싶지 않아. 깊은 곳에 숨겨둔 네 마음의 무게를 다 알지도 못하면서, 감히 그런 시답잖은 싸구려 위로를 건넬 순 없으니까.


아이야, 사실 그때마다 멀리서 지켜만 보았지만 사실은 달려가서 안아주고 싶었어.


네가 혼자 많이 울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러한 용기를 내는 방법을 몰랐거든. 그냥 말없이 안아주기만 해도 너는 충분히 "괜찮아! 고마워!"라고 말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생각하다 결국 모든 타이밍을 지나보내고 말았지 뭐야.


너의 빛나고 아름답던, 찬란하고 명랑했던 20대의 첫 출발은 참 경이로운 거야. '책임의 또 다른 말은 돌봄'이지 않을까. 아직 너는 눈치채지 못한 거 같지만 말이야.


너는 스스로를 책임지는 일이 버겁다고 했지. 하지만 내가 본 너는,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지독하게도 정성껏 돌보고 있었어. 그 무게는 버거움이 아니라 사실 네가 너에게 준 가장 이른 '헌신'이었던 거야. 정작 너만 모르는 그 기특함을 가만히 쓰다듬어주고 싶어. 정말 그 어떤 어른도 해내기 쉽지 않은 걸 넌 일찍이 해낸 멋진 아이야.


그런데 말이야. 너는 지나치게 혼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하지만 알고 있니? 그저 묵묵히 너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걸. 물론 그중에 나도 포함이고. 네 시선에 닿지 않는다 해서 없는 건 아니야. 오랫동안 품어온 마음과 생각은 외려 꺼내지면 가벼워질까 겁이 나 버겁다 느껴질 때가 있는 법이니까.


비록 네가 꿈꾸던 20대, 푸르른 대학생의 추억을 만드는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용돈이 너무 적다고 징징거리는 친구들을 보며 '돈의 무게를 모르는 것들!' 하며 말했던 그 에피소드, 기억나?


"어릴 때 부모님이 사 오시던 통닭 한 마리는 말이야, 내가 겪어보니 고단했던 직장에서의 하루를 종료하는 '체크아웃 마스터키' 같은 거야. 그때는 왜 '잘 먹겠습니다'라는 말밖에 몰랐을까? 손 꼭 잡아 드리며 '오늘도 고생하셨어요, 사랑해요'라고 말해드릴걸..."


하며 눈시울을 붉혀 모두의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지. 그러더니 금세 "그러니 오늘 나의 치맥은 인생의 마스터키인 셈이지. 다들 짠!" 하고 맥주를 들이켜던 너. 슬픔마저 위트로 승화시키는 너의 그 '단짠' 같은 매력에 내가 입덕하지 않을 재간이 있겠니.


"마스터키를 남들보다 일찍 쥐게 된 소감이 어때?"라고 옆에 친구가 물었을 때 너 뭐라고 했게?

"훈장 같은 거지"라고 했어. 너무 멋지지 않아?


매 순간마다 최선의 선택을 하려 고민하고 또 고민했음을 난 기억해. 그러한 고민의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마일리지처럼 누적되어 온 너는 정말 그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빛나는 나의 하나뿐인 스타야.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네가 제일 좋아하는 치맥 어때? 오늘의 너에게 마스터키를 쥐어주고 싶네. 시원하게 한잔 쭉 들이키자.


수고했어 오늘도, 너는 나의 영원한 스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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