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하루 하나씩

by 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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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다.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는 말은 더 이상 새롭지 않지만, 그럼에도 매번 달력을 넘길 때면 자동처럼 ‘세월이 참 빠르다’는 말을 내뱉고 만다. 매월의 시작과 매년의 끝자락에선 특히 그렇다.


시간은 그저 앞으로만 흐를 뿐인데, 우리는 그 직선을 열두 칸으로 나누어 이름을 붙이고, 다시 그 조각을 잘게 쪼개 하루를 살아낸다. 열두 자루의 연필이 들어 있는 상자를 하나씩 비워내고, 새 상자를 꺼내 쓰는 일과도 닮았다. 비워져 가는 상자를 보며 아쉬워하고, 또 새 상자를 열며 작은 기대를 품는 마음까지도.


나이 드는 일은 어느 순간부터 큰 의미를 잃었다. 초연하다기보다 무감각해졌다는 표현이 맞겠다. 누가 나이를 물으면 잠시 멈칫하다 결국 검색창에 생년월일을 넣어 계산해본 적도 있다. 해의 끝과 시작 또한 마찬가지였다. 거창한 감정의 파도는 오지 않고, 그저 시간의 직선 위 한 점에 서 있는 기분뿐이었다.


하지만 올해만큼은 조금 의식적으로 살아보고 싶다. 열두 달이라는 장치는 아마도 우리를 위해 마련된 작은 멈춤표이기 때문일 것이다. 1월부터 무심히 쌓여온 것들을 정리하고, 마음 저곳에 대충 밀어넣었던 감정들은 이제 꺼내 들여다볼 때가 됐다.


오늘부터, 하루 하나씩. 마음의 짐을 천천히 덜어내려 한다. 더는 품고 있을 필요 없는 것들은 쓸어내고, 오래 간직하고 싶은 것들은 다림질하듯 가지런히 접어 보관해두려 한다. 올해가 저물기 전까지의 목표는 ‘잘 비우는 일’이다. 그래야 새해의 첫 페이지에 더 좋은 마음과 기운이 기꺼이 들어설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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