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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을 기다리는 일은
큰 사건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작은 먼지를 털어내는 일에 가깝다.
거리엔 벌써 반짝이는 것들이 달렸지만
나에게 연말은 그저
하루가 조금 더 서늘해지고
저녁이 조금 더 빨라지는 시기다.
무겁지도, 들뜨지도 않은
살짝 느슨한 마음의 계절.
연말이 가까워지면
사람들은 무언가를 정리하려 애쓴다.
계획표를 다시 들여다보고,
지난 일들을 조용히 되감고,
어딘가에 놓아둔 마음의 조각을
주워 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매년 그렇게까지 애쓰지 않는다.
한 해를 정리한다는 건
생각보다 조용한 동작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어서다.
연말의 좋은 점은
‘다시’라는 말이 쉬워진다는 데 있다.
다시 시작하고,
다시 멈추고,
다시 친해지고,
다시 나를 들여다보는 일들.
늘 할 수 있었지만
왠지 이 시기엔 마음이 조금 더 유연해진다.
무언가를 새로 하기보다
내 안의 낡은 부분을 살짝 매만지는 정도면 충분하다.
연말을 기다리며 나는
큰 다짐 대신 작은 허락을 준비한다.
조금 더 쉬어도 된다는 허락,
조금 느려도 괜찮다는 허락.
한 해가 끝난다고 해서
내가 달라져야 할 이유는 없지만
조금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계절이기도 하니까.
아마 그래서
연말을 기다린다는 건
새해를 꿈꾸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천천히 정리해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내일을 맞이하려는 작은 예의 같은 것이다.
올해도 그 정도면
충분히 따뜻한 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