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어내다

by 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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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정리하다가 문득 깨닫는다. 덜어낸다는 건 버리는 일이 아니라, 남길 것을 고르는 일이라는 걸.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을수록 방은 조금 비어 가고, 마음은 그만큼 숨 쉴 자리를 얻는다.


우리는 자주 더 채워야 안심한다. 일정도, 관계도, 생각도. 혹시라도 비어 보일까 봐 애써 채우다 보면 정작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흐릿해진다. 그래서 가끔은 용기가 필요하다. 덜어내기 위해서.


덜어낸 자리에는 의외로 고요가 남는다. 해야 할 말 대신 하지 않아도 되는 침묵,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이해.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의 속도를 되찾는다.


요즘 나는 조금씩 덜어내는 연습을 한다. 꼭 필요하지 않은 기대를, 오래 붙들고 있던 후회를, 나를 지치게 하던 마음의 장식들을. 그렇게 남은 것들만으로도 하루는 충분히 살아진다는 걸, 덜어내며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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