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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일

by 휴운

‘가다’가 아닌 ‘돌아가다’라는 말에는 왠지 모를 푸근함이 있다.

가버려! 라고 말하면 매몰차게 느껴지지만, 돌아가! 라고 말하면 왠지 덜 냉정하게 느껴진다.

돌아간다는 건, 저기 어딘가 내가 떠나온 이 곳으로 향하기 위해서 첫 발걸음을 내딛은 그 출발점이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 출발점은 장소가 될 수도 있고,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사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귀가

집으로 돌아가는 일


출근길 집을 나서는 순간, 긴 여행을 떠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순간, 잠깐의 외출을 위해 집을 나서는 순간

언제나 그 순간들에는 ‘곧 돌아올게’가 전제되어 있다.

그 떠남의 시간 뒤, 돌아오는 길에는 떠나는 순간과는 다른 감정과 사건들이 옷자락에 나의 어깨에, 무거운 눈꺼풀에

걸음걸이에 사락사락 내려앉아있다.

그 겹겹이 내려앉은 조각들을 떼어내며, 혹은 미처 다 떼어내지 못한 조각들은 돌아온 집이라는 공간에서 마저 씻어내고 벗겨내는 일.


귀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참 다행스럽고, 따뜻한 일.

안도하게 되는 일.




-도종환 <귀가>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지쳐 있었다.

모두들 인사말처럼 바쁘다고 하였고

헤어지기 위한 악수를 더 많이 하며

총총히 돌아서 갔다.

그들은 모두 낯선 거리를 지치도록 헤매거나

볕 안드는 사무실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일을 하였다

부는 바람 소리와 기다리는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지는 노을과 사람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밤이 깊어서야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돌아와

돌아오기가 무섭게 지쳐 쓰러지곤 하였다.

모두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라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의 몸에서 조금씩 사람의 냄새가

사라져가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터전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쓰지 못한 편지는

끝내 쓰지 못하고 말리라

오늘 하지 않고 생각 속으로 미루어둔

따뜻한 말 한마디는

결국 생각과 함께 잊혀지고

내일도 우리는 어두운 골목길을

지친 걸음으로 혼자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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