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국수 한 그릇이 바꾸어놓은 삶
저는 요리를 좋아합니다. 먹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 아니라 요리하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제가 요리를 하게 된 계기는 아주 우연한 것이었습니다. 10년 전의 어느 휴일로 기억되는데, 왜 그럴 때가 있잖습니까? 밥 먹기가 싫고 간단하게 요기를 때웠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 그때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 잔치국수였습니다. 그래서 잔치국수를 해 먹어 보자고 생각했는데 막상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아주 간단한 음식이지만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엄청나게 어렵게 느껴지는 법입니다.
당장 인터넷을 뒤져보기 시작했습니다. 수도 없이 많은 레시피 중에 제가 할 수 있겠다 싶은 간단한 레시피를 찾아 시도해 보았죠. 멸치와 다시마 등을 넣고 육수를 만들고 각종 고명들을 준비하고 같이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양념장도 준비했습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손은 더디지만 그리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아래 사진이 제가 제일 처음 만든 잔치국수입니다.
다 만들어 놓고 가족들과 둘러앉아 먹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맛이 썩 좋더군요. 그저 인터넷에서 본 레시피대로 따라 하기만 했을 뿐인데 음식점에서 사 먹는 여느 잔치국수 못지않게 맛이 좋았습니다. 대성공이었죠. 순간 요리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겨우 단 한 번의 성공일 뿐이었지만 이 작은 성공이 요리에 자신감과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제가 할 수 있는 쉬운 요리들을 몇 차례 더 따라 해 보고 성공체험을 하게 되면서 요리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더욱 큰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수백가지의 요리를 하게 되었고, 제법 요리를 잘 한다는 얘기도 듣게 되었습니다.
사실, 요리에 대한 관심이 갑작스럽게 생긴 것은 아닙니다. 신혼 초부터 요리를 하고 싶은 마음이 많았고 종종 시도해 보기도 했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그 사람이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는데, 요리라는 것이 그리 만만치 않더군요. 몇 번 도전을 해 보았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자신감을 잃게 되어 요리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포기한 채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잔치국수의 성공체험이 기폭제가 되어 본격적으로 요리에 취미를 갖게 된 것이죠.
제가 요리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만약 잔치국수를 만들었을 때 성공체험을 못했다면 아마도 두 번 다시는 요리를 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요리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나한테는 너무 어려워. 그건 전문적인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야'라고 위안하며 포기하고 말았겠죠. 그러나 우연하게 작은 성공체험을 함으로써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자신감이 생기니 조금 더 호기심을 갖게 되었고, 틈날 때마다 요리를 습관적으로 하게 되면서 이제는 레시피 없이도 간단한 음식 정도는 만들어낼 수 있는 경지에 오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족발이나 감자탕, 아귀찜, 양념치킨 같은 것들도 그리 어렵지 않게 만들게 되었으며 아무리 어려운 요리라도 차근차근해나가면 못할 게 없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햄버거는 빵부터 패티와 소스까지 100% 수제로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많은 도전을 하며 살지만 중요한 건 그 도전이 계속될 수 있도록 성공체험을 쌓아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공은 또 다른 성공을 낳고, 그 성공은 자신감을 부르고, 그것은 또 다른 성공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게 되는 겁니다. 전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었으며 전설적인 파이터였던 마이크 타이슨이 아동 성추행 혐의로 복역하고 난 후 복귀전을 치를 때를 한 번 돌아볼까요?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떠는 세계적인 복서였지만 그에게는 3년이라는 꽤 긴 기간의 공백이 있었습니다. 훈련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고 체력적인 문제도 있었을 겁니다. 만약 복귀 무대에서 상대에게 패한다면 그는 복싱에 대해 자신감을 잃게 되고 이후에는 그렇고 그런 하류 선수로 전락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이에 마이크 타이슨의 복귀전을 기획한 돈 킹은 그의 전성기에는 상대도 되지 않을 쉬울 상대를 파트너로 선정합니다. 당연히 그 경기에서 마이크 타이슨은 승리를 거둡니다. 이후 또 한 차례 손쉬운 상대와의 경기를 통해 승리를 거둔 마이크 타이슨은 예전의 자신감을 되찾게 되고, WBC 세계 챔피언이었던 프랭크 브루노를 3회에 KO 시키고 다시 화려한 챔피언의 자리에 오릅니다. 돈 킹의 전략은 작고 손쉬운 상대를 붙여 승리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자신감을 높이고, 그 느낌을 뇌에 각인시킴으로써 또 다른 승리로 연계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동물실험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생쥐 두 마리에게 싸움을 붙입니다. 한 마리에게는 안정제를 투여하여 싸움의 의지를 제거하고 다른 한 마리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서로 싸움을 붙입니다. 결과는 당연히 안정제를 투여하지 않은 생쥐의 승리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조작된 경기에서 승리를 한 생쥐는 정상적이고 강한 상대와의 싸움에서도 용감하게 싸우고 훨씬 높은 승률을 기록합니다. 이를 승자효과(Winner Effect)라고 합니다.
이 내용은 란다우라는 생물학자가 1950년대에 연구한 것으로, 동물들의 사회에서는 위계질서가 절대적인데, 어떤 동물이 다른 동물과 다퉈서 이기고 이 승리가 다음 대결에서도 이 동물이 승리를 거둘 가능성을 높여줄 때 위계 체계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조금 더 과학적으로 접근해보면 무언가에서 성공하거나 승리하는 순간 남성호르몬 수용체에서 테스토스테론 분출이 이루어지고, 이는 덜 불안하고 더 공격적으로 바꾸며 고통을 견디는 임계점도 높여준다는 겁니다. 테스토스테론이 승리를 거두는 동물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준 겁니다. 승리가 반복될수록 더욱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겠죠.
테스토스테론은 뇌의 화학적 상태를 바꾸어 놓습니다. 특히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수치를 높여줍니다. 도파민은 목표 및 그 목표를 달성했을 때 주어지는 보상과 관련된 화학물질로, 마음속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해 주고 또 그것을 얻으려고 행동에 나서는데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승리는 테스토스테론 그리고 행동 지향적인 접근을 관장하는 도파민에 민감한 뇌 체계를 강화함으로써 우리가 느끼는 생각과 감정을 바꾸어 놓습니다. 쉽게 말해서 승리가 반복될수록 뇌의 화학적 상태는 승리를 끌어들이는데 유리한 방향으로 변화해 나간다는 겁니다.
잔치국수 얘기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승리에 관한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는 평생을 살면서 많은 선택과 도전의 순간에 직면합니다. 도전의 결과가 좋으면 그로부터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고 더 큰 일에 도전하게 되겠지만 도전의 결과가 좋지 못하면 좌절하고 포기하게 됩니다. 제가 신혼시절에 요리를 포기했던 이유도 몇 번의 도전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이루고자 하는 장기적인 목표가 있을 때 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아주 길고 지루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제풀에 지치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되고 의지가 강하지 않으면 결국 목표는 흐지부지되고 맙니다. 그래서 과정이 지루하지 않도록 중간중간 성공체험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공체험이 있으면 긴 도전의 과정을 참아낼 수 있는 밑받침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성공이 꼭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어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天下難事必作于易, 天下大事必作于細
해석하자면, '천하의 어려운 일도 반드시 쉬운 일에서 시작하고, 천하의 대사도 반드시 작은 일에서 시작한다' 작은 일에서 개선과 진보가 이루어지고, 이것이 조금씩 습관이 되면 마침내 커다란 능력이 키워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미국의 트래블러스라는 보험회사에 근무하던 하인리히라는 사람이 보험사건을 조사하다 발견한 내용인데요, 세월호처럼 큰 사건 뒤에는 스물 아홉 건의 경미한 사건이 있고, 다시 그 뒤에는 300건의 다양한 전조증상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인리히 법칙을 1:29:300의 법칙이라고도 합니다. 이것을 뒤집어서 이렇게 보면 어떨까요? 300가지의 사소한 노력들이 모이면 스물 아홉가지의 작은 성공을 이룰 수 있고, 스물 아홉가지의 사소한 성공이 모이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하나의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다고요.
이처럼 작은 성공들이 모이면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아랫사람을 이끌 때나 가정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어려운 일을 맡겨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하면 아랫사람은 일에 자신을 잃게 됩니다. 한 번 자신을 잃으면 쉬운 일도 자신 없어합니다. 반면 작은 일에서 성과를 내고 자신이 쌓이게 되면 큰 일도 어려움 없이 할 수 있게 됩니다. 혁신활동을 할 때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퀵 윈(Quick Win)을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것 때문입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단계별로 차근차근 아이가 할 수 있는 수준의 목표를 부여하고 그것을 요구하면 아이는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지만, 꼴찌 하던 아이에게 갑자기 1등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이의 기를 죽이고 포기하게 만드는 것일 뿐입니다.
요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하면 됩니다. 재료의 특성을 이해하고 재료들을 다루는 방법부터 습득하며 손이 많이 가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다 보면 요리에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무엇이든 성공체험이 중요합니다.
[잔치국수]
(4인분 기준입니다)
(재료) 국수, 호박, 당근, 표고버섯, 계란, 김치, 김
(양념장) 진간장 1큰술, 국간장 반 큰술, 다진마늘 1작은술, 고춧가루 1 작은술, 다진파 1작은 술
(육수) 다시마 서너장, 다시 멸치, 건새우, 표고버섯, 무, 파
다시마 서너장과 다시 멸치 한 주먹, 건새우, 표고버섯, 무 조각, 파 등을 넣고 팔팔 끓여줍니다. 국간장 한 스픈, 청주 한 스푼, 소금 쬐끔(반 티스픈 정도) 넣고 진한 국물이 우러나올 때까지 강불로 끓이다가 약불로 전환해 줍니다. 다시마는 오래 끓이면 안 되므로 중간에 건져 냅니다.
호박, 당근, 표고버섯은 채썰어서 소금을 조금 넣고 달달 볶아줍니다.
계란은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하여 부쳐내고 잘게 잘라 지단을 만들어 줍니다.
고명으로 얹을 김치도 잘게 잘라 준비해 줍니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소금을 약간 넣고 국수를 삶아냅니다. 면이 적당히 익으면 건져내어 찬물에 씻어줍니다.
그릇에 면을 담고 육수를 부은 후 준비해둔 고명을 얹어줍니다. 마지막에 구운 김을 잘라 올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