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바심을 일으키는 세 가지 원인
밀림의 덫에 빠지는 첫 번째 이유 : 늑장(게으름과 습관적인 미룸)
조바심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는 게으름과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는 습관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조바심은 해야 할 일이 있지만 정해진 시간 안에 그것을 완료하지 못할 것 같을 때 생기기 마련이다. 시간이나 다른 자원들이 넉넉하다면 조바심을 느낄 이유가 별로 없다. 충분히 여유를 가지고 모든 대안을 고려하여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고 실행하면 되므로 말이다. 하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없을 때는 그렇지 못하다. 모든 대안을 고려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자신이 선택한 대안도 제대로 실행하기 벅찰 수 있다. 결국 시간적 압박으로 인해 조바심이 생겨나는 것이다.
게으름은 시간을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으로 활용하게 만든다. 해야 할 일을 제 때 하지 않고 뒤로 미루어 두거나 늦잠이나 빈둥거림, 쓸 데 없는 일 하기 등으로 인해 가용(可用)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게 만든다. 절대적인 시간의 길이를 상대적으로 짧게 축소시키는 것이 게으름이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동일한 하루 24시간도 알차게 활용할 수 있지만, 게으른 사람들은 똑같은 24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늘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게으름으로 인해 쓸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의 양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원고를 쓰거나 강의 준비를 하기 위해 슬라이드를 만드는 등 직업의 특성상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긴 편이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오른쪽 어깨가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워지더니 이후 백팩을 메는 것조차 힘들기 시작했다. 서둘러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으면 괜찮았을 텐데 잠시 그러다 나아지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버티다 보니 증상이 더욱 악화되었다. 팔을 어깨 위로 올리기도 어렵고, 왼쪽 어깨가 간지러워도 오른쪽 팔을 뻗어 긁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등 뒤로 팔을 돌리는 것은 생각하기도 어려웠고 옷을 입고 벗는데도 어려움을 겪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일피일 치료를 미루던 것이 거의 10개월이 가까워졌다. 갈수록 심해지는 증상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병원을 찾기로 했다. 7, 8년 전에도 그 병원에서 어깨 수술을 한 경험이 있었기에 최악의 경우 수술을 감수하고 진료를 받아볼 생각이었다. 전화로 예약을 하고 진료시간을 정했다. 집에서 다소 거리가 떨어진 곳에 있는 병원인지라 서두르지 않으면 예약시간에 도착하기 힘들 것 같았다. 어깨 수술로 유명한 병원인지라 만일 예약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면 다른 환자들에 밀려 언제 진료가 가능할지 몰랐다.
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지만 40분 정도 여유를 두고 집을 나섰다. 하지만 낯선 길이어서 운전이 서투른 데다 생각보다 차가 많아 병원으로 가는 길이 더디기만 했다. 내비게이션에 나타나는 도착 예상시간은 예약시간보다 몇 분 정도 여유가 있었지만 꼼짝 않고 서 있는 차들을 보니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접수를 거쳐 진료를 받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예약시간을 놓쳐 진료를 받지 못할 것이고 한 번 순서가 지나가면 마냥 기다릴 것이 걱정되었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더 초조 해졌다. 은근히 짜증이 나고 화도 치밀어 올랐다. 막히는 길로 안내를 했다며 말 못 하는 내비게이션에게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다행히 병원에는 예약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을 했고 진료도 여유 있게 마칠 수 있었다. 오히려 시간이 조금 남아돌았다. 예약된 순서가 지나도 그리 오래 기다릴 것 같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동동거리며 조바심을 낼 필요가 전혀 없었지만 집에서 병원까지 가는 동안 거의 40여분 동안을 긴장과 불안 속에서 보내야만 했다.
이 경우 욕을 먹을 사람은 애꿎은 내비게이션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병원 진료가 그처럼 중요하고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이라면 길이 막히는 것을 고려하여 예상 시간보다 여유 있게 집을 나섰어야 했다. 마침 그 날은 강의도 없었고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 있었으니, 조금만 서둘렀다면 그렇게 초조해하지 않고서도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이한 마음에 출발을 미루다가 최소 시간만 남겨두고 집을 나섰고 그것이 조바심을 일으킨 원인이 된 것이다.
이처럼 조바심을 일으키는 원인의 상당수는 게으름과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는 습관에 있다. 일을 완료해야 하는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일을 제 때 하지 않고 미루게 되면 갈수록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해결해야 할 일의 양에 비해 주어진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조바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문제는 게으름과 일을 미루는 습관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데 있다. 해야 할 일을 미루게 되면 뒤로 갈수록 일은 쌓일 수밖에 없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하면 남은 일은 내일로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내일이 되면 또 게으름을 피우게 되고 내일 해야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한다. 그러면 내일 해야 할 일 중에 모레로 넘어가는 일이 생기게 된다. 오늘 끝내지 못해 미루어 두었던 일에 내일 끝내지 못한 일까지 더해져 모레로 넘어간다. 모레가 되면 또 게으름을 피우게 되고 그러면 사흘이 지난 후에는 3일 치의 끝내지 못한 일이 쌓여 넘어가게 된다.
이렇게 게으름을 부리고 습관적으로 일을 미루게 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일은 점점 쌓여가는데 그것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짧아질 수밖에 없다. 물리적으로 처리 가능한 시간이 부족하다고 여겨지면 이제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다. 조바심이 나기 시작하면 일에 집중할 수 없게 되고 일의 진도도 더딜 수밖에 없다. 평소 1 시간이면 할 일을 그보다 몇 배 더 긴 시간을 들여야만 끝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경우 어떤 일도 끝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조바심은 한 번 발동하기 시작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력해진다. 마치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피해의 면적이 넓어지는 회오리바람처럼 조바심도 시간이 지날수록 강력해진다. 강력해진 조바심은 더욱 해야 할 일에 집중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리고 불안한 마음을 제거하기 위해 필히 딴짓을 하게 된다. 게으름이 미룸을 낳고, 미룸은 시간 부족을 낳고, 시간 부족은 조바심을 낳으며 조바심은 다시 일에 집중하기 어렵게 만들고 게으름을 피우게 만드는 악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게으름으로 인한 네거티브 사이클(negative cycle)이다.
『변신』을 쓴 프란츠 카프카(Frantz Kafka)는 모든 죄악의 기본은 조바심과 게으름에 있다고 하였다. 어쩌다 한 번씩 게으름을 피울 수는 있지만 게으름이 고질적으로 이어지고 해야 할 일을 습관적으로 미루게 되면 만성적인 조바심으로 발전될 수 있다. 한 번 마음속에 자리 잡은 조바심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마치 산에서 굴러 내리는 눈덩이가 커지듯이 마음속에서 커지게 되고 더욱 큰 조바심이 되어 마음을 짓누르게 된다.
밀림의 덫에 빠지는 두 번째 이유 : 실행력 부족
내게는 부자가 될 기회가 꽤 여러 번 있었다. 아마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실행에 옮겼다면 지금쯤은 큰 부자가 되어 '모히또에서 몰디브 한 잔'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표적인 것이 작년부터 네이버에서 엄청난 광고를 했던 '이미지 검색'이다. 지금은 성인이 된 아이들이 어릴 때, 우리 가족은 주말마다 나들이를 떠났다. 꽃을 좋아해서 길가에 보이는 야생화를 사진에 담곤 했는데 이름을 알 수 없어 답답했다. 식물도감을 사서 보아도 비슷한 이름만 찾을 뿐, 제대로 된 이름은 알 수 없었다. 그때 머릿속에 떠올랐던 생각이 지금 네이버에서 광고를 하는 이미지 검색과 100% 일치한다. 무엇이든 사진을 찍어 이미지 그대로 검색하면 이름을 알려주는 서비스이다.
또 한 가지. 대학원에 재학 중일 때, 같은 실험실 친구들이 점심을 먹고 난 후 양치를 마친 칫솔을 컵에 담아 해가 드는 창가에 늘어놓곤 하였다. 이유는 살균 때문이었다. 축축하게 젖은 채로 책상 속에 넣어 놓으면 유해한 균이 발생할 우려가 있으니 햇빛 드는 창가에 놓음으로써 살균도 시키고 칫솔도 건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떠올렸던 아이디어가 지금의 휴대용 칫솔 건조기이다. 칫솔보다 조금 큰 직사각형 형태의 상자를 만들고 건전지를 이용하여 적외선이나 자외선을 방출시켜 칫솔을 살균시키는 아이디어로 요즘 사용하는 휴대용 칫솔 살균기와 100% 일치하는 것이었다.
휴대용 칫솔 살균기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35년도 넘은 시절에 생각해낸 아이디어이고, 이미지 검색 역시 20년 정도 묵은 아이디어니, 만약 둘 중 하나라도 개발을 하거나 적어도 특허를 냈다면 지금쯤 경제적으로 넉넉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아이디어도 실천으로 옮긴 것이 없고, 그 결과는 이렇게 지나간 기회를 아쉬워하며 말로만 떠드는 것뿐이다.
어쩌면 내가 지나온 삶에서 조바심을 버리지 못하고 끌려다녔던 이유 중의 하나도 이렇게 실행력이 부족했기 때문일 수 있다. 실행력의 부족은 앞서 말한 것처럼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게 만들고 그 결과는 조바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라는 것이 있다. 러시아의 심리학자인 블루마 자이가르닉(Bluma Zeigarnik)이 식당에서 주문을 받는 웨이터의 모습을 보고 어떻게 그 많은 주문 내용을 헷갈리지 않고 기억하는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식사를 마친 자이가르닉은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웨이터를 찾아가 자신이 주문한 음식이 무엇인지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웨이터는 머리를 긁적이며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주문이 끝난 후에는 주문 내용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이다.
이후 학교로 돌아온 자이가르닉은 한 가지 실험을 한다. 164명의 피실험자를 모집한 후 A, B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두 그룹 모두에게 공통의 과제를 부여하였다. 하지만 A 그룹은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아무런 방해도 하지 않았고 B 그룹은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방해를 하거나 다른 과제로 넘어가도록 하였다. 실험이 끝난 후 B 그룹은 A 그룹에 비해 과제 내용을 2배 이상 기억해 냈다. B 그룹이 기억해 낸 과제 중 68%는 중간에 그만둔 과제였으며 완료한 과제를 기억해 낸 비율은 32%에 불과했다.
자이가르닉 효과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이렇다. 어떤 일을 제대로 마치지 못하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그래서 완결되지 못한 과제는 잔상을 남겨 계속 기억 속에 남아 있게 되지만, 완결지은 과제는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해야 할 일을 제 때 처리하지 않고 뒤로 미루게 되면 그것은 계속 머릿속에 남아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이는 과제 수행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미루는 일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머릿속에 남은 잔상과 마음의 불편함은 커지고 그것이 심해지면 무엇을 해도 심리적인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는 필히 아웃풋의 질로도 연결되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