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적인 조바심에서 벗어나기 - 우물 탈출(2)

비교와 열등감 버리기

by 양은우

비교는 ‘삶의 즐거움을 빼앗아가는 도둑’


비교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 중 하나이다. 인간의 삶에서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하는 것을 도려낼 수만 있다면 인간의 삶은 마치 태풍이 불지 않는 바다처럼 언제나 고요하고 평화로운 모습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여 질투심을 느끼거나 자존심에 상처 받을 일도 없고 열등감을 느낄 일도 없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날 일도 없고,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기 위해 비난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비교가 없으면 인간 문명의 발전도 없었을지 모른다. 타고난 그대로에 만족하며 천년이 지나도, 만년이 지나도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었을지 모른다. 비교가 있었기에 주위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보다 더 나은 모습이 되고자 노력하였고, 그것이 두뇌의 발달을 가져왔으며, 그 결과로 지금과 같은 문명의 발전을 가져왔는지 모른다. 지금의 문명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는 모르겠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인간의 삶이 더욱 편리해진 것만은 사실이다.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업활동에 다른 기업과의 비교가 없다면 자신의 현재 위치에서 만족하고 더 나아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른 기업과 비교를 통해 그들과 경쟁하려는 노력이 있기에 나날이 더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비교는 버리기도 아깝고 먹어봐야 별로 먹을 것도 없는 계륵과 같은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비교가 인간의 타고난 본능에 가깝기 때문에 비교하는 마음을 완전히 버리기는 쉽지 않다. 마치 사춘기 아이들에게 이성에 대한 관심을 끊고 지내라고 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보다 행복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불행을 선택하는지도 모른다. 비교가 좋지 않은 이유는 누군가와 나를 비교할 때마다 내 가슴에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잘 알고 지내는 강사 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연간 적지 않은 강의를 함에도 불구하고 늘 자신이 다른 사람에 비해 강의가 적다고 떠들고 다닌다. 통계적으로 봐도 분명 자신이 다른 강사들에 비해 훨씬 많은 시간 강의를 함에도 불구하고 늘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자신의 강의시간이 적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 불평 속에는 다른 강사들에 대한 근거 없는 헐뜯음이 들어있음은 당연한 이야기다. 결국 비교하지 않으면 스스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함으로써 스스로 불행해짐은 물론 상대방도 불쾌하게 만들곤 한다.

주로 비교는 ‘나보다 잘난 사람’과 ‘나’ 혹은 ‘상대가 가지고 있는 것’과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또는 ‘상대의 장점’과 ‘나의 단점’ 등으로 이루어진다. ‘나보다 못난 사람’과 ‘나’를 비교하거나 ‘내가 많이 가진 것’과 ‘상대가 가지지 못한 것’, ‘나의 장점’과 ‘상대의 단점’을 비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정신과 의사 노먼 페더(Norman Feather)는 ‘키 큰 양귀비 신드롬(tall poppy syndrome)’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는데 ‘키 큰 양귀비’란 질투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말한다. 또래에 비해 재능이나 성취가 뛰어난 사람들을 깎아내리거나 비난하기 때문이다.

sunset-174276_960_720.jpg [키가 큰 양귀비는 키 작은 양귀비들에게 언제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나보다 잘난 사람 또는 나보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 나보다 뛰어난 장점을 가진 사람과 나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나는 초라해 지거나 없어 보이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은 질투와 열등감을 만들어내고 질투와 열등감은 스스로의 정신세계를 파괴시킨다.

나보다 잘 나가는 사람, 나보다 돈을 많이 번 사람, 나보다 진급이 빠른 사람을 보며 나 자신을 비교하다 보면 나도 그 사람을 따라잡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이를 경쟁의식이라고 한다. 경쟁의식이 필요한 경우에 필요한 형태로 발현되면 자신의 능력을 가진 것 이상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하고 분발하게 만든다. 하지만 때로는 불필요한 상대에게 불필요한 경쟁의식을 가지게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길 수 없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강박감에 사로잡히게 만들거나, 포기하거나 열등감으로 퇴화할 수 있다. 상대에 대해 적개심을 가지고 맹목적으로 상대방을 이겨야 한다는 의식을 불러 넣어 조바심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스스로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으려는 마음만 가지고 있어도 조바심은 훨씬 줄어들 수 있다.

문제는 비교라는 것이 인간의 본능적인 특성에 가까워서 담배와 같이 해로운 것을 알면서도 끊기 어렵다는 데 있다. 미국의 26대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는 ‘비교는 삶의 즐거움을 빼앗아가는 도둑’이라고 했다. 비교는 열등감을 낳고 열등감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습관으로 자리 잡게 만들어준다. 스스로 정신건강을 갉아먹는 것이다. 우월감을 느끼는 것도 그 뿌리는 마찬가지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얻어지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우월감을 느낀다고 해서 삶이 만족스러워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와의 비교를 통해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해 열등감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비교에 의한 열등감은 자신감을 빼앗아간다. 자신감을 빼앗긴 사람들은 무엇을 해도 결과에 대해 불안함과 초조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비교 -> 열등감 -> 자신감 상실 -> 조바심’으로 연결되는 부정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되는 것이다.


(1) 다른 사람도 나를 보며 열등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람은 누구나 다 비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내가 부러워하는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나를 부러워할 수 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100억대 재산가가 있다. 평범한 사람으로는 생각하기 힘들 만큼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이기에 난 그가 늘 부러웠다. 그리고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최고경영자 과정에 등록하는 것을 보았다. 물어보니 그는 공부 그 자체보다는 최고경영자 과정을 졸업했다는 타이틀 그 자체가 더 필요했던 것이다. 돈이야 얼마든지 있으니 돈으로 그 타이틀을 사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시기하고 질투하던 그 사람은 은연중 내가 가진 학력이나 주변의 인맥을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부러움과 질투를 느낀다. 많이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는 법, 많이 가진 사람들은 또 그들대로 더 많이 가진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부러움과 질투를 느끼게 마련이다. 그러니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도 나에 대해 또 다른 측면에서 부러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굳이 내가 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열등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적어도 나는 그 사람에게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질투를 느끼고 열등감을 느낄 때에는 자신이 가진 강점이나 장점을 다시 한번 돌아보라. 이는 앞서 언급했던 장단점 찾기와 동일한 개념이다. 천천히 자신을 되돌아보다 보면 그 사람보다 뛰어난 면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상대가 나의 장점, 나의 강점을 부러워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라. 그 대상이 꼭 물질적인 것일 필요는 없다. 젊음, 건강, 성격, 친화력, 유머감각, 인간성 등 그 무엇이라도 나의 장점, 나의 강점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라. 그러면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 이것이 비교하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이다.


(2) 비교는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많음을 인식하라

두 번째 방법은 앞서 언급한 일시적인 조바심을 다스리는 방법과 동일하다. 일종의 인지행동치료인데, 비교라는 것이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비교를 통해 마음의 상처를 얻는다. 나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보통 사람들은 위를 쳐다보며 살기 때문이다. 산을 오를 때 오르막 길에서는 발아래 펼쳐진 기가 막힌 풍경을 감상하기 어렵다. 힘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려오는 길에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을 오르는 것보다는 내려가는 것이 덜 힘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위를 바라보고 걷다 보면 삶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 그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긍정과부정.jpg [비교는 긍정보다는 부정의 측면이 더 많음을 인지해야 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누군가 위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고 그들과 나를 비교하면 나의 삶이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자신이 상처 받을 수 있음을 깨닫고 비교를 멈추어야 한다. 한 달 동안 열심히 일을 해서 500만 원의 수입이 있었다고 쳐보자. 그 돈으로 아껴 쓰면 한 달을 생활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수 있다. 씀씀이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저축도 가능할 수 있다. 그러면 나의 삶은 만족스러워진다.

그런데 위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진다. 고급 차를 타고 명품 가방을 들고 비싼 옷을 입으며 고급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보는 순간 내가 만족하며 받아들였던 500만 원의 수입이 형편없이 작게 느껴질 수 있다. 그 순간 나는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비교를 통해 힘든 상황으로 나를 몰아넣게 되는 것이다.

비교는 대부분 부정의 결과를 가져온다. 물론 건강한 비교를 통해 삶을 긍정적이고 발전적으로 이끌어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비교는 늘 자신보다 위에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비교의 끝은 상처가 될 수 있다. 그것을 인지해야 한다. 스스로 상처 받지 않고 싶다면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수밖에 없다. 비교의 결과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 비교를 하려는 마음을 어느 정도는 다스릴 수 있다.


(3) 매일 감사일기를 써라

하지만 다짐만으로는 비교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따라서 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감사일기를 쓰는 것이다. 앞서 칭찬일기가 자신감을 갖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처럼 감사일기는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려는 마음을 억제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미 감사일기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감사일기란 매일매일 자신의 삶에서 감사할 일을 찾아 그것을 글로 적는 것이다. 칭찬일기도 마찬가지지만 생각해보면 누구나 하루에 몇 가지 정도는 감사할 일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도 찾아보면 감사할 일들이 많다. 아프지 않은 것도 감사할 일이고, 사랑하는 사람이 다치지 않은 것도 감사할 일이며, 하루 동안 큰일이 없이 지나간 것도 감사할 만한 일이다. 꼭 무언가 쾌락이나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일이 있어야만 감사할 일은 아니다.

감사일기는 과학적으로 효과가 검증된 방법이다. 마틴 셀리그만은 심각한 우울증 환자 50명을 대상으로 감사일기를 쓰도록 하였다. 이들의 우울증 점수는 평균 34점으로 극단적인 우울증 범주에 속한다. 가까스로 침대 밖으로 나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다시 가까스로 침대 속으로 들어갈 정도이다. 이들에게 일주일 동안 매일 그날 감사한 일 세 가지를 적고 왜 감사한지 이유를 함께 적도록 했다. 그러자 그들의 우울증 점수는 34점에서 17점으로 내려갔다. 극단적 우울증 증세에서 경미한 수준으로 바뀐 것이다. 반면 행복 백분위 점수는 15점에서 50점으로 올라갔다. 50명 중에서 47명이 감사일기를 쓰고 난 후 덜 우울하고 더 행복해졌다고 느꼈다. 이 연구를 진행한 셀리그만에 따르면 지난 40년 동안 심리치료와 약물로 우울증을 치료했지만 그러한 결과를 목격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감사한 기억을 세는 활동이 향후 6개월까지 행복감을 증진시키고 좌절감의 징후를 감소시킨다고 한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직장을 그만두고 경제적 절벽과 마주하면서 깊은 좌절에 빠졌었다. 아무리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쳐도 소용이 없었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예상보다 심한 정신적 고통이 찾아왔다.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감사일기를 알게 되었고 그날부터 당장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하루에 감사할 만한 일을 다섯 가지 찾아서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주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강의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식회사 고구려』는 2015년도 문화관광부에서 주관하는 세종 도서에 선정되어 재인쇄에 들어갔고, 새로 집필한 책의 출판계약도 체결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들이 감사일기를 쓴 덕분인지 아니면 우연히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지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감사일기를 쓰는 것이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누군가와의 비교로 인해 마음이 답답할 때 감사일기를 쓰게 되면,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원망하던 마음이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고마움으로 바뀔 수 있다.

감사일기를 쓰는 요령은 간단하다. 하루를 마감할 시점에서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며 감사할 만한 일을 찾아본다. 그리고 그 이유와 함께 감사한 내용을 적어본다. 내용이 길 필요는 없다. 감사한 내용과 이유가 포함되어 있기만 하면 된다. 만일 하루 동안 특별한 일이 없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를 부여하여 감사하면 된다. ‘오늘 하루 아프지 않고 보낼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는 식으로 말이다. 아래는 내가 직접 쓴 감사일기의 예시다.

<감사일기 예시 1>

늦지 않게 내일 강의 준비를 잘 마칠 수 있어 감사합니다.


<감사일기 예시 2>

오늘 의경으로 복무 중인 아들이 다녀갔습니다. 비록 짧은 외출이었지만 얼굴 볼 수 있어 감사합니다.


<감사일기 예시 3>

가족들과 맛있는 저녁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book-1945499_960_720.jpg [감사일기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게 만들어준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앞서 예를 든 것처럼 한 달에 500만 원을 벌었다고 치자. 같이 강의하는 다른 사람을 보니 1,000만 원을 벌었다고 하면 자존심이 상하고 자괴감이 느껴지고 열등감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 돈이 없었다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할 수 있었을 텐데 그 돈으로 인해 한 달을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감사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노자는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그 결과 오래오래 갈 수가 있다(知足不辱 可以長久)고 하였다.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만족하고 감사하면 시기나 질투를 느끼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대로 오래갈 수 있다.

감사는 말로 꺼내 놓기가 무척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종종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었는데 그 사람이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내 마음이 상할 수 있다. 사람들은 ‘굳이 내가 감사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아도 상대방이 알겠거니’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감사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친절을 베풀고도 감사하다는 말을 듣지 못한 사람들은 상대방에 대해 괘씸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감사의 감정은 어렵더라도 적극적으로 외부로 노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감사일기는 굳이 남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것이므로 부담 없이 적을 수 있다. 감사일기를 적다 보면 자신이 가진 것들이 비록 적을지라도 소중하게 여겨질 것이고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얻은 마음의 상처도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4) 네트워크에 연결되는 기회를 줄여라

비교하는 습관을 없앨 수 있는 네 번째 방법은 SNS 등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컴퓨터와 통신, 인터넷 등의 기술 발달로 인해 세계는 콤팩트하게 압축되었고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속속들이 알아야 하는 기회도 훨씬 많아졌다. 이러한 것들에 대해 무심하게 지나치면 상관이 없지만 현대인들이 생활습관은 그런 것들조차 무심코 지나지 못하게 길들여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러한 생활습관은 무의식적인 비교를 불러오고 그 속에서 경쟁의식과 열등감을 불러오게 만들고 있다. 이것을 인지해야 한다.

가급적이면 SNS 등을 멀리하는 것이 좋다. 앞서도 언급하였지만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대부분 자기 자랑이다. 멋진 장소에서의 휴가, 군침이 도는 맛깔스러운 음식, 친한 친구들과의 즐거운 시간, 명품 가방이나 옷, 시계 등의 자랑, 대형 프로젝트의 종료로 인한 성과 등을 자랑하는 내용이 SNS를 도배한다. 그러한 것들을 보다 보면 자기 자신이 초라하게 여겨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나 SNS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시기나 질투를 느낄 가능성이 더욱 크다. 그러므로 그러한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SNS를 멀리 하고 어떻게 살 수 있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SNS 없이도 삶은 충분히 영위 가능하다. 굳이 남들 자랑하는 것을 보면서 속을 끓일 이유가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말처럼 다른 사람의 자랑에 상처 입는 것이 싫다면 그 공간을 멀리 하면 된다. 이미 SNS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멀리 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천천히 그것으로부터 멀어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비교와 그로 인한 열등감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에 대해 다루었다. 마지막으로 누군가와의 비교를 통해 질투심을 느끼거나 열등감을 느낄 경우 장자의 이야기를 되돌아보면 좋을 것 같다. <장자>의 ‘인간세(人間世)’에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쓸모없는 것의 쓸모 있음’이라는 의미로 장자의 친구 혜자(惠子)와 당시의 이름난 목수인 장석(匠石)을 가상으로 등장시켜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다.


혜자 : 언젠가 내 친구 장자에게 이런 비유를 들면서 불만을 털어놓았다네. ‘우리 집에 큰 나무가 있는데 몸통은 썩어 파였고, 울퉁불퉁 혹이 나서 먹줄로 잴 수 없고, 작은 가지는 오그라지고 꼬여서 목수들이 거들떠보지 않는다네. 이처럼 장자 자네가 한 말은 크기만 할 뿐 쓸 데가 없다’고 말일세.

장석 : 그랬더니 뭐라 말씀하시던가요?

혜자 : 장자가 말하길 ‘자네는 큰 나무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이 쓸데없다고만 탓한다’고 하더군. ‘그러면 도끼날에 베이는 일이 없고 아무한테도 해를 입지 않을 텐데, 쓸모없음이 무슨 걱정거리가 되겠느냐’고 말일세. 자네는 혹시 이런 말을 들어봤나?

장석 : 소인이 제나라로 가는 길에 상수리나무를 보았죠. 그런데 배를 만들면 금방 가라앉고 관(棺)을 만들면 금방 썩고 그릇을 만들면 금방 망가질 나무였습니다. 재목이 못 되는 나무, 쓸 데가 없는 나무였죠.

혜자 : 자네는 목수이니 누구보다 그 나무의 쓸모를 잘 알 테지.

장석 : 한데 그날 밤 소인의 꿈에 그 나무가 나타나더군요. 그리고 이리 말하더이다. ‘과일나무들은 열매가 익으면 빼앗기고, 큰 가지는 꺾이는 수난을 겪게 된다. 자기들이 타고난 재능 때문에 삶이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쓸 만한 구석을 없애려고 노력해온 지 오래됐다. 몇 번 죽을 뻔했지만 지금은 목숨을 잘 보존하고 있으니, 그것이 나에게는 큰 쓰임인 것이다.’ 소인의 짧은 생각으로 감히 아뢰건대, 아마 나무의 이 말과 맥이 통하는 말씀이 아닌가 하옵니다.

혜자 : 쓸모없음이 쓸모 있다? 그러고 보니 <장자>의 ‘인간세’ 말미에 이렇게 쓰였다지? ‘사람들은 모두 쓸모 있는 것의 쓰임새(有用之用)는 알면서도 쓸모없는 것의 쓰임새(無用之用)는 알지 못한다’고. 집에 돌아가서 그 큰 나무를 다시 보아야겠네 그려.

장석 : 하면 사람에게도 무용지용이 해당될 수 있겠사옵니까?
(◇참고도서=『장자』(장주 지음, 김갑수 옮김, 글항아리)


‘뒷산은 옹이 진 나무가 지킨다’는 말이 있다. 나무가 곧고 쭉쭉 뻗어 있으면 보기가 좋지만 그렇게 곧게 자란 나무들은 언젠가는 집을 짓는 재목으로, 또는 배를 만드는 재료로 잘려 나간다. 옹이 지고 구부러진 나무는 집을 짓는 재목으로도 쓸 수 없고 배를 만드는 재료로도 쓸 수 없으니 늙도록 그 자리에 남아 숲을 이루고 산을 지키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잘 나가는 사람들은 그 잘남으로 인해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주역(周易)』에 항룡유회(亢龍有悔)라는 말이 나온다. ‘하늘 끝까지 올라간 용은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긴다’는 뜻이다. 물을 벗어나 하늘 끝까지 올라간 용은 내려갈 일만 남아 있다. 최고의 경지에 달한 사람들도 언젠가는 그 자리에서 내려갈 수밖에 없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후대에 오는 사람들에게 그 자리를 내어 주고 내려갈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 무한한 부귀영화는 있을 수 없다.

지금 나보다 잘 나가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 자리에 영원히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언젠가는 내리막길이 나타날 것이다. 빠르게 정상을 찍은 사람들은 내려가는 것도 빠르다. 그들이 잘 나가는 것을 보며 부러움을 느꼈던 사람들이 언젠가는 나보다 밑에 있을 수도 있다.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꽃이 늦게 핀다고 해서 조바심 낼 필요가 없다. 일찍 핀 꽃은 일찍 질뿐이다. 일찍 핀 꽃은 누군가에 의해 꺾일 수 있지만 늦게 핀 꽃은 뒤늦은 아름다움으로 인해 더욱 오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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