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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뚜루 Oct 14. 2021

당신은 존중받으며 일할 자격이 있다

<크래프톤 웨이>

지난 주말, 간만에 동네서점에 가서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소설가 박상영과 김초엽의 신간이 매대에서 번쩍번쩍, 어서 자기를 픽업하라고 외쳐대는 듯했지만 선뜻 손이 뻗치지 않았다. 대신 집어 든 책은 <크래프톤 웨이>라는 경영 서적이었다. 나 이런(?) 책은 돈 주고 안 보는데(하지만 내 손은 이미 점원에게 카드를 건네고 있..). 아마도 요새 내가 '일잘러'의 다양한 모습들에 대해 알게 모르게 마음을 쓰는 모양이다.

부제 배틀그라운드 신화를 만든 10년의 도전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일할까. 나의 작은 성공 경험과 장병규의 큰 성공 경험을 비교해가며 읽어보기로 한다.



1. 나는 왜 일하는가


장병규네오위즈를 공동 창업하고 세이클럽을 만든 스타트업계 미다스의 손이다. 온라인 검색 서비스 업체 첫눈을 창업해 네이버에 350억 원을 받고 팔기까지 했다. 하지만 막대한 부를 이룬 그에게 찾아온 것은 공허함이었다. 벤처캐피털을 차리고 나서도 한동안 무력감을 느꼈던 그는 다시 창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돈과 명예를 갖춘 장병규가 창업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돈과 명예라는 것은 본질이 아닌 부산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과 상관없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뭔가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존재감을 느낍니다. 돈 버는 것 자체는 재미가 없고, 돈이 많다고 해서 자존감이 생기지 않습니다. 사람들과 뭔가를 이뤘을 때 즐거움과 행복을 느낍니다.


내가 인스타툰 <삼우실>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작 팔로워 20만 명을 찍었을 때는 그닥 기쁘지 않았고, 세상에 없던 인스타그램 계정을 파서 콘텐츠를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갈 때, 팔로워 0명에서 팔로워 백 명, 천 명, 만 명으로 늘어갈 때가 가장 즐거운 순간이었다.


삼우실은 업무상 저작물이라 이걸 성공시킨다 해도 내가 부자가 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지만, 뭔가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살아있음을 느꼈다. 왜 그런 말 있잖아. "김뚜루, 싸롸있네?!" 그때처럼 회사 출근이 기다려졌던 적이 없다. 오늘은 뭐 해야지, 내일은 뭐 해야지, 하는 식으로 하루 또는 주간 단위로 계획을 짰고, 그 계획들을 다 이뤄내면 엄청난 성취감뿌듯함이 몰려왔다.



노동자는 대체가 가능합니다. 공장에서 사람 하나 빠지면 2~3일 지나 곧바로 다른 인력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재는 대체 불가능합니다. 그 사람이 하던 일을 다른 사람이 그 수준으로 못 합니다.


그때의 나는 장병규식 표현을 빌리자면 '대체 불가능한 인재'였다. 새로운 실험들을 계속하면서 꾸준히 좋은 성과를 냈다. 무엇보다도 '상사를 멕이는' 삼우실만의 B급 감성은 온전히 나로부터 태동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내 포맷을 따라 해도 내 감성까지 따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자부심으로 2년을 일했다. 그리고 육아휴직 후 보도국으로 돌아온 지금, 나는 여전히 '대체 불가능한 인재'이고 싶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도 않은 콘텐츠 기획안을 쓰고 로포절을 작성한다. 근데 이건 내가 단순히 인재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재밌어서 하는 것이다(재미없어 봐. 미쳤다고 그걸 해...?ㅋㅋㅋ).



그런데 장병규의 저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내 기준에선 그렇다. 직장인은 대체 불가능한 인재인 동시에 대체 가능한 노동자여야 한다. 나 없어도 돌아가는 회사가 정상적인 회사다. 나 하나 빠졌다고 해서 망하는 회사는 1인 기업이다. 물론 대체 불가능한 인재가 빠지면 티가 나겠지. 그렇다고 해서 회사가 흔들리지는 않는다. 구태여 이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당신이 퇴사할까 말까, 휴직할까 말까, 휴가 낼까 말까, 오늘도 고민한다는 걸 알아서. 그러니 원한다면 퇴사해요, 휴직해요, 휴가 내요. 우리 없어도 회사는 잘만 돌아갑디다.


나는 대체 불가능한 인재로 대접받으며 일하고 싶지만, 내가 필요할 땐 언제든 대체 가능한 노동자이고 싶다. 만약 몸이 안 좋았던 내가 6개월간 무급휴직을 쓰지 못했더라면? 난임으로 고생했던 내가 임신 초기 두 달간 무급휴직을 하지 못했다면? 딸이 심장 재수술을 받았던 4주간 가족돌봄휴직을 하지 못했더라면? 삼우실을 만든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아니. 단언컨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대체 가능한 노동자'로서 쉴 권리를 보장받았기에 '대체 불가능한 인재'로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 것이다. 그러니 "노동자는 대체 가능하고 인재는 대체 불가능하다"는 장병규의 명제는 절반짜리 정답이다. 노동자=인재라는 명제도 성립할 수 있기에.


 

2. 나는 어떻게 일하는가


노동자가 스스로 인재이길 자처하는 경우도 있지만, 노동자를 인재로 끌어올릴 수 있는 9할의 힘회사(또는 리더)에 있다. 확실한 비전을 심어주거나, 확실한 인센티브를 주거나. 둘 외엔 한낱 부지깽이일 뿐이다.


낯선 사람들이 하루 종일 부대끼면서 굳이 회사에 모여 일하는 이유는 비전('MMORPG의 명가')에 헌신하기 위함입니다.


초기 스타트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근데 내가 만약 삼성에 다닌다 치자. 내가 삼성의 비전에 헌신하기 위해 회사에 다니나?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는 언론사에 다니니까, 언론의 비전에 헌신하기 위해 언론인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내가 KBS의 비전에 헌신하기 위해서라는 둥 MBC의 비전에 헌신하기 위해서라는 둥 특정 언론사의 비전에 헌신하기 위해 회사에 다니는 건 아닐 터. 나는  비전이 좀 더 다운사이징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다니는 회사 말고 내가 맡은, 또는 내가 속한 프로젝트를 떠올려보면 어떨까. 비전이 명확하면 뚜렷한 목표가 생긴다. 목표가 생기면 액션(동사)이 붙는다. 노동자건 인재건 좌표를 향해 달려가게 만드는 , 그게 바로 프로젝트의 힘 아닐까. 관건은 회사(또는 리더)가 그 프로젝트에 얼마나 힘을 실어주느냐, 되시겠다.


창업자들은 제작자들을 위한 보상안도 확실하게 세웠다. 게임을 출시해 이익이 나면 개발자에게 일정 비율을 배분하는 원칙을 마련했다. 또 직원들에게 회사 주식을 인센티브 방식으로 공정하게 제공해 회사의 성장과 개인의 성장을 일치하게 만들기로 결정했다.

 

회사의 성장과 개인의 성장을 일치하게 만든다는 데서 밑줄 쫙! 이 둘이 일치하면 어마어마한 퍼포먼스로 이어진다는 걸 경험해봤기에 이 문장은 틀린 구석이 없다. 다만, 이같은 경지에 이르려면 반드시 따라야 하는 보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인센티브다. 그래, 그거, 돈. "돈이면 다 돼?"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돈은 상당히 중요하다.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 가비가 유튜브 영상에서 그런 말을 했다.


난 보수 없인 일하지 않아. 보수는 '존중'이야. 내게 지불할 의사가 없다면 날 존중하지 않는다는 거지.

우리는 모두 존중받으며 일할 자격이 있다.

(날 존중하지 않는다면 월급만큼만 일하는 수밖에!)


출처: 삼우실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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