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층간소음 갈등이 치달으면서 슬픈 일이 부쩍 잦아지는 것 같다. 층간소음 관련 드라마 대본을 쓴 적이 있어서 더 마음이 쓰인다. 그러다가 문득 내 단막극 대본, <빌런의 윗집에 산다>를 공개하고 싶어졌다. 지난 6월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에 다니면서 완성했던 초고다. 애정하는 나의 구독자분들께 처음으로 공개한다. 많이 부족하지만 재밌게 읽어주세용!! (※저작권 등록을 마친 작품입니다.)
빌런의 윗집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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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받고 층간소음 빌런들을 처리하는 ‘1인 기업’ 최선을이
아파트 건설사를 응징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건설사 사장의 윗집으로 이사하면서 벌어지는 관계전복 탄산 드링킹 코미디
주제
타인의 고통에 무감했던 자들이 바짝 예민해지기를.
기획의도
새벽 2시. 천장에서 또르르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소리, 콰르르 콸콸!
윗집이 욕조에 목욕물을 받는 소리다.
그래, 이 시간에 똥을 싸야 너지. 이 시간에 목욕을 해야 너지.
그래야 내 윗집이지!!
이 드라마는 공동주택에 살면 누구나 겪는 층간소음 얘기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 우린 어쩌다 내 이웃을, 네 이웃을 미워하게 됐을까?
망상장애에 칼부림까지! 점점 심각해지는 층간소음 사태를 보면서
마치 회사가 노동자들 간 싸움을 붙이는 ‘노노갈등’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빌런(사측)은 따로 있는데 말이지..!!
싸구려 방음재를 쓰는 건설사들, 손 놓은 국회의원들.
이런 공감 제로 빌런들에게 당연한 진리를 깨우치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당해봐야 정신 차리지?!!”
등장인물
선을(남, 31)
‘1인 기업’ 층간소음연구소 소장. 4년 전, 창업한답시고 가산을 탕진하다가 엄마의 등짝 스매싱에 못 이겨 집을 뛰쳐나왔다. 이것저것 사업 아이템을 들쑤시다 층간소음 사업으로 정착한 지 6개월째. 그럭저럭 먹고 산다. 앞으로의 꿈? 35살엔 내 집 마련하기! 좌우명은,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거!!
새봄(여, 26)
기자 지망생. 선을에게 층간소음 보복을 의뢰한다. 건설사들이 방음도 잘 안 되는 싸구려 자재를 쓰는 것에 분개, 그들도 똑같이 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돈보단 사람이 먼저니까! 그런 그녀에게 1억 원이 찍힌 의문의 통장이 있었으니.. 대체 뭔 돈일까. 새봄은 금수저? 아님 층간소음 희생자 유족..?
병도(남, 56)
맨손으로 헤븐건설에 입사해 대표이사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그만큼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사업을 밀어붙인다. 수익성만 높일 수 있다면, 층간소음 부실시공도 OK! 돈만 보고 달려온 ‘헤븐맨’의 30년 외길인생에 처음으로 거슬리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윗집으로 이사 온 ‘개X노무 새끼’ 되시겠다.
나정(여, 54)
병도의 아내. 병도 앞에선 끔뻑 죽지만, 실상은 ‘여자 병도’나 다름없다.
봉춘(남, 60대)
4선 국회의원이자 국회 국토위 위원장. 체면치레와 ‘센터’ 자리를 중시한다.
그 외 여러분
2103호 노부부(70대 후반), 최강건설 사장(남, 50대), 스카이물산 사장(남, 60대), 경비원, 병도 비서, 화평아파트 주민 등.
씬1. 화평아파트 601호 앞 + 거실 (낮)
선을, 현관문을 활짝 열어젖히면.
에어바운스, 트램펄린, 붕붕카들 휘황찬란 번쩍이는데. 키즈카페가 따로 없다.
선을을 밀치고 ‘우와아아’ 뛰어들어가는, 노란색 원복 입은 아이들.
선을과 어린이집 교사(여, 30대), 문을 닫고 거실로 들어서는데.
교사 정말 밑엣집에... 사람 없죠..? 저희야 감사한데..
선을 진짜 없다니까요. ‘(n) 사람은 없고.’
트램펄린 깔짝깔짝 뛰는 남자아이가 선을 눈에 들어온다.
선을 (다그치듯) 아니지, 아니지. (맨바닥에서 쿵쾅쿵쾅 뛰며) 야, 봐봐. 이렇게 뛰어야지. (혼신을 다해 점프하는 모습이 슬로우모션으로 잡히고) ‘(n) 사람은 없고 빌런이 살지.’
점프하는 선을의 발이 망치로 변하면서 바닥재를 쾅 때리면.
아파트 구조 단면이 보인다. 바닥재 아래 콘크리트, 방음재, 아랫집 천장 순으로 화면이 이동하면서 타이틀 <빌런의 윗집에 산다> 오른다.
씬2. 동 아파트 501호 거실 (낮)
501호(여, 50대), 거실에 신문지 깔아놓고 절구통에 마늘 찧는데.
천장에서 쿵쾅쿵쾅 소리 들리자 방망이질 멈춘다.
‘또 시작이야?’ 하는 표정으로 천장을 째려봤다가, 다시 방망이질 하는데.
우당탕탕 쿵쾅쿵 소리가 점점 더 요란해진다.
천장을 또 째려보는 501호. 질 수 없어서 분노의 방망이질을
땅땅땅땅땅 때려 보지만 소용없다. 천장 소음 더 커질 뿐이고.
501호 (방망이 내던지며) 아잇씨. (관자놀이 누르며) 아이고 아이고, 골아. (방망이 들고 일어서며) 끝장을 보자, 끝장을!! (밖으로 나간다)
씬3. 동 아파트 501호 앞 + 계단 (낮)
씩씩거리며 나오는 501호. 어째 윗집이 아닌, 아랫집으로 내려가는데.
씬4. 동 아파트 401호 앞 (낮)
현관 벨을 누르는 501호. 인기척 없자 문을 탕탕 두드린다.
501호 애기 엄마,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현관문 열리고 쭈뼛쭈뼛 나오는 401호(여, 30대). 품에 갓난아기를 안고 있다.
401호 (경계) 왜요.
501호 (다짜고짜 무릎을 턱 꺾고) 내가 잘못했어. 그냥 싹 다 미안해, 내가. (일어나 방망이 건네며) 이거, 애기 엄마 해. 앞으로 나 다진마늘 사 먹을게.
401호 (좀 풀린) 피아노는요..?
501호 아유, 낮에만 쳐야지. 그니까.. 601호 좀 그만하라고 해, 응? 내가 혈압이랑 두통 땜에 요새 살 수가 없어.
401호 언젠 제가 예민한 거라면서요.
501호 (손사래) 하아아나도 안 예민해. (가슴 부여잡고 따흑) 내가 당해보니까..
401호 저도 이렇게까진 안 할라 했는데 애기가 깨서.. 이해하시죠?
501호 아, 그러엄! 어쨌든 이제 우리 휴전, 아니 종전이다? (아기 보며) 엄마 닮아 이쁘네. (내려가다가 멈칫, 돌아보며) 근데.. 윗집 어떻게 한 거야? 원래 개미 소리 하나 없댔는데.
씬5. 동 아파트 601호 앞 (낮)
선을 용돈 좀 챙겨드렸죠. 언제든 와서 뛰라던데.
아기띠를 한 401호와 선을, 마주 서 있다.
401호 (웃으며) 그러셨구나. 어쨌든 사과도 받고, 다신 안 그런다고 하시니까 그만하셔도 돼요. 정말 고맙습니다. (깊이 고개 숙였다가 고개를 드는데 눈앞에 영수증이 턱, 하니) 이게.. 뭐예요?
선을 (off) 진행비요.
401호, 영수증에 적힌 지출 내역을 보는데 얼굴이 점점 일그러진다.
<인서트 / 영수증>
윗집 섭외비 30만원, 우퍼스피커 16만원, 에어바운스 5만원 등등 55만원
선을 (최종 영수증 건네며) 제 수임료까지 해서 총 100만 8900원입니다.
401호 (기가 차고) 아니이... 우퍼스피커, 인터넷 보니까 3만원짜리도 있던데..?
선을 (단호) 100만원.
401호 뭐가 그렇게 비싸요? 특별히 한 것도 없으면서... (폰으로 계좌 이체하고 신경질) 아, 했어요!!
선을 (폰으로 입금 확인하고 웃으며) AS 필요하면 연락 주세요. 기존 고객님은 10프로 할인해드려요.
401호 (이미 계단 내려가고 있고)
선을 (지켜보며 입이 댓 발 나온다)
씬6. 동 아파트 지상 주차장 (낮)
박스를 잔뜩 실은 카트 끌고 나오는 선을. 소형차 레이 앞에 선다.
선을 저러니까 안 돼, 저러니까. 그 돈 뭐 아깝다고 벌벌벌.
선을, 트렁크에 박스를 옮기는데. 연달아 울리는 모바일 뱅킹 알람.
폰 확인하면. 학자금 대출 12만원, 관리비 10만원, 주차비 5만원 등등 빠져나가
순식간에 잔액 15만원으로 쪼그라든 선을의 계좌.
선을 (허탈) 다 뜯어가라... (전화 받으며) 네? 자동 갱신되는 거 아니었어요?
집주인 (f) 뭔 자동 갱신 같은 소릴 하고 있어, 4년 전 시세로 들어왔음서.
선을 그래서.. 얼마 올리실 건데요..?
집주인 (f) 그 뭐냐 전월세 상한젠가? 5프로 이내로 올려야 된다며? 499만 9999원만 줘.
선을 예??? 갑자기 보증금 오백을 어디서 구해요.
집주인 (f) 아니 그럼 돈에 사람을 맞춰야지, 사람에 돈을 맞춰? 됐고! 돈 안 주면 나가는 걸로 알 테니까 그리 알어. (뚝)
선을 (잠시 정적, 소리 지르며) 야아아아아!!! (다리가 풀려, 차에 걸터앉은 채 폰으로 엄마 검색한다. 전화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데)
<인서트 / 선을의 상상>
선을모 그니까 집 놔두고 뭐하러 쓸데없이 돈을 배려? 빨리 안 기어들와?
선을 (고개를 절레 흔들며) 어떻게 독립했는데. 절대 못 가.
씬7. 아파트 건설현장 (낮)
외벽 페인트칠만 남겨둔 고층 아파트 2000세대. 출입구 앞에서 확성기와
피켓을 든 사람들이 시위하고. 맞은편엔 방송국 카메라들이 시위 현장 찍는다.
<인서트 / 피켓 문구>
층간소음에 취약한 싸구려 자재 웬 말이냐, 2000세대 입주 예정자가 봉이냐.
확성기 (선창) 층간소음√ 부실시공이√ 웬 말이냐.
시위대 (후창) 웬 말이냐.
확성기 (선창) 헤븐건설√ 신병도는√ 즉각 사죄하라.
시위대 (후창) 사죄하라, 사죄하라.
새봄, 열 걸음 떨어진 곳에서 입주 예정자(남, 40대)를 인터뷰한다.
입주민 (열폭) 대기업이래매? 근데 집을 이딴 식으로 지어? 아니 막말로, 지들한테 이런 집 살라면 살겠냐고!!!
새봄 (이거다!)
입주민 근데.. 어디 기자세요?
새봄 (표정)
씬8. 도로 + 선을의 차 안 (낮)
광화문 이정표가 보이는 도로 위. 선을의 차, 신호에 걸려 멈춰선다.
선을 눈에 빌딩 전광판 뉴스 들어오는데. 앞뒤 뉴스 내용 완전 딴판이다.
<인서트 / 뉴스>
- 병도가 국토부 장관에게 표창받으며 웃는 모습
자막 ‘헤븐건설 신병도 사장, 최우수 건설 사례 국토부 장관 표창’
- 씬7의 아파트에서 인부들이 싸구려 방음재를 바닥에 까는 모습
자막 ‘헤븐건설, 싸구려 방음재로 부실시공 의혹’
선을 (폰 검색하며) 내년 입주네. 오, 좋아 좋아..
씬9. 선을의 집 앞 (낮)
오피스텔 복도를 걷는 선을. 자기 집 앞을 서성이는 새봄을 본다.
새봄, 현관에 걸린 ‘층간소음연구소’ 현판을 보고 있다.
선을 어떻게 오셨어요?
새봄 (현판 보며) 소음과 소리의 차이.. 아세요?
선을 (뭐래) 예???
새봄 (선을 보며) 최선을 소장님..?
선을 (고갱님인가? 표정 밝아지고)
씬10. 선을의 집 안 (낮)
원룸 복층으로 되어 있는 오피스텔. 책상과 응접 소파 놓여 있다.
사무실처럼 보이게 하려고 나름 애쓴 흔적. 복층엔 침대 있다.
선을과 새봄, 소파에 마주 앉았는데.
새봄 (쪽지 내밀며) 이 집, 의뢰하고 싶어서요.
<인서트 / 쪽지>
서울 강남구 센트럴리버파크 105동 2003호, 라고 적힌 쪽지
선을 (n) 강남? (폰으로 검색하고) 허억! 54평에 매매가 43어어억? 금수전가..?
새봄 비용이 얼마나 들까요?
선을 얼마 주실 수 있는데요.
새봄 말씀하시는 금액에 맞춰야죠.
선을 (진짜?)
<인서트 / 플래시백. 씬6>
선을 예??? 갑자기 보증금 오백을,
선을 '(n) 여기서 구해?' 오.. 오백이요.
새봄 네.
선을 네?
새봄 네?
선을 아 네.. 오백...
<인서트 / 선을의 상상>
“오백이다아아!!” 신나서 둠칫둠칫 내적 댄스를 추는 선을.
새봄 저기.. 부탁이 있는데..
선을 (보면)
새봄 제가 의뢰한 거, 비밀로 할 수 있을까요?
선을 '(n) 의뢰인 뻔하지 뭐. 윗집 아니면 아랫집인데.' (웃으며) 그럼요.
새봄 (선을의 명함 들고 나가면서) 이 계좌로 입금할게요.
선을 저기..!
새봄 (돌아보면)
선을 착수금 오백에.. 진행빈 별돈데..
새봄 상관없어요. (나가면)
선을 폰에 입금 알림 뜬다. 계좌에 꽂힌 오백만원을 끔뻑끔뻑 보는 선을.
선을 (흥분, 전화하며) 아줌마! 보증금 오백, 콜! (전화 끊고 흥부자처럼 춤춘다) 신나리셔스! 신나리셔스!
씬11. 센트럴리버파크 105동 앞 (낮)
선을, 25층까지 높이 뻗은 아파트를 올려다본다.
황토색 가방에서 우체국 조끼와 모자를 꺼내서 걸치는 선을.
조끼 자락 휘날리며 비장하게 걸어간다.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