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 은사

by 하니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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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지금까지도 그렇고

영원히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


리영희 '우상과 이성' 머리말 중에서




리영희 선생님은 스스로의 고독을 벗삼아, 동시대인들을 양심과 자유의 동토로 이끈 사상의 은사였다.


나는 삼십 대 초반, 선생님의 시리도록 엄정한 글에 뒤늦게 매료되었다.

전집 중 몇 권을 샀고, 주말이면 그 중 한두 권을 골라 엄마와 은평구립도서관에 올랐다.

얕은 술수 없이, 우직함을 다해 읽어야 하는 두꺼운 글들이었다.


어려워서 오래는 못 봤다.

영화 한 편 때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간혹 이유 없이 행복할 때가 있었다.


그 때는 친구들이 시집, 장가를 마쳐가던 무렵이었다.

'나는 왜 이 모양인가?', '나도 좋은 사람인데?' 라는

자책과 위무가 섞인, 기약 없는 상대적인 외로움에 지쳐,

'평범함'에 대한 미움으로 잠식되어 살던 시절이었다.


바싹 마르고 뒤틀린 성마른 가슴에,

침묵 속에서 한 글자씩 토해낸 선생님의 곧게 외로운 정신 하나하나가

칼처럼 베어들어 행복이 되었다.


같지만 너무 다른 외로움이 주는,

'세상이 나를 업수이 여겨서 홀로 두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의롭고 따뜻한 온기가 있었다.


그때의 나에게 필요한 것은 '다정함'이었다. 약간이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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