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7급 동기들과의 충주행.
충주세무서 납보과장으로 발령받은 막내를 위문하는 여행은 네 달 만에야 성사되었다.
함께 여행을 떠난 건 1년 반만이었다.
그때는 각 집의 막둥이들을 데려갈 수 있었는데.
저간의 시간 동안 막둥이들의 자아는 훌쩍 비대해졌다.
부모도, 자식도 '때'를 놓치면 그뿐이다.
큰 형님이 계신 철산으로 집결했다.
급작스레 내 차로 가자 하신다.
간밤의 숙면 덕에 흔쾌히 받아들였다.
두 시쯤 충주에 도착해 중앙탑 부근 막국수집으로 향했다.
미라클 주니방에 식당 사진을 올리자, 존경하는 '글터지기' 형님에게서 바로 전화가 왔다.
정꾸러기 형님다웠다.
일행이 있어 뵐 시간을 못 낸다고 말씀드렸다.
진심으로 흠모하는 분이라 아쉬웠다.
봄쯤에 시간을 내어 찾아뵐 것이다.
새벽에 서울을 급히 다녀온 막내가 바로 합류했다.
그렇게 기름기 쏙 빠진 담백한 치킨은 처음이었다.
기분을 살짝 내느라 맥주 한 병을 시켰다.
존귀한 추억의 시작이었다.
막국수는 쫄깃했고, 다 먹고 나오니 백여 미터 앞에 더 쫄깃한 막국수가 차려져 있었다.
이번 여행의 백미였다.
우리 독수리 오형제에게 오래 회자될 두근거리는 맛이었다.
10년 넘도록 휘둥그레한 것 앞에서, 딸을 먼저 떠올려 마늘이 늘 섭섭해했는데.
그 막국수 앞에서는 마늘만 떠올랐다.
사랑하기로 다짐했다.
두레 베이커리로 향하는데, 마늘에게 전화가 왔다.
지방세 질문이었다. 한 시간이 걸렸다.
20분 전의 간절한 식겁함을 떠올리며 애써 친절을 유지했다.
착한 막내가 형들에게 빵을 한 아름씩 사주었다.
활옥동굴.
활석(활옥)을 채굴하던 폐광을 관광 동굴로 만든 곳이었다.
카약 체험을 기대했는데 행정 절차 이행 중으로 타지 못했다.
충주 관광 수익의 견인차 역할을 했었다는데, 부디 협의가 잘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활옥동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동굴 벽에 걸린 근대 조선의 흑백 사진들이었다.
고대하던 쏘가리 회.
기가 막혔다.
고소하다. 수리수리 술술술.
쏘가리 매운탕까지 완벽하다.
민물 매운탕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마늘에게 사진을 보내니, 다음에 꼭 같이 오자 한다.
전주 처갓집에 김장하러 가는 막내를 배웅하고, 숙소로 돌아와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춘기에 접어든 자식들 얘기를 하다 보니 두 시간이 금세다.
쉽지 않은 요물들. 이래도 저래도 결국 다 소용없으니 힘 최대한 다 빼고 그냥 두자는 결론.
순하디 순하기로 유명한 놈들이 자식 얘기 앞에선 하나같이 뾰족하다.
삐치고 소리 지르느라 제각각 험난하단다.
다음 날.
아홉시 반이 되어서야 일어난 우리는 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
열정왕 막내가 잡아둔 2일 차 일정을 몽땅 뒤집었다.
그래도 충주 온천에 발은 담그고 나왔다.
막내야 미안해.
우리는 너보다 키도, 열정도 작아.
너의 김장 일정이 우리를 살렸다.
장모님께 고맙다는 일동 말씀을 꼭 전해주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