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오웰'을 소개합니다.

by 하니오웰


나는 1977년 논현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전두환 정권의 보도지침을 폭로하며 군사 독재와 정면으로 맞섰다.

그 싸움은 엄마를 오래 외롭게 했고 서럽게 했다.

아버지는 2011년 루게릭 병으로 사망했다.


엄마는 문학소녀였다가 교사였다가 기자가 되었다.

아버지를 만나 서투르지만 달뜬 행복을 기약했으나 큰 틀, 작은 틀에서 불행을 완수했다.

선천성 뇌성마비로 태어난 막내아들 때문에 아이가 다섯 살 때 사표를 냈다.

이후 양품점도 해보고, 아르바이트도 꽤 했다.

외할아버지의 도움을 조금 받아 가며 근근이 두 아들을 키웠다.

1992년 아버지와 이혼했다.


2025년 10월, 엄마는 치매 확진을 받았다.

2026년 1월 23일, 몇 개월 치 치매약을 모두 버렸다.

형과 엄마는 현재 끝도 시작도 없는 냉전에 돌입했다.


엄마의 어제는 서러웠는데,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당신은 요즘 덜 서러울 수 있겠다.

나는 지금, 불쌍한 엄마를 어떤 수로 더 이해하여 덜 오해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나는 2011년 서대문 세무서 부가가치세과에서 일하던 시절, 지금의 마누라를 만나서 2013년 11월 결혼했다.

아내는 국세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중 2023년 세무사에 합격했다.

2024년 사직 후, 같은 해 8월 개업해 현재에 다다르고 있다.

아직 돈을 벌어오고 있지 못하지만, 막연하나마 나는 마누라를 점점 구체적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


2015년 딸을 낳았다.

나는 딸 바보로 살아왔다.

지금도 나는 바보이긴 하다. 딸은 2025년부터 사춘기에 입봉했다.

나도 작년부터 갱년기에 들어섰다. 지금은 덜 바보로 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덜 바보로 사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은 '읽기'와 '쓰기'이다.


나는 2024년 12월 21일부터 블로그를 '공개'로 전환했고, 블생에서 많은 소중한 인연들을 만났다.


'장애'라는 조건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더 활개 치고 살았을 위인이다.

나를 깊이 아는 사람들은, 내 안의 조급성과 오기, 독기, 광기를 보며(몇 기의 용광로가 있음.), 설치다 술 먹고 일찍 객사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라 말한다.


나는 ENFP와 INFP를 오간다.

마늘의 분석으로 나는 돈 있으면 'E', 돈 없으면 'I'란다.


운 좋게도 작년 11월 '문학고을'에 수필을 제출해 입선하며 '등단작가'가 되었다.


2026년 1월 23일, 블로그 이웃들과 '삶, 다시 쓰는 중입니다.'라는 전자책(9인 공저)을 출간했다.

이래저래 작가가 되었으니 읽고 쓰는 일에 더 정진할 생각이다.


나는 20대부터 40대 후반까지 음주와 흡연으로 숱한 일화와 비화의 주인공으로 살아왔다.

초,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장애의 천형'을 비탄하며 '인간 일반'에 대한 적의와 분노를 품고 조용히 살아오다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알코올'을 만난 뒤 생이 달라졌다.

'인간 특수'를 사랑할 줄 알게 되었다.


아버지를 그대로 닮아 낙천과 유머, 해학이 있다.

엄마를 빼다 박아 직관이 있고 우울과 조급이 있다.

이 둘은 내 안에서 제법 잘 섞여, 때로는 용감하게, 때로는 용렬하게 세상을 흘기며 견디게 했다.


내 블로그의 제1목표는 '기록'이다.

딸에게 '나의 사료'를 남기는 것이 집념이자 과정이다.

언젠가 엄마를 위한 종이책을 내는 것이 목표이다.


나와 내 주변의 일상에 대한 두드림은 줄이고, 나의 미학적 열정과 역사적 충동을 증명하고 살피는 글을 쓰고자 한다. 내 글은 주로 인간의 허위와 불의를 인식하고 알아채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앞으로도 나는 운문보다 산문에 애착을 둘 것이고, 추상에서 구체로의 회귀를 추구할 것이다.

금욕의 아픔이나 자생에의 정열을 지향하겠지만, 나는 본질적으로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경계가 흐릿하고, '절대'와 '규범'을 본원적으로 경계하는 사람이기에 나 자신을 하나의 규정으로는 묶지 않을 생각이다.


그저 쓸 것이다.(I'll just 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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