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균형 잃은 절름발이의 절뚝거림이고, 지팡이 없는 장님이 허공을 더듬는 일이다.
어디든 좋고, 무엇이든 좋다.
부러진 손잡이에라도 닿는 순간, 손톱 저리도록 움켜쥐는 것이다.
나의 글의 방향은 '동서남북'이다.
특별히 해박한 영역은 없고 손끝, 마음끝 재주만 조금 있는 탓에 이것저것 툭툭 건드린다.
그래서 내 글은 뒷간으로 마실 나가는 글이다.
유용했으나 무용했던 시간을 들이고 발행 안 한 글들이 많다.
허무했지만 그럴 만했다.
소중한 자맥질이었다.
부유하는 신바람이었다.
모든 끄적임은 어쭙잖더라도 나의 소중한 잉태이다.
그래서 재지 않는다. 몸 푸는 시간 없이 그냥 등록한다.
글쓰기는 나만이 지을 수 있는 나만의 집이다.
거침없이 쓰고 거침없이 발행하자.
나는 안다. 내가 '번개'를 품지 못함을.
나는 안다. 내가 '천둥'을 내리지 못함을.
나는 안다. 내가 계절의 '시의'는 느껴도 '비의'는 깨닫지 못함을.
그래서 나는 '산문주의자'다. 리얼리스트다. 유물론자다.
일상의 마이크로한 순간들을 관찰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을 천의무봉한 창의로, 신의 언어로 풀어낼 자신은 없다.
나무와 나무, 가지와 가지, 뿌리와 뿌리 사이의 '근처'에 잠시 머물 염두는 있다.
그래서 나는 '산문'을 쓴다.
재빠른 나날의 '핵심', 계절의 '허위',
인간과 사람 사이의 '비린내',
사물과 사람 사이의 '질투'를 읽어 내는 능력은 좀 있다.
쉽게 던져진 단어들이나 가볍게 쓴 문장들의 배열을 바꿔가며, 벼리고 다지는 따위의 능력은 있다.
'영끌' 재주는 없어도 '문끌' 재주는 좀 있다.
그래서 '쉽게 쓰여진 시'를 쓴다.
나의 글쓰기는 아직, 그리고 오래 '산문'에 머무를 요량이다.
나의 글의 방향은 주로 인간의 '허위와 불의'를 알아채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태어날 때부터 몸은 직립하지 못했지만, 마음과 정신의 직립은 지향했다.
원래부터 크게 아쉬울 것은 없었다.
장애는 세상의 불의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 주었고, 대낮의 회한에 나를 익숙하게 만들었다.
분별이 더해지며 나는 '입장'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
게딱지보다 지독한 엄마를 만났고, 매일이 '지옥'이었다.
매일 새벽, 엄마는 나를 깨웠고 나는 울고 불며 다리를 풀었다.
대학교에 들어가니 학생 운동의 끝물이었다.
나의 어미, 아비는 '반골'이었다.
각자의 집안에서 '장남'과 '장녀'였는데 그 둘만 뼛속까지 '반골'이었다.
나는 정확히 그들의 아들이었다.
술을 마시다 보니 병신 값을, 세상 값을 하고 싶었다.
단과대 학생회장 친구한테 가서 '나도 다음부터 가투(가두투쟁)에 나가겠다'라고 했다.
서 푼 다리로 뛰었다. 최루탄을 맞았다. 눈물이 났지만 그것은 '따가움'이 아닌 '뜨거움'이었다.
살아가다 보면, 죽어가다 보면 우리는 지켜본다, 거슬린다.
정치와 경제, 사회가 못 하는 일을 '문학'과 '글'이 하는 것인데,
그 글을 쓰는 나와 우리는 아마추어든 프로든 옳고 바르고 참된 방향을 겨누어야 한다.
우리는 '뭐든지 써도' 되지만, '뭐만 쓰면' 안 된다.
진실과 정의에도 기웃거리고, 동토와 비토 위에도 발을 디뎌 보는 것이 우리 알량한 '인간'의, '글쟁이'들의 옹호로서의 소임이 아닐런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죽음이 삶을 갈라 놓거나 삶이 죽음을 난도질하더라도, 그 시작과 끝에는 성찰이 머무르고, 그 사이에는 이야기가 남는다는 것이다.
부드럽게 시리고 섭섭하게 복잡한 그 결들을 글로 풀어내다 보면, 삶이란 겸허함과 허무함을 서로 어긋나지 않게 품어내는 과정임을 깨닫게 된다.
한참을 돌아서야 알았다.
나를 움츠리게 했던 연민의 시선과,
나를 일으켜 세운 글쓰기의 힘이 결국은 같은 근원에서 번져 나온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