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마다 재활 치료를 간다.
2022년 4월에 나는 40여년 만에 수술을 했다.
왼쪽 아킬레스 건을 늘리고 무릎 뼈에 철심을 박아 구부러진 뼈를 펴는 큰 수술이었다.
2021년 초반부터 발과 다리 이 곳 저 곳의 통증이 심해졌다. 6개월을 대기하여 신촌 세브란스 소아 정형외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수 년 내로 보행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의사는 진단했다.
딸이 커갈수록 내가 겪었던 보편적이며 낯선 '시선 폭력의 민낯' 때문에 딸조차 오랫동안 웃음과 논리를 잃어 버릴 수도 있겠다는 나만의 내밀한 걱정이 더 깊어졌다.
고심 끝에 마늘과 숙의 끝에 엄마한테는 말하지 않고 수술을 결정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수술은 한 차례 미뤄졌고 나는 신촌에서 수술을 받았다.
8개월 휴직했고 재활을 했다.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철심을 박은 왼쪽 무릎 통증이 잦아들지 않았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뼈가 갈라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통증은 깊었지만 집도의는 해법을 찾지 못했다. 내성이 생길 것을 걱정하여(자체 판단) 진통제를 최대한 안 먹어가며 2년 반을 이 악물고 버텼다. 모르긴 몰라도 그 통증 때문에 내 예민과 경계의 날카로움이 심해졌을 것이다.
2024년 9월에 철심을 빼는 수술을 했다.
나의 유일한 관심은 직립인의 흉내가 아니었다. 2년간 매걸음마다 아프게 했던 무릎 통증의 소멸 여부였다.
수술 전 의사는 철심을 뺀다고 통증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 했고 진통제를 평생 먹으며 버텨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통.증.이. 없.어.졌.다.
아무도 알 수 없는 환희. 나만의 지평이 열렸다. 절뚝임이나 다리의 펴짐 정도의 개선 여부는 오히려 남들보다도 나의 관심사가 되지 않았다. 그저 통증이 없어진 사실 하나로 기뻤다. 동작의 큰 변곡점은 없었다.
그래도 나는 이것을 두번째 실패라고 칭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무릎이 아프지 않다.
안 아픈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2024년 12월부터 재활을 시작했다.
여러 종류의 재활 치료를 재활의학과 교수님이 처방해 주었지만 한 가지만 진행했다. 근무 때문에 일주일에 여러 번 빠질 수는 없었다. 돈 많은 사람이 평생 부러웠지만 이제 시간이 많은 사람이 더 부럽기도 하다.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30분간 마사지와 운동 치료를 해주는 동안 일상에서의 치료 예후나 불편한 상황 등을 자상하게 계속 물어봐 주는 좋은 치료사였다. 여자 친구가 없지만 친구들과의 어울림 덕분에 그것에 대한 아쉬움은 별로 없다고 했다. 귀염상에 유머 감각과 센스도 훌륭하여 대화가 끊이지 않았고 내피셜로는 합이 참 좋았는데 저번 주 수업이 마지막이었고 1층 도수치료실로 발령 받아 가게 된 아쉬운 상황이 되었다.
어제는 차가 막혀 8시 반 로봇치료를 놓쳤다.
9시. 2층 물리치료실.
새로운 선생님은 키가 컸다.
왼쪽 다리 스트레칭이 시작되었다. 어깨에 다리를 걸고 어깨로 민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익숙한 통증.
절로 신음이 나온다. 시간을 둔다. 빨간색이 점점 그 빛깔을 스스로 바꿔감을 느낀다. 신기하다. 근육의 온도가 50도를 넘겼다가 서서히 제 온도를 찾아간다.
물어본다.
"왼쪽과 오른쪽 중 어디가 더 짧아요?"
"왼쪽 아킬레스 건이 더 짧았는데 2022년 수술 후 늘어났구요. 대퇴이두근은 오른쪽이 더 길어요"
두 번의 수술로 길이의 불균형이 초래 되었고 그래서 걸음마다 부자연스럽고 자연스런 고장들이 계속된다.
오른쪽은 덜 아프다.
"선생님. 저는 이 스트레칭만 계속 할 수 있어도 하루 기분이 정말 좋아질 것 같아요."
나의 가장 아킬레스 건인 아킬레스 건과 대퇴이두근을 이완해주는 새로운 스트레칭법에 신기원을 체험했다.
치료사는 혼자 스트레칭 하는 법도 가르쳐 주었고 대학원생을 불러 동영상 촬영까지 해주었다.
이전 선생님과 9회 차까지 치료를 받아 다음 주가 마지막 수업이 될 것이라는 선생님의 말에 아쉬웠다.
2층은 적녹색 전이의 현장이었다.
10시. 6층 로봇치료실.
오늘은 2회차라 평가를 하는 날이란다.
'Balance CDP'라는 기계에 올라섰다.
Body 하네스(어깨에 벨트를 매어 몸을 고정시키는 장치)를 양 어깨에 착용하고 신발을 벗고 올라섰다.
1단계. 균형점 검사.
발뒤꿈치를 딛고 서서 내 몸의 무게 균형점을 측정하고 검사하는 것이다.
요동을 쳐도 하늘색 불빛이 가운데 영점으로 오지 못 한다. 점이 위 쪽에서만 맴돈다. 무게 중심이 앞으로 많이 쏠려 있다고 한다.
아킬레스 건을 늘렸지만 수 십년간 고착화된 온 몸 마디 마디 근육과 자세의 불균형은 변함이 없다.
2단계. 동적 자세 균형 검사.
서 있는데 발판이 앞 뒤로 움직인다. 버텨낼 리 없다. 선생님은 이런 대상자의 순간적 모멸감에 익숙하신지 때때마다 농담을 건네 주셨지만 기분은 참담하다. 하네스 덕분에 고꾸라지지는 않았다.
어릴 때 기억이 났다. 수 백번 섰다 앉았다 운동을 하고 이어지는 다리 찢기 시간. 그저 제 자리에서 조금씩 양 다리를 찢어 보는 것이다. 오랜 시간 반복하면 그 너비가 넓어지기는 한다. 아까의 통증이 익숙한 이유.
노끈으로 허리를 묶고 책으로 사방에 경계를 둔다. 앞으로 뒤로 경계 안에서의 기마자세 엉거주춤을 거듭한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근육이 긴장되고 용을 쓰느라 땀은 물론이고 방구까지 붕붕 뀌어댄다. 엄마는 뒤에서 계속 다그친다.
위로나 응원은 한 마디도 없다. 그게 우리 엄마다. 내몰기와 질책 뿐이었다. 다 내동댕이 치고 싶었고 소리쳐 울기도 많이 했다.
방향별 안전한계 검사는 시도조차 못 했다.
저번 주부터 시작한 로봇 치료실의 담당 선생님도 따뜻하기 그지 없다.
스트레칭과 근육과 힘줄의 상관관계를 정규 시간이 지난 뒤에도 10분이 넘도록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며 꼭 꾸준해야 한다며 응원해 준다.
매주 금요일마다의 재활 치료를 마치고 병원 지하 2층 주차장을 걸을 때 나는 직립의 근처를 경험한다.
나의 장애를 얼마나 존중하고 잘 아껴 살펴줘야 하는지 깊이 깨닫게 되는 매 주 금요일인데 일상으로 돌아가면 이내 익숙한 나태와 타협한다.
남들의 시선도 이제 의식하지 않으면 느끼지 않고 불균형한 보행에서 오는 허리 통증도 오래 걷지 않으면 잘 오지 않는다. 무릎 통증이 없어진 것만 떠올리면 3초 안에 기분이 좋아지고 이제 마음만 먹으면 잠깐은 뛰어 볼 수도 있다.
내년이면 지천명인 나한테 누가 잔소리를 할 것이며 요즘 일기를 '1일 1포' 한답시고 아침 운동을 빠트려 더 뒤뚱거리지만 누가 쓸데 없이 알아챌 것인가? 그러나 자꾸 명심해야 한다. 금주를 이어가야 한다.
어제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내가 술을 안 마시는 것에 적잖은 압박을 줬다. 이제 명심해야 한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
날마다 온전히 혼자서 불도저처럼 세상과 세월의 무시와 편견, 억압에 스러지지 않고 기약 없는 되돌이표 자식의 경직성 두 다리와 분연히 투쟁했던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면 누가 나의 차이를 겨누어 볼 것이며 불편한 표정의 변화에 관심을 두겠는가?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은 마늘도 딸도 아닌 오직 나 하나 뿐이다.
덧 : 사연이 있어 오늘 1포가 꽤 늦었다.
어제 밤 11시 넘어 약속 자리에 웃음을 더하고 있던 나에게 처음 보는 전화로 엄마가 전화했다.
"누가 내 전화기를 가져갔어. 분실 신고 좀 해줘."
다시 그 번호로 전화가 온다.
"윗 층 총각입니다. 분실 신고 제가 했습니다."
아침에 모르는 번호로 또 전화가 온다.
"연신내 지구대 경찰입니다. 아드님 되시죠? 어머니가 전화기를 잃어버렸다고 범인은 찾아달라 하십니다. 어머니가 평소 지병이 있으신가요?"
"아니요. 치매가 의심되긴 하는데 워낙 완고하셔서 병원도 안 가시고 어떤 약도 거부하십니다."
"꼭 어머니 병원에 데려가세요. 제가 의사는 아니지만 치매가 맞는 것 같습니다."
마루에서 교회갈 준비를 하던 마늘에게 상황 설명을 하다 나는 통곡했다.
지방에 있는 친형한테 문자를 보냈더니 이따가 올라온다고 한다.
오늘 장인 어른도 시골에서 올라오시는 날인데 처가에는 못 가겠다.
오늘 밤은 엄마 옆에 좀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