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2 댓글 3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

by 하니 아빠 Mar 07. 2025
브런치 글 이미지 1

 블로그를 시작한지 76일 째이다.


어제 뒷자리 후배 놈이 물었다.

"근데 어쩌다 블로그를 시작하셨어요?"


"아. 2024년 12월 20일에 인천 네스트 호텔로 가족 여행을 갔어.

 저녁으로 조개찜을 먹었는데 마누라는 맥주를 마셨는데 나는 차 때문에 마실 수가 없었어.

아쉽잖아. 그래서 숙소로 돌아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켈리 캔맥주 350ml 두 캔과 육포를 샀어. 돌아 와서 둘이 한 잔 하며 가까운 곳으로의 여행이 운전 시간이 짧아서 좋다는 말과 숙소가 참 비싼데 주변은 예쁘니까 봄에 또 오자는 말을 나눴어."

 뒷자리 놈은 말수도 적고 진중한 놈인데 또 묻는다.

"그래서 블로그는 왜 시작하신 거에요?"

 그래서 이제 따옴표를 없애고 좀 설명을 해보겠다.


 마늘은 2008년 입사했으니 2018년에 세무사 1차 시험 면제 자격을 얻었다.

 2016년에 용산세무서 조사과에서 같이 근무했던 선배가 세무사 시험에 먼저 합격하여 좋은 행보들을 더하고 있었기에 본인도 공부를 해보겠다고 자주 말하곤 했었다.

 그 선배는 나의 9급 동기 형이다.(전술했던 나의 서대문세무서 발령 동기님이 형수님이시다)

 마늘은 호언과 달리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지만 잠자코 있었다.

 신혼 초기 "너는 왜 책을 잘 안 봐?" 질문을 했다가 두고두고 부부 동반 술자리에서 회자하여 나를 더 빨리 꽐라가 되게 했던 산뜻한 기억들이 겹쳤을 것이다.


 코로나19의 창궐로 2020년은 어수선했다.

 급기야 세무사 시험이 8월에서 12월로 미뤄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그 해는 미증유의 연속이었다.

 마누라는 슬슬 방방거리기 시작하더니 그 해 5월에 "오빠. 나 배팅할꺼야."

 두 번째 휴직을 했다. 첫 번 째 휴직은 2015년(딸의 출산)이었다.

 마누라의 중고등학교 베스트 프렌드가 함께 했다. 둘이 저녁 포츠담 맥주 회동이 잦더니 결단을 했나보다.

 나는 기대하지 않았다.

 2019년에 "강의 좀 안 돌려?"라는 질문을 몇 번 했었는데 "내가 알아서 해!"라는 대답만 돌아왔었다. 원래 알아서 하는 애고 언제나 나보다 현명한 답을 도출하는 녀석이긴 하다.


 집 앞 스터디 카페에서 둘은 시작했다.

 "오빠. ㅇㅇ 이 이 년 엉덩이가 정말 무거워. 나만 떨어질 거 같아. 자신이 없어."

 마누라는 아침 9시에 나가서 저녁 9시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친구년은 12시까지 공부를 하고 집에 간다고 했다. 친구 집은 우리 집보다 버스로 20분 더 먼 곳에 있었는데 심지어 그 친구의 아침 공부 시작 시간은 7시였다.

 고개만 끄덕였다. 어차피 나는 위로나 공감 멘트를 못 날리는 남편인지라 마늘은 원래 기대도 없다.

 나는 INFP(ENFP)인데 마늘과 하니가 INTP(ENTP)라고 말하는 이유다. 안팎으로 꾸준히 '상똘아이'라는 말은 계속 듣고 살아오긴 했다.

 마누라가 "오빠는 돈 있는 날은 E고 없는 날은 I야"라고 말하는데 그 말이 적확하긴 하다.

 천사 장모님이 와서 저녁을 자주 차려 주셨고, 딸아이는 6살 때이니 숙제 지옥이 없는 행복 가득한 시절이었다. 나의 체력이 문제였지만 기승전딸인 '딸바보' 였으니 잘 버텨냈다.

 오히려 둘만의 다시 없을 데이트 시절이라고 좋아했던 기억으로 정리가 된다.


 나는 그 해 7월 1일 자로 6급 승진을 했다. 술자리가 폭발했고 방법은 단 하나. 장모님 찬스였다.

 마누라는 나의 주취자 본능을 알고 있고, 얼마나 마음 고생을 많이 한 후 획득한 승진임을 잘 알기에 자기 엄마의 잦은 호출을 군말 없이 눈감아 주었다.

 2020년 7월 24일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아 5시간 넘게 통화를 했고 통화 중에 외국에 계신 귀인에게 큰 돈을 기부했다.

 나는 사단이 난 것을 그 다음 날에야 인지했고 다음 날 모의고사를 치르던 마늘은 옆 동 친한 동생놈의 전화에 시험 도중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달뜬 7, 8월이 지나고 9월 초쯤 나는 평정을 찾았다.


 마늘도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데 공부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친구와의 맥주 타임이 점점 늘었다.

 애초에 마셨다 하면 끝장을 보는 두 친구의 스터디 조합이 맘에 안 들었던 나의 수심은 깊어 갔다.

 체력이 약한 마늘은 갈수록 힘들어 했지만 장모님의 지극 정성 헌신에 힘을 얻어 꾸역꾸역 공부를 계속 했다.

 그 해 시험 장소는 나의 모교인 '연신 중학교'였다.

 새벽에 일어나 연희 김밥에 가서 종류별로 김밥 두 줄을 사왔다.

 그 날 아침은 정말 추웠다.

 "마음 비워. 떨어지면 마는거야. 이따가 저녁에 찌끌자."

  속마음도 일치 했다.('합격' 기대가 전혀 없었다.)

 공부 6개월만에 붙은 사례를 본 적이 없었다. 특히 강의 1순환도 안 돌린 채 시작한 마누라는 더 그랬고 같이 시험 보는 마누라 베프 친구는 강의 2순환 후 휴직을 했고 심지어 마누라보다 6개월 먼저 휴직해서 공부를 하고 있었기에 '친구만 합격하려나?'라는 생각을 했다.

 결혼을 하고 보니 그 친구와 마누라는 제일 친한 친구 사이(중고딩 동창)였는데 그 남편은 나랑 7급 합격 동기(교육원 같은 반)에 친한 동생놈이어서 부부끼리도 가장 친한 사이가 되었다.


 마늘을 시험장에 올려다 주고 내려오는 길에 서대문 세무서 시절인 2009년에 스쳤던 여직원을 만났다.

 "오랜만이야. 왠일인겨?"

 "오빠 오랜만. 아 우리 남편 시험 보러 왔어. 울 남편 시험 보러 온거 비밀이야!"

 지방직으로 옮긴지 7년 째인 내가 어디 말하고 다닐 곳도 없고 결정적으로 그닥 친했던 사이는 아니었다.

 국세인들은 휴직 후 세무사 공부 하는 것을 비밀에 부치는 것이 통념이다.


 오후 5시 시험을 마치고 나오는 마누라의 표정은 담담했다.(오히려 2023년에는 어두웠다.)

 "기다려 봐야 할 것 같아. 기대는 하지 말고..."

 우리 집에서 6명의 주지육림 파티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 집도 딸은 하나고 하니보다 한 살이 많다.

 둘은 채점해 본다고 난리였다. 술자리 내내 출제 문제에 대한 얘기를 둘이 나눴던 것 같다.

 몇 달 뒤 결과가 나왔다.

 마누라는 커트라인과 평균 2점 차이, 마누라 친구는 평균 6점 차이.

  둘 다 낙방했다.

 

 오늘 우리 부부는 여의도에서 같이 약속이 있다.

 딸래미는 상술한 옆단지 베스트 친구 집으로 보내기로 했다.


 마누라는 2023년, 옆단지 친구는 2022년에 세무사 최종 합격을 했다.


 내가 블로그를 왜 시작했는지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방향이 튀었는데 스키마이긴 하다.

 오늘은 분량이 짧지만 그만 써야 한다. 재활 치료가 있는 날이라 서둘러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인간에 대한 단상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