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 교수의 시선
2018. 02. 07
최진석 교수님의 시선을 강연을 통해서 듣고, 나의 것으로 만들다.
국가나 조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사고의 수준이다.
개인, 조직, 국가는 자신이 가진 시선 이상으로는
결코 살 수 없다.
인문적 시선이 필요한 시대이다.
건국 이래, 우리에게는 인문학적 시선에 대한 요구가 쌓여 왔고,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인간이 사는 무대는 크게 두 덩이로 나뉜다.
하나는 자연(自然)이다.
자연이란, 인간이 만들지 않은 세계이다.
두 번째 무대는 인간이 만든 세계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만드는 존재이다.
인간은 그렇게 태어났다.
만든다는 그린다는 것, 곧 '문'(文)이다.
인간은 지속적으로 무엇인가를 그리면서
‘변화’ (變化)를 야기한다.
이것을 합쳐서 ‘문화’(文化)라고 한다.
변화를 분명히 눈에 보이게 만들어 둔 것을
‘문명’(文明)이라고 한다.
이렇게 인간이 사는 세계는
자연과, 문명의 두 덩어리이다.
우리가 사는 무대는
결코 이 두 세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자연을 알고, 문명을 알면,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세상을 아는 것이다.
자연은 소위 : 이과
문명은 소위 : 문과
문명을 만드는 근원적 동인 = ‘생각’ (an idea)
모든 ‘문명’은‘생각’의 결과이다.
생각 자체를 들여다보는 인간을 철학자라고 부른다.
있다.
분명히 있다.
수학에서 3차 방정식이 덧셈 뺄셈보다 수준이 높은가?
그렇다면,
3차 방정식은 높은 영향력을 가진 것이다
3차 방정식은 높은 통제력을 가진 것이다.
3차 방정식은 큰 효과를 갖는 것이다.
덧셈 뺄셈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높은 문명은 높은 생각을 가지고
높은 문명은 앞선 생각을 가지며
높은 문명은 수준 높은 문화를 낳고
높은 문명은 주도한다.
낮은 문명은 정반대이다.
즉, 문명의 수준 높음이란,
통제력, 영향력이 높다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20세기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저서 ‘혁명에 관하여’ (On Revolution, 1963)에서
통상적인 혁명의 보편성을 설명하며
프랑스 대혁명 보다
미국 혁명을 높게 평가한다.
프랑스의 혁명은 저효율이고,
미국의 그것은 고효율이었다는 것이다.
혁명이란 정치와 법률이 통제력을 잃고
야만, 야생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 가운데서의 기치는 새로운 시작,
인간의 ‘자유’를 중심으로 한다.
그에 따르면,
프랑스의 혁명은 자유에 초점을 두지 못했다.
혁명의 에너지가 곧 사회문제 해결 아젠다로 집중되면서
에너지가 분산되었다.
따라서 저효율이라고 본다.
이것은 곧 낮은 시선을 의미한다.
미국의 혁명은 자유에 더 초점을 두었다.
혁명의 에너지가 인간의 자유에 집중되었다.
고효율이다.
이것은 곧 높은 시선을 의미한다.
이처럼 같은 혁명이라 불리지만,
시선의 높이는 다르다.
국가의 효율성이란, “자유”라는 Agenda를 가지고 있는가,
아닌가가 기준이 된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Agenda 가 없다.
특이한 상황이다.
지금 우리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아젠다가 있는가?
일본인에게 물어보면 보통국가라고 한다.
미국인에게 물어보면 미래 지향 국가라고 한다.
중국인에게 물어보면 대국굴기, 제국의 회복이라고 한다.
북한인에게 물어보면 강성대국이라고 한다.
한국은 어떤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아젠다 없이, 사회문제 해결을 혁명으로 시도할 것인가?
문명은 세 개의 층으로 구성된다.
맨 아래에는 물건이다.
만지고 느낄 수 있는 물건, 제품만 보인다.
농업으로 치면 농부가 생산하는 양파이다.
시선이 물건에만 있으면 물건만 보인다.
그 위에는 시스템과 제도이다.
하위에 있는 물건을 통제하는 시스템이다.
양파에 부가가치를 더하는 유통이다.
시선이 제도에만 있으면 제도만 보인다.
이 둘 사이 다른 것은 시선이다.
물건에 집중하는 농부의 시선은 양파를 심기만 한다.
밭떼기를 하는 총각의 시선은 시스템에 있다.
앉아서 돈을 번다.
그런데 물건과 시스템-제도 위에는 무엇이 있는가?
맨 위에는 사유, 사상, 윤리, 도덕과 같은 것들이 있다.
이것을 총괄하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
철학은 하위의 시스템과 물건에 영향을 미친다.
시스템 이론으로 살펴보자.
좋은 것이 시스템이 투입되면 좋은 제도를 만든다..
좋은 사상은 좋은 문명을 낳는다.
현재 중국의 행보는 1840년 아편 전쟁에서
서방에 진 것에 대한 복수이다.
복수심은 한 국가를 존재토록 지탱하는 힘이다.
중국은 군함과 함포에 졌다.
제철기술을 가져야겠다. 이것이 양무운동이다.
‘물질’을 가지면 이길 것이다.
물건에 대한 시선이었다.
10년 후, 중국은 “길”에 집중한다.
제도 논쟁이다.
입헌 군주제를 추구할까, 어떻게 할까.
이것이 변법자강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 이후, 시선은 높아졌다.
아니다, 생각이, 철학이 중요하다.
중국은 봉건, 기존 가치관에 질문을 던지며
신문화 운동에 돌입한다.
결국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통해
공산화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생각’으로 세상을 제압하자.
세계를 보고 나라를 다스리는 시선이
생겨난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임진왜란을 잊었는가?
복수심을 갖지 않는 것은 치욕이다.
우리에게는 지금 복수의 마음이 사라졌다.
원동력이 없다.
우리의 시선은 아직 ‘제도’ 에 머물러 있다.
제도 논쟁이다.
우리의 물건을 떠올려 보라.
아무것이나 좋다.
우리가 ‘만들기 시작’ 해서 팔아먹고 있는 물건이 있는가?
하나도 없다.
이태리 타월이 있다고 하겠지만,
영향력 (통제력) 은 매우 낮다.
즉 우리의 생각, 시선은 남보다 앞서간 적이 없다.
우리는 다른 이의 생각을 빌려서 잘 살게 된 민족이다.
테크닉을 가지고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을 피아니스트라고 한다.
음악 체계를 이해하는 기술을 가진 사람을 뮤지션이라고 한다.
사상을 말하고 인문을 메시지에 담고,
음악을 재해석하는 사람을 아티스트라고 한다.
피아니스트 - 뮤지션 - 아티스트.
뒤로 갈수록 높은 수준이다.
높은 시선이다.
피아니스트가 연주라면,
아티스트는 재해석이다.
없는 길을 여는 단계이다.
피아니스트에서 뮤지션이 되는 데 5의 힘이 든다면,
뮤지션에서 아티스트가 되는 데는 5만의 힘이 든다.
우리가 우리의 길을 열지 않고,
남의 길을 따라온 것은 뮤지션 수준이다.
어떻게 살아 나갈 것인가?
귀여운 딸 하나를 둔 평범한 아빠.
16년 차 대한민국 직장인.
마케팅과 세일즈, Business innovation 업무를 거쳐,
지금은 인재개발 업무를 하고 있다.
전국 1300명의 직원들에게 매주 한 번씩 뉴스레터를 보내기도 하고,
이야기 잘 안 들어주는 영업 직원들에게 가끔 손편지를 보내거나,
의사 가운을 입고 자칭 ‘세일즈 박사’가 되어 오늘도 뛴다.
세일즈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쓰고, 떠든다.
잘 팔리는 인간의 공통점을 연구한다.
판매하는 상품은, 세일즈에 대한 이야기.
인생이 곧 세일즈, 세일즈가 곧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