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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I Aug 28. 2023

보슈는 르네상스의 이단아였을까?

히에로나무스 보슈

20대 시절에 가장 보기 힘들었던 예술작품이 있었다.

바로,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작품.

책을 열기만 하면 지옥에서 나올 것 같은 해괴망측한 것들이 눈에서 아른아른거리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 당시 나는 교회를 열심히 나가던 여대생이었는데, 아담과 이브의 시작은 그렇다 쳐도 도저히 요한 계시록의 장면이라 설명하는 교수님의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감상조차도 되지 않던 기억이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30여 년 동안 다녔던 교회에 발길을 뚝 끊게 된 것은 교회에서 일어난 어느 사건 때문이었는데, 오랫동안 신앙심을 키워주겠다며 물심양면으로 교회에서 봉사, 노력했던 부모님은 지금도 정말로 크게 깊게 속상해하신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2018년에 일어난 개인적인 사건으로 인해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내가 종교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놀랍게도 그제야 보슈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고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점점 많은 예술작품에 대해 눈뜨기 시작했고, 인간의 삶에 대한 글도 현실적으로 쓸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보슈의 작품은 인간의 욕망과 질투, 성욕의 본능을 다룬다는 점에서 몇 백 년이 흐른 작품들이나 낯설지가 않았다. 오히려 고대 이상화된 풍경화보다 훨씬 현실적이며 인간의 무의식을 다루는 초현실주의 작품의 세계의 시초라 봐도 될 만큼 인간 욕망의 끝과 끝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다는

걸 느끼면서 오늘은 보슈의 작품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보슈 작품을 이야기하려면 당시 기독교 사회였던 교회 중심의 세계 질서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보슈는 상당히 경건한 기독교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양성이 중요시되었던 지금 같은 시대 속에서 자발적인 선택이 아닌,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데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당연하고도 어쩔 수 없는 종교적 숙명이 아니었나 싶다.


보슈의 작품은 기독교의 사상과 일치하는 작품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지만, 곳곳에 새겨진 성경구절에서 그가 기독교 사상에 반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한 인물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 그러지 않았다면,  불살라졌을지도 모른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미술사가들의 설을 바탕으로 보슈의 작품들은 다양하게 해석된다.


그중에 보슈의 작품 중  <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은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작품이다.


패널은 종교화 재단화이자, 기본적으로 3폭으로 구성된 그림으로 트립티크(Triptych)라고 하기도 한다.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


왼쪽 패널에서부터 시작해서 중간, 오른쪽 패널에 이어지는 세 폭의 제단화는 일반적으로 천국, 현세, 지옥의 이미지를 상상케 한다. 왼쪽 패널은 아담과 이브가 있으며, 현실 세계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크로테스크적인 짐승들과 싱그러운 자연의 풍경들이 묘사되어 있다. 뱀과 올빼미도 그려져 있으며, 이들은 악을 상징하는데 아담과 이브의 타락을 암시하는 상징이 되기도 한다.

왼쪽 패널

중간 패널에 그려진 그림들을 보면 남녀의 쾌락적인 성행위와 벌거벗은 남녀들 뿐만 아니라 섹슈얼리티를 상징하는 포도, 과일, 새들이 그려져 있다. 또한 금이 가 있는 유리를 표현해 놓으면서 나약한 인간을 상징하기도 한다.

악을 상징하는 올빼미, 쾌락을 상징하는 과일

오른쪽 패널로 가면 지옥이라 상징하는 불구덩이가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이렇게 세심하게 불구덩이 장면을 표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보스가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화재의 기억 덕분이라 한다.



색욕, 질투, 분노, 교만, 나태, 탐욕, 폭식 등과 같은 당시 기독교에서 금기되었던 7대 죄악을 지은 인간들에게 갖가지 고문과 벌을 준다는 위협적인 장면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니 그림 속의 사람들은 악마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치는 장면으로 묘사되어 있다.

오른쪽 패널

이렇게 천국, 현세, 지옥의 순으로 묘사되어 있다는 이론이 우세하나 이와 달리 다른 설을 제안하는 미술가도 있다. 중세 및 르네상스 미술사학자인 한스 벨팅(Hans Belting)의 경우는 중간의 현세를 유토피아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유로운 섹슈얼리티가 허용되는 사회라는 관점에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종말론이 아니라 유토피아를 다루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히에로나무스 보슈의 작품이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는, 당시 유명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같은 예술가들이 추구했던 조형미, 예술적 가치와 다른 이색적이면서도 색다른 장면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천국을 상징하는 패널에는  ' 그가 말씀하시니 이루어졌으며 그가 명령하시니 견고히 섰도다'라는 시편 33장 9절이 새겨져 있으며, 히에로무스 보슈가 사람들에게 도덕적이면서도 종교적 교훈을 주고자 했던 의도로 그려진 그림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의 작품 속에는 메멘토모리의 상징성이 담긴 그림들도 많아서 유한한 인간의 세월을 아껴라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다른 측면에서 한스 벨팅처럼 그의 그림은 현세의 유토피아를 상징하는 작품이라고도 한다.


르네상스 시대에 성공하기 위한 일반적인 아카데믹한 예술가들과 달랐던 보슈..  

다양한 설이 존재하게 하는 보슈의 작품에는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이 담겨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도 조용히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품어내는 작품으로 존재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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