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체 말이 빨라서 무려 생애 두 번째 생일에 '엄마, (나 키우느라) 수고했어.' 하며 내 등을 툭툭 두드리던 조숙한 딸아이. 만 24개월에 육아의 고충을 깨달았던 그녀는 서너 살쯤 되자 그야말로 내 '미니미'가 되었다. 그 무렵 친구들 모임에 딸을 데려가면 아이가 조잘조잘 떠드는 모습을 보며 모두들 박장대소했다.
"얘 너무 너랑 말투가 똑같잖아!!"
엄마의 말투, 표정, 자주 쓰는 단어, 제스처... 뭐든 복붙한 듯 그대로 따라 하는 아이를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했다. 아이 앞에서 정말 냉수 한 그릇 함부로 마실 수 없었다. 헐, 대박, 이런 아이답지 않은 말을 아이가 무심코 따라 할 때면 속이 뜨끔했고, 할머니, 할아버지께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 모습을 보면 내심 뿌듯했다.
그랬던 큰 딸이 어느새 열한 살이 되었다. 자기 주관이 뚜렷해지는 나이다. 이제는 엄마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엄마가 하는 건 뭐든지 좋아 보이던 시절도 지났다. 딸이 할 수 있는데 엄마가 못 하는 것도 많다. 예를 들면 혀 말기라든지, 탭댄스라든지, 이상한 자세로 요가하기라든지..... (내 입장에서도 별로 하고 싶진 않은 재주들이지만.)
이제 본인의 개성도 뚜렷해지고 맹목적으로 엄마를 따라 하기엔 이미 너무 커 버렸으니 애 앞에서는 냉수도 함부로 못 마시는 그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아이가 내게 쓱 내미는 쪽지는 꽤 충격적이었다. 아직도 아니구나. 여전히 아이는 나의 거울이었고, 나는 아이의 거울이구나.
올해 2월부터 매일 시를 필사하는 모임을 시작했다. 하루 한 편씩, 좋아하는 노트에 손글씨로 시를 옮겨 적는다. 어느새 백오십 편쯤 되는 시를 필사했다. 일기장도 아니고, 굳이 숨겨야 할 것도 없는 노트이니 내 필사 노트는 서재며 식탁이며 혹은 외출 가방 어딘가에서 매일 자리를 바꾸며 나뒹굴었다. 쓰다 보니 한 권을 빼곡히 넘겨 중간에 노트를 바꾸기도 했고, 가끔 예전에 쓰던 노트를 어디에다 뒀는지 몰라 주변에 보이는 아무 종이에나 필사를 한 적도 있다. 여기저기, 내 손글씨로 베낀 시가 우리집 구석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다.
아마 아이는 필사하는 내 모습을 자주 보았을 것이다. 아이들의 관심에서 잠시 벗어나 있을 때면 커피를 한 잔 내려 홀짝거리면서 시를 필사하곤 했다. 아이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엄마가 저렇게 골몰히 뭐를 쓰고 있나 궁금해서 몇 번은 노트를 들추어도 보았을 것이다. 좋은 일이다. 시는 좋은 것이니까. 가끔 아이가 내 손으로 베껴 쓴 시를 함께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아 시를 읽는 그 모습을 멀리서 흐뭇하게 훔쳐본 적도 있다. 무슨 시를 옮겨 적을까 시집을 뒤적거리다가 그대로 탁자 위에 놓으면, 아이는 엄마가 무슨 책을 읽나 궁금해서 또 뒤적뒤적 내가 접어놓은 페이지를 들추어봤다. 일상 속 여기저기에 시가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날 아이가 내민 쪽지엔 '시'가 적혀 있었다. 가로세로로 네 번 접혀 맨 위에는 '엄마 아빠'라고 쓰여 있는 종이였는데, 아이가 내게 쓱 내밀고는 내가 펼쳐보려고 하자 '으아아아아' 소리를 지르며 복도 저 끝으로 도망가 버렸다. 아, 나는 저 기분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쓴 글을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 읽으려 하면 나도 딱 저러고 싶은 심정이 든다. 그러면서도 또 내 글을 읽어주길 바라는 그 간질간질한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우리 딸도 저러는 구나. 이런 것 마저도 나랑 똑같구나.
[조각조각]
조각조각 나와 내 친구들
조그마한 종이조각 나와 내 친구들
붙었다 떼었다 조각조각 종이조각
우리는 모두 조각조각 종이조각
겉으로 보나 속으로 보나 모두 다르죠
우리는 서로 다른 종이 조각, 같은 건 없지요
우리가 뭉치고 협동하면 좋은 그림이 되겠죠?
하지만 싸우고 다투면 엉망진창이 될지도 몰라요!
이런 우리가 멋진 그림을 만들 수 있을까요?
그 우정이란 멋진 그림을 만들 수 있을까요?
우리는야 멋진 종이 조각
만들 수 있길 바래요. 그 멋진 그림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운 시를 적었을까. 아이가 적은 시를 읽고 마음이 몰랑몰랑해져서 그날 내내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여전히 아이가 내 일상, 일거수일투족에 꽤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시를 쓰는 엄마 옆에선 시를 쓰는 아이가 자라는 법이었다.
어쩌면 서른 중반의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늘 내게 사랑을 듬뿍 주었던 친정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며 '우리 엄마가 내게 해줬던 것처럼' 나도 아이들을 키우겠다고 결심하듯이... 나이가 몇 살이든 상관없이 딸이란 늘 엄마의 어느 한 조각을 닮는 존재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