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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우유 급식 꼭 먹어야 해요?

by 주정현 Mar 21. 2025

 

 작년 여름, 아이들의 전학 절차를 마친 후 나를 가장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것 중 하나는 폭탄처럼 쏟아졌던 수많은 가정통신문과 서류들이었다. 3월 신입생들을 위해 만들어졌던 학교 인증정보는 이미 만료되었는데, 나는 국내에서 전학 수속을 하는 게 아니다 보니 학적 자료가 이관될 '이전 초등학교'라는 게 아예 존재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학부모 계정을 만드는 과정도 복잡했다. 본인인증만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학부모 계정을 만들고 보니 가정통신문을 받는 앱이 두 개였다. 학교 차원의 가정통신문은 '알리미'로, 학급 단위의 공지사항은 '하이클래스'로 따로 전달되었다. 문제는 7월에 전학 수속을 마치고 나자 3월부터 6월까지의 넉 달치 가정통신문이 한꺼번에 쏟아졌다는 것이다. 참고로 나는 학령기 아동만 셋을 키우고 있기 때문에 가정통신문도 세 배가 된다. 넉 달치 가정통신문 곱하기 두 개의 어플 곱하기 아이 셋. (살려주세요...)


 아이가 한국 학교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엄마인 내가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정말 많았지만, 엄마인 나 자신도 한국 학부모로서의 적응 과정 중에 있었던 시기였다. 종종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미처 다 파악하지 못했고, 몇몇 행정적인 부분에서는 서툴기 그지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 과정에서 아이들 학교 생활에 필요한 몇 가지 서류가 누락되고 말았는데 그 누락된 서류 중에 ‘우유 급식 미희망 신청서’가 있었다.

 둘째 아이는 흰 우유를 싫어한다. 알레르기가 있는 건 아니지만, 마시면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배가 아프다고 한다. 유당불내증일까 고민했지만, 코코아 우유는 잘 마시고 치즈나 요구르트 같은 유제품도 아주 가끔은 먹는 걸 보면, 단순한 입맛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나는 싫어하는 음식을 억지로 강요하지는 않는 엄마라, 아이가 우유를 먹지 않으면 않는 대로 그냥 놔두곤 했다. 누구나 싫어하는 음식은 한두 개쯤 있는 법이니까. (저는 생굴과 멍게를 싫어합니다...)

 그런데 한국 학교에는 우유 급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도 (사실 국민학교를 다닐 때도) 있었으니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한국 학교를 처음 다니는 우리 아이에게 우유 급식은 너무도 낯선 문화였다. 유럽에서 학교를 다닐 때에는 ‘우유 급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카페테리아 음료 메뉴 중에 우유가 있긴 했지만, 메뉴 선택 과정에서 원하는 아이만 신청해서 먹으면 되는 것이었고, 대체로 주스나 물 같은 다른 음료의 선택권도 함께 주어졌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우유 급식이 ‘희망하지 않으면 반드시 미리 거부 의사를 밝혀야 하는 것’이었다. 아이는 이 점이 낯설고도 이상한 모양이었다.

“엄마, 우유 급식 꼭 먹어야 해요?”

 우유를 싫어하는 아이는 난처한 표정으로 물었다. 처음에는 선생님이 혹시 우유 알레르기가 있느냐고 물어보셨다고 한다. 아이는 "알레르기가 있는 건 아니지만... 싫어해요."라고 답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것을 '우유를 먹는 것'으로 간주했다. 결국 우유 급식 신청서에는 아이 이름 옆에 동그라미가 그려졌다. 알레르기는 미희망 사유가 될 수 있지만, 개인의 선호도는 미희망 사유가 될 수 없었던 걸까. 둘째 아이는 반 아이들이 모두 우유를 하나씩 받아 가는 모습을 보고,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식사하는 분위기에서 혼자만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 어색했던 것 같다. 한국 학교 첫날, 아이가 처음 한 질문이 '엄마, 유유 급식 꼭 먹어야 해요?' 였던 걸 보면.


 아이는 엄마가 우유를 억지로 마시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내 대답을 이미 예상하고 그렇게 물어봤던 것 같지만, 그걸 선생님께 소명하기 위해선 학부모의 서명이 담겨있는 '우유 급식 미희망 신청서'라는 공식 서류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몰랐던 것 같다. '엄마가 안 먹어도 된다고 말한 아이들은 우유를 안 먹는다'는 짝꿍의 말을 듣고 구두 허락만 받고 등교했으니. 애플리케이션에서 최근 날짜순으로 밀린 3월의 가정통신문은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나도 그 사실을 몰랐다. 그 뒤로 아이는 자신의 이름이 몇 번이고 우유 급식 대상자에 올라가 있는 것을 보았고, 너 우유 먹는 거 아니었니?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아니에요, 를 몇 번이고 반복하다가 보름 만에 드디어 선생님께 공식적인 서류를 제출하고 우유 급식에서 '면제' 되었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우유 급식은 언제부터 당연한 것이 되었을까? 정말 모든 아이들에게 필요할까? 그리고 아이들은 그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있을까?


 찾아보니 한국 초등학교에서 우유 급식을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영양 공급과 성장 발달을 지원하기 위해서. 흔히 우유는 칼슘과 단백질이 풍부해서 어린이들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여겨진다. 특히, 한국에서는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영양 결핍 문제가 있었고, 그런 이유에서 과거 정부가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우유 급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고 한다. 지금도 성장기 아이들에게 칼슘을 충분히 공급하려는 목적으로 우유 급식은 유지되고 있는데, 특히 학교 급식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90년대 초반에는 간편하면서도 영양 보충이 되는 우유가 급식의 일부로 자리 잡게 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대다수의 초등학교에서 학교 급식이 잘 운영된다. 하지만 우유 급식은 여전히 관행처럼 유지되고 있다.


 더불어 한국의 우유 급식은 단순한 학생 건강 정책이 아니라 국내 낙농업을 지원하는 경제적 이유도 있는 듯하다. 우유 소비를 촉진해서 국내 낙농업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목적도 포함되어 있기에 학생들이 자동으로 우유를 신청하게 해 놓고, 원하지 않는 경우에만 ‘미희망 신청서’를 내도록 한 것이 여기에서 기인한 게 아니까. 결국 우유 급식이 계속 유지되는 건 건강과 경제적 이유가 맞물려 있기 때문인데, 그러니까 아이가 우유를 꼭 먹어야 할 이유는 사실 없는 거였다. 그냥 과거의 정책이 관성처럼 이어져 온 것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해 보였다.


“근데 다들 마시는데 나만 안 마셔도 돼?”

 아이는 때때로 고민스러워했다. 한국 학교의 규칙이나 분위기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다름’이 불편하게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사실 아이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해외에서 학교를 다닐 때는 개별적인 선택이 더 자연스러웠다. 점심시간에 어떤 아이는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먹고, 어떤 아이는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제공하는 급식을 먹었다. 급식을 선택하는 아이들도 각자 선택하는 음식 종류가 다 달랐고, 음식의 맵기나 채식 여부, 그리고 개인의 선호도에 따라 다 다른 메뉴를 먹었다. 곁들여 마시는 음료도 우유, 주스, 물 등 다양하게 제공됐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반 전체가, 아니 전교생 모두가 같은 메뉴를 받고, 같은 방식으로 식사를 한다. 이 익숙한 광경이 아이에게는 작은 문화 충격이 된 것이다.

 한국 학교는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서 ‘집단성’을 강조한다. 반 아이들이 같은 시간에 같은 방식으로 생활하고, 같은 규칙을 따라야 한다. 심지어 우유 급식처럼 작은 부분에서도 그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다. 아이가 느낀 한국 학교의 낯섦은 단순히 우유 한 팩 때문이 아니라, ‘다름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이에게는 앞으로도 비슷한 경험이 많을 것이다. 한국 학교에서 요구하는 방식과 본인의 익숙한 방식이 충돌하는 순간들. 나는 아이가 그런 순간들을 겪을 때마다 아이가 ‘어떤 것이 더 좋은가’보다는 ‘어떤 것이 자신에게 맞는가’를 고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유는 꼭 먹어야 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환경에서는 그 행동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그 안에서 자신의 선택을 존중받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우유 한 팩을 받는 문제에서 시작된 작은 질문이지만, 이 질문을 계속 던질 수 있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참고로 올해 3월에는 개학하자마자 잽싸게 '우유 급식 미희망 신청서'를 이 알리미 어플을 통해서 제출했다. 정신없는 새 학년 새 학기였지만 필요한 서류를 이번에는 까먹지 않고 잘 제출했으니 나도 이제는 한국 학부모 노릇에 잘 적응한 모양이라고 스스로 얼마나 기특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새 담임 선생님은 내가 우유 급식을 신청했다며 둘째 아이에게 우유를 쥐여주셨다.


"엄마? 내 우유 급식 신청했어요?"

"아니? 나 이번에는 미희망 서류 제대로 잘 냈는데?!"


 딸아이의 원망 어린 눈빛을 견뎌내며 제대로 잘 신청했다고 이 알리미 애플리케이션을 보여줬지만... 결국 온라인과 서면으로 두 번이나 미희망 신청서를 내고서야 딸아이는 우유 급식에서 면제될 수 있었다. 한국 학부모에게 중요한 자질은 '서류 제출'이 아니라 '제출했음을 증명하는 능력'임을 또 한 번 깨달으며.


 이 모든 에피소드를 두 번이나 겪으면서 순간적으로 ‘어휴, 이럴 거면 그냥 먹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나 역시도 집단주의 문화에 길들여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구나 싶다. 하지만 아이가 자신의 선택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올바른 부모의 역할이겠지. 우유 급식이라는 작은 선택 하나에서도 이렇게나 많은 과정과 논리가 개입된다면, 더 큰 교육 문제에서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작은 것부터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이 존중받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언뜻 너무 이상적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이미 그런 경험을 한 번 하고 나니 불가능한 영역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정작 부모인 나는 언제쯤 한국 학부모로서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을까? 진정한 한국 학부모로 거듭나고 있는 게 맞긴 할까?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큼, 부모들도 배우고 적응해야 할 것들이 많다는 걸 실감하는 요즘이다.(특히 신기술...) 막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려면 아직 11년이나 남았으니, 그때까지는 폭탄처럼 쏟아지는 가정통신문의 홍수를 잘 견뎌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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