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2월, 밑미(meet me)의 오프더레코드 전시에 기록전시자로 참여했다. 나의 부캐는 11번 기록물 제출자 심심. 2025년 7월부터 9월까지, 석 달 동안 쓴 모닝페이지를 제출했다. 기록물의 제목은 '나를 읽는 시간에서 발견한 사랑의 흔적들'
오프더레코드 전시 소식을 접했을 때부터 모닝페이지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모닝페이지는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이 날것의 기록을 그대로 제출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지난 5년 동안 꾸준히 모닝페이지를 써 왔지만, 오프더레코드 전시에 참여 신청을 하고, 이 기록물을 다른 사람이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니 모닝페이지를 쓰는 경험이 달라졌다. 문장을 고르고, 단어를 고르고, 읽는 사람을 염두에 둔 글을 쓰면서 가장 솔직한 나의 내면을 담아야 하는 모닝페이지의 본질과 멀어지고 말았다.
고민하다가, 어떻게든 재가공을 하기로 결심하고 다시 예전처럼 '그냥 막' 썼다. 그리고 10월 한 달 동안 이 모닝페이지를 다시 읽고 편집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썼다. 매일 아침 쏟아내듯 써 내려간 글 위에 다시 밑줄을 긋고, 문장을 고르고, 기억하고 싶은 마음의 결을 추려내는 작업이었다. 말하자면 쓰기의 시간이 끝난 뒤, 처음으로 '읽기의 시간'을 가진 셈이었다.
그동안 나는 노트 11권 분량의 모닝페이지를 써 왔지만, 그것을 다시 들여다본 적은 거의 없었다. 쓰는 경험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아침의 그 시간을 사랑했을 뿐이다. 한 번 써 내려간 마음은 그저 덮어두었다. 그런데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처음으로 나의 기록을 찬찬히 다시 읽게 되자... 내가 나의 글의 첫 번째 독자가 되어 나 자신을 다시 읽는 경험은 뜻밖의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그 감정은 예상보다 깊고 묵직했다. 편집과 회고의 과정은 모닝페이지를 쓰는 시간과는 또 다른 경험이었다. 과거의 내가 썼던 문장들이 지금의 나를 위로했고, 현재의 나를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었다. 잊고 지냈던 마음의 결을 따라가다 보니, 과거의 나는 내 기대보다 훨씬 더 솔직하고 단단한 사람이었다. 반복되는 키워드, 비슷한 고민,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이 페이지마다 가득했다. 시간은 흘렀지만 마음의 패턴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였을까. 내가 쓴 문장들이 결국 모두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분명하게 느낀 사실 하나 - 기억보다 기록이 더 정확하다는 것이었다.
"그땐 정말 힘들었는데"라고 막연하게만 기억이 남아있는 과거의 순간들. 그러나 기록물을 통해 다시 되돌아보니 모닝페이지 속의 나는 꽤 단단하게 버티고 있었다. 휘청이면서도 쓰러지지 않았고, 흔들리면서도 방향을 잃지 않았다. 모닝페이지는 어찌 보면 과거의 나를 나의 기억보다 더 객관적으로 담고 있었다. 감정에 휩싸인 기억이 아니라, 살아낸 하루하루의 증거가 기록이 되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러니까, 모닝페이지는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누군가를 향해 썼다고 생각했던 문장조차 시간이 지나 다시 읽어보니 전부 나 자신을 향한 메시지였다. 그때는 그저 쏟아냈을 뿐이지만, 다시 읽으니 그 안에는 인생의 빛과 그림자가 고르게 들어 있었다. 인생은, 그리고 나의 일상은, 결국 그 둘의 균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작 석 달치의 모닝페이지만을 돌아봤을 뿐인데도 이런 감정을 느꼈다면, 만약 내가 오랫동안 써 온 시간들을 다시 읽는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2020년부터 써 왔던 모닝페이지와 일기를 조금 더 본격적으로 회고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록들을 훑어보고 싶어졌다. 지난 5년의 기록을 하나씩 펼쳐보고 싶어졌다. 아주 개인적이고 사적인 기록이지만, 이번 오프더레코드 전시의 방명록에 남겨진 "이런 글이 필요했어요."라는 댓글은 이런 나의 마음에 작은 불씨를 더했다.
사실 나의 모닝페이지에는 아이들을 키우는 이야기가 참 많다. 세 아이의 육아 고민, 커리어에 대한 불안, 매일의 반복되는 하루들. 모닝페이지를 처음 쓰던 2020년은 내가 폴란드에서 살기 시작한 지 1년쯤 되던 해였고, 동시에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시기였다. 아이들의 나이는 세 살, 다섯 살, 그리고 아홉 살. 혼란과 불안, 책임과 사랑이 뒤엉킨 시간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매일 아침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붙들기 위해서 글을 썼다. 천국을 등에 업고 지옥불을 건너는, 특별할 것 없다고 여겼던 매일의 일상과 생각들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 날것의 기억과 기록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어떨까. 무엇보다도 과거의 기록을 읽는 일 자체가 나에게 이미 큰 위로가 될 것 같았다. 지금의 나는, 그 글들을 읽으며 나를 다시 붙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쓰기는 흘려보내는 일이었고, 읽기는 돌아오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그 경계에서 나를 다시 만나보기로 했다. 어쩌면 기록이란,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가장 솔직한 편지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조금 더 용기를 내어 그 편지들을 천천히 다시 읽어보려고 한다.
나를 이해하고, 나를 위로하고, 나를 다시 앞으로 보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