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의 앞 숫자가 바뀌었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그 세상을 살아가는 내 마음가짐은 바꿀 수 있겠지.
2023년 1월 2일의 일기
새해의 일기장에는 늘 비슷한 결이 있다. 아직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페이지를 앞에 두고 괜히 등을 곧게 펴게 되는 마음. 조심스럽게 첫 문장을 고르게 되는 공기.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를 처음 걸을 때처럼, 조금은 설레고 조금은 긴장되는 감정이 함께 있다.
지난주까지는 모닝페이지나 감사일기에 날짜를 쓰다가 실수로 '2025'라는 숫자를 쓰는 일이 빈번했었는데, 이번 주에 들어서면서부터 그런 실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여전히 작년에 머물러 있던 무의식이 이제야 제 날짜를 찾은 것 같다. 그래도 1월 한 달 동안은 내내 날짜를 쓸 때마다 살짝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이 긴장은 매년 반복되지만, 새해의 초입에만 존재하는 감정이라 때론 반가운 느낌도 든다.
올해도 나는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새해 결심들을 버킷리스트에 적었다. 운동, 다이어트, 영어공부, 독서, 글쓰기, 자격증공부... 나열해 놓고 보니 작년과 너무 비슷해서 조금은 민망해지기도 하는 목록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적는다. 아마도 새해 결심이란 것은 새로움보다는 반복에 더 가까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올해는 이 익숙한 목록 옆에 하나를 더 적어 넣었다. '다시 돌아올 것.' 실패하더라도, 빼먹더라도, 지키지 못했더라도 다시 결심하고 다시 시작할 것. 언제부터인가 나는 '작심삼일'이라는 말을 실패의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삼일마다 다시 결심하면 되는 걸. 삼일 만에 포기한 사람보다는, 삼일 뒤에라도 다시 돌아오는 사람이 더 성실하다. 요즘 나는 성실함을 새롭게 정의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성실함은 빼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빼먹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결석하지 않는 것, 하루도 거르지 않는 것, 계획표에 빈칸이 생기지 않는 것. 다 너무나 이상적이지만, 양육자로 살아가다 보면 이러한 결심은 자주 무너져 내리고 만다. 아이의 컨디션, 예고 없던 사건과 사고, 예상하지 못했던 감정의 소모 앞에서 나의 하루는 쉽게 무너진다. 그렇게 한 번 빼먹기 시작하면 '이미 틀렸다'는 생각이 따라붙게 되고, 그 생각은 곧 포기로 이어지기 쉽다.
하지만 성실함이 빼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빼먹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 성실함 자체가 나의 새해 목표라면. 실패를 인식하는 그 지점이야말로 새로운 시작점, 새로운 1월 1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빼먹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그때 다시 돌아오면 된다.
아티스트웨이 워크숍에서 이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한 참가자가 자신의 경험을 덧붙이며 자신의 상담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주었다. "성실함을 바꿔 말하면, 자기 회복력이에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이거다! 싶었다. 회복력. 넘어지지 않는 능력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힘,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능력.
회복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언제나 직선보다는 원형이 생각난다. 앞으로만 나아가는 화살표가 아니라, 빙글빙글 돌다가 결국 다시 돌아오는 동그라미. 나는 올해 많은 동그라미를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직선을 그리며 쭉쭉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1인분의 삶만을 사는 사람이 아닌, 세 아이의 주양육자로 살아가는 나의 인생에는 주렁주렁 달린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 모든 것을 들고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직선으로만 나아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올해도 종종 내려놓고, 잠시 멈추고, 때로는 백스텝을 밟겠지. 예전 같았으면 그 순간을 실패라고 불렀겠지만, 이제는 궤도를 그리는 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저 궤도 위의 한 점일 뿐이라고, 원을 그리고 있다고. 멀어졌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나는 사실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니라 다시 돌아오기 위한 반원을 그리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올해도 나는 분명히 하고자 하는 일을 지키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겠지. (사실 이미 여러 번 있었다) 계획은 어그러질 것이고, 다짐은 느슨해지겠지만 그래도 그때마다 나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 자체로 충분히 성실한 사람이니까. 그렇게 올해의 나는 직선보다 원에 가까운 삶을, 빙글빙글 원을 그리는 삶을, 완벽보다 회복에 가까운 하루들을 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