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인간 능력'을 발휘하여 독립된 인격체를 세상에 세우는 일
한 생명이 나에게서 생겨나 내 안에서 자라났고 마침내 이 세상에 태어났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 생명을 길러내야 할 책임과 의무를 부여받는다.
처음에는 너무 당황스럽고 혼란스럽다. 이 작은 존재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내가 무엇을 해주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며 울면 달래고 아프면 밤새 간호해 준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눈 맞춤과 피부 접촉을 통해 세상에 대한 첫 신뢰를 쌓는다. 이때부터 안전한 애착의 씨앗이 심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생명체는 무럭무럭 자라난다.
이제 그 생명체는 인지하고 말하며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그러고 나면 부모는 이 일에 슬슬 익숙해진다. 그 생명체는 이제 한 명의 인간이 되어간다. 세상을 탐구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가며 친구를 만들고 소통한다.
부모의 역할은 이제 아이의 신체를 돌보는 일에서 정신을 돌보는 일로 확장된다. 부모에게 이것 역시 처음 경험해 보는 막막한 일이다. 한 인간의 정신이 나에게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나의 언어를 따라 하고 나의 생각을 복사한다.
이럴 때 부모는 다시 자신을 돌아보고 아이에게 본보기가 되기 위해 고심한다. 어떤 생각을 갖게 해주어야 할지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지 생각이 많아진다. 좋은 말만 해주고 싶고 좋은 생각만 심어주고 싶다.
하지만 부모 역시 인간인지라 화를 내기도 하고 일관성 없이 행동하며 본인에게 유리하게 비합리적인 언행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미숙한 언행은 종종 부모 자신이 어린 시절 겪었던 미숙한 관계 패턴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거나 육아라는 고강도 노동에서 오는 스트레스의 표출이기도 하다.
그러고 나면 어김없이 죄책감이 밀려온다. 부모에게 죄책감은 또 하나의 넘어야 할 산이다. 인생에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그렇게 자주 느껴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 감정을 마주하고 추스르며 반성하고 그렇게 부모와 자식은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며 서로 함께 성장한다.
그러다 어느 날 부모는 깨닫는다.
사실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감정적 지지라는 것을. 아이가 부모에게 원하는 가장 필수적인 것은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다.
화목하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정서적 편안함을 느끼고 부모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속적으로 받는 것. 이것이 사실 아이에게 가장 필요했다. 그 외의 것들은 부차적이다.
그런데 부모는 아이가 자라남에 따라 공부와 성적, 남에게 보여지는 발달 상황과 성취에 의해 자신들이 좋은 부모인지 아닌지가 평가된다고 착각하기 시작한다. 부모는 아이의 성취를 통해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려 하거나 '경쟁에서 뒤처지면 아이의 미래가 불행해질 것'이라는 극심한 사회적 불안감 때문에 성적과 성취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결국 처음에 내게 왔던 생명체 자체에서 초점이 벗어나 타인의 시선과 부모 자신의 불안의 투사가 아이를 키우는 동력이 되는 것이다.
아이를 깊이 들여다보고 관찰하는 대신 남들이 하는 대로 이것저것 시키고 따라가게 하는 삶이 시작된다. 그러면서 아이와의 정서적 교류는 줄어들고 심지어 그것에 반항하는 아이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강요된 목표가 삶의 전부가 되어버리고 결과물에 대한 집착과 타인의 시선 속에서만 자기 존재감을 찾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인다.
타인이 좋다고 하는 것들을 아이가 원하지도 않는데 강요하는 행위는 결국 아이를 위한 것이라는 핑계 아래 세상에 그럴듯한 자식의 모습을 전시하려는 부모들의 실수로 이어진다.
물론 아이는 아직 정체성이 확립되어 있지 않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그럴 때 부모는 아이를 관찰하고 특성을 파악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세상을 탐구하게 해주는 기회를 주고 스스로 생각하고 발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여기서도 전제가 되는 것은 부모 자식 간에 안전하고 사랑받고 있으며 소통할 수 있는 관계가 먼저라는 점이다.
부모가 저지르는 또 하나의 오류는 자식을 본인과 동일시하려는 것이다. 내가 낳았으니 나와 비슷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내게 좋은 것이 자식에게도 좋을 것이고 내게 싫은 것이 자식에게도 싫은 것이다라는 가정을 하게 된다. 자식이 마치 내 일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심지어 나의 소유물인 것처럼 생각하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식은 나를 통해 세상에 나왔을 뿐 나와는 엄연히 다른 하나의 생명이다. 내가 낳았지만 나와 성격과 성질이 다른 인간인 것이다.
그럴 때 부모는 그 자식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아이 각자에 맞는 양육방식과 소통,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통찰력과 판단력, 지혜와 정서적 능력 모두를 요하는 총체적 인간 능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어렵다. 부모가 된다는 것.
한 생명을 기른다는 것은 세상에 태어나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힘들고 위대한 일일 것이다. 그 위대함은 단순히 생명을 보존하는 것을 넘어 나와는 엄연히 다른 한 인간을 세상에 온전히 세워주는 데 있다.
부모 역시 완벽하지 않은 인간임을 인지해야 한다. 하지만 그 미숙함 속에서도 기본적으로 아이에게 변치 않는 감정적 지지를 해주어야 한다는 가치관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 그리고 자식을 내 불안의 투사체나 소유물이 아닌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이처럼 아이의 눈을 통해 세상과 나 자신을 재발견하고 스스로의 미숙함과 상처를 마주하며 인간으로서 성숙할 기회를 얻는 과정이다.
끊임없이 본인 스스로를 반성하며 아이와 함께 각자의 자리에서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생명을 책임지고 또 다른 온전한 인간을 세상에 보내는 부모의 진정한 역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