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으로 포장된 우월의식에 대하여
인간은 희한하게도 자기가 속한 그룹과 아닌 그룹을 나누는 속성이 있다. 그리고 자기가 속하지 않은 그룹은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그중 가장 은밀하고 교묘하게 계급화하기 쉬운 것이 바로 ‘문화’의 영역에서 발생한다. '고상한 문화 그룹'과 그렇지 못한 일반 대중문화 그룹.
마치 고상한 문화 그룹에 속해있다고 하면 자기가 남들보다 더 우위에 있는 듯한 착각을 하고 타인을 무시하는 성향을 띠게 된다.
소위 ‘교양인’이라는 이름표는 누군가를 멸시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 걸까? 고상함이란 무엇일까?
그저 남들보다 책을 더 많이 읽고 생각을 좀 더 많이 하고 철학적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것?
그럴듯해 보이는 말을 하고 내가 좀 더 많이 배웠다고 생각하는 것?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
그게 무엇이란 말인가.
이러한 행위들이 정말로 내가 남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증명이 될 수 있을까?
우월함의 기준은 대체 무엇이며 누가 나에게 우월하다고 판단해 줄 수 있나?
사람은 다양하다.
어떤 이는 이 분야에 탁월하고 어떤 이는 저 분야에 탁월하다.
지식이 많다고 해서 혹은 어려운 예술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그저 그 사람이 그 분야에 관심이 있고 흥미가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그것이 우월한 것이라고 착각한다.
아무도 타인을 무시할 기준은 없다.
다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며 각자의 삶은 그 자체로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
서로의 다름을 모두가 인정한다면 나의 생각을 타인에게 주입시키려 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강요하는 행위는 타인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행위이자 자신의 의견만이 옳다고 믿는 행동이다. 결국 그것은 자기가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오만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아주 어린아이한테서도 배울 것이 있고 동식물로부터도 배울 것이 있다.
자연이야 말해 무엇하겠나.
항상 배움의 자세로 세상 모든 것에서 배울 것을 찾을 때 인간은 비로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배우지 못한들 어떠하며 발전하지 못한들 어떠하랴.
그것 또한 그들의 인생이다.
니체는 나약한 인간들에 대해 비판했지만 나약한 인간도 그들 나름의 삶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에게 맞는 삶이라면 누가 감히 그것을 비판할 것인가.
세상은 옳고 그름이 없는 것인데
결국 이 모든 사유가 닿는 곳은 한 지점이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늘 같은 결론에 이르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 타인의 시선이나 우월 의식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기에게 맞는 삶을 살 수 있다. 모두와 잘 지낼 필요도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도 없다.
나와 맞는 사람들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취미를 갖고 내 인생을 온전히 즐기면서 사는 것. 이것이야말로 껍데기뿐인 '고상함'을 넘어선 가장 가치 있는 삶의 방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