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간은 도덕을 포기하지 못할까

니체와 도덕 사이에서

by selves

우리는 왜 무의미해 보이는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선함을 갈망하는가?


이 질문에 가장 날카롭게 맞선 철학자 중 한 명이 니체다. 그는 진정한 염세주의자라면 신과 세계를 부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도덕 자체도 의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세계가 본질적으로 무의미하다면 선과 악의 기준 역시 함께 무너져야 한다. 그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이면 결국 삶 자체를 부정하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 지독하리만큼 극단적이지만 그만큼 일관된 사유다.


그는 젊은 시절 지적으로 깊이 영향을 받았던 쇼펜하우어조차 비판했다. 세계의 고통을 설파하면서도 식후에 평온히 플루트를 불던 노철학자의 모습은 니체의 눈에 철학과 삶 사이의 간극을 상징하는 장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니체의 잣대는 지나치게 엄격하다. 자신의 사상을 삶과 완벽히 일치시키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럼에도 질문은 남는다. 세상이 무의미하다면 왜 인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도덕'에 매달려온 것일까? 얼마 전 본 영화 <신데렐라>에서도 "용기를 갖고 친절하라"는 메시지가 주제다. 이 단순한 도덕적 교훈은 시대와 문화를 넘어 끊임없이 반복된다. 왜일까.


인류학적으로 보면 도덕은 가장 영리한 생존 전략이었다. 신체적으로 나약한 인간이 맹수와 자연의 위협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리가 필요했고 그 무리를 묶어주는 접착제가 바로 도덕이었다. 서로를 신뢰하고 협력하는 집단이 결국 더 오래 살아남았다. 사회가 커질수록 도덕은 타인을 믿게 만드는 보호장치가 되었고 공동체를 지탱하는 질서가 되었다. 하지만 이유는 그것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우리는 삶의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 만약 삶이 단순한 본능과 힘의 경쟁일 뿐이라면 인간은 깊은 혼란을 느낄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문명은 선함에 대한 동경을 이야기와 가르침 속에 심어두었던 것이 아닐까. 실제로 가치 있는 일을 한다고 느낄 때 인간이 더 큰 만족감을 경험한다는 것은 심리학 연구들이 꾸준히 지지해 온 사실이다. 공감 능력이 인류의 협력과 번영을 가능하게 했다는 해석도 있다. 타인의 고통을 나의 것처럼 느끼는 이 기묘한 감각이 우리를 더 온전하게 만들어왔는지도 모른다.


니체는 인간의 선함이 나약함을 숨기기 위한 위선이며 생의 의지를 억압하는 굴레로 보았지만 나는 그 위선이 어쩌면 서로를 지켜내기 위한 인류의 가장 처절하고도 다정한 몸부림이었다고 본다. 대다수 인간에게 도덕은 거친 세상 속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정신적 기준이었다. 흔들리는 삶 속에서 무엇이 옳은지를 묻는 행위 자체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니체의 비판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니체가 겨냥한 것은 도덕 그 자체라기보다 생각 없이 따르는 도덕이었다. 다만 그가 그토록 차가운 망치를 휘두른 데는 맥락이 있다. 19세기 유럽의 위선적 도덕과 경직된 계급 사회라는 단단한 벽을 깨기 위해선 그만큼 강한 충격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의 비판은 도덕 자체를 부수려 한 것이 아니라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을 억누르는 낡은 권력에 의문을 던진 것에 가깝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니체의 철학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턱대고 도덕을 따르는 ‘노예'도, 공동체를 부정하는 고독한 위버멘쉬도 아니다. 공동체의 평화를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서 개인의 탁월함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중간 지점을 찾는 지혜다. 공동체를 지탱하는 도덕은 받아들이되 나를 억압하는 낡은 규범에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개인. 타인의 시선에 매이지 않으면서도 타인의 삶을 존중할 수 있는 개인.


어쩌면 인류가 무리를 이루고 도덕을 만든 이유는 단순한 약함 때문이 아니라 위대한 개인이 태어날 수 있는 안전한 토양을 만들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공동체는 위버멘쉬가 태어나는 토양과도 같다. 건강한 숲이 있어야 거목이 자랄 수 있듯, 무리가 건강하게 유지되어야 그 안에서 자기 극복을 이루는 개인도 탄생할 수 있다.


니체의 위버멘쉬는 종종 고독한 개인으로 읽히지만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서로의 주체성을 존중하는 깨어 있는 시민들의 연대로 볼 수도 있다.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면서도 서로의 생존을 돕는, 느슨하지만 끊어지지 않는 연결이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나만의 주체성을 세우되 그 힘으로 내가 속한 공동체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것. 어쩌면 그것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도덕의 모습일지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무리 동물 인간의 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