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이 되고 일이 시작되면 모든 걱정이 끝날 줄 알았다. 모두들 그렇듯 처음 취직을 하면 마치 이 회사가 나의 평생 직장인 것처럼, 내가 이 회사를 위해 큰 역할을 해야 할 것 만 같은 사명감에 불탄다. TV나 영화에서처럼 회사의 결정권자들이 내리는 결정들에 내 의견이 반영될 것 같아 자신만만하게 내 아이디어도 내 본다. 하지만 곧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조직 서열의 제일 끝에 있어 아무리 외쳐도 메아리 조차 돌아 오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도 6개월이면 충분하다.
난 우리 부서에서 처음으로 뽑힌 외국인이었다. 그리고 경력자가 아닌 대학교를 갓 졸업한 아무것도 모르는 새내기를 뽑지도 않는 회사였다. 그래서 들어갈 때 나도 부담감이 컸지만 그들도 다른 문화에서 온 신입 사원을 대하는 법에 대해 그리 익숙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느 신입 사원처럼 내 포부로 다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XX 씨, 이거 복사 좀 해 놔요”, “XX 씨, 이거 외무성에 전달해야 되는데 마감일이라 직접 좀 다녀와야 겠어.” “XX 씨, 외부에서 클라이언트가 왔는데 차 좀 내와요.” “XX 씨, 전화는 무조건 신입이 받는 거야.”
첫 3개월은 회사 일에 익숙해지는 데 정신이 없어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점점 일에 익숙해지고 나니 이것 저것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의 기업 문화는 한국의 그것과 매우 비슷하여 부모님과 같은 나이 또래도 있는 집단에서 내가 목소리를 내는 것은 매우 ‘건방진’ 일이었다. 또 튀어서도 안 되고, 조직 서열이 가장 중요하며, ‘보고, 연락, 상담’ 체계가 기본이다. 그리고 남녀 차별이 엄연히 존재하는 곳이다.
이렇게 위계질서가 중시되고 내 의견이 일도 안 먹히는 곳에서 내가 룰을 깨기 시작했다.
“XX 씨, 클라이언트 왔으니까 차 좀 내 오세요.”
“저 지금 미팅 준비해야 하는데, B씨 한테 부탁하면 안 될까요?”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리고 퇴근 바로 전에 직속 상사한테 불려갔다.
“그러니까 저 전화 중인 거 아시면서 차 내 오는 거 옆 동기한테 시켜도 되잖아요.” 라고 볼멘 소리를 하자, “남자가 차 내 오면 그림이 이상해.”
“지금 21세기 맞나요? 무슨 남자 여자가 따로 있어요 차 내 오는데…. 덜 바쁜 사람이 내 오면 되죠.”
“이렇게 말대꾸 하는 건 한국 사람 특징인가? 그리고 하라면 할 것이지 왜 말이 많아?”
거기서 직속 상사가 서류 파일을 내던지며 씩씩 거리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난 또 상사의 상사한테 불려갔다. “그러니까 일본에서는 말이야…”라며 타이르듯이 이야기를 했지만 그 당시 나는 이미 한국이 어쩌고 여자가 어쩌고 하는 데서 진절머리가 난 상태라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뒤로 난 건방진 아이로 찍혀 버렸다. 아직 사회 생활을 해보지 않아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라서 상사한테 말대꾸 하는 아이라고. 이 땐 내가 사회 생활 내공이 없을 때라서 일본이 이래서 안 된다느니, 상사가 미친 것 같다고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해댔다. 하지만 고집 센 나는 끝까지 내가 옳다고 주장하며 굽히지 않았다. 물론 나 혼자 발버둥 쳐 봤자 내가 조직을 바꿀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1년 뒤 어렵게 들어간 이 회사에 사표를 냈다.
차를 내 오는 것 때문에 회사를 그만 둔 건 아니었지만, 처음 겪어본 사회 생활에 적지 않게 당황한 나는 다시 한번 생각을 했다. 특히 내가 서열이나 부조리한 관습에 대한 반항심이 크다는 걸 처음으로 발견한 때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다시 나에 대한 질문이 시작 되었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퇴사 2달 전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조직 생활이 체질이 아닌 것 만 같았고, 1년 밖에 버티지 못한 루저인 것만 같았다.
짧은 회사 생활을 하면서 야근도 거의 매일 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있었다. 나에게 긴 휴가를 줘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또다시 새로운 곳으로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어린 시절 내가 좋아했던 나라에 대한 배신감이랄까, 어떻게 사회가 이렇게 뒤쳐져 있을 수 있는지 고개를 저으며 젊고 당찬 내 패기가 꺾인 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다. 그렇게 큰 상처를 가지고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며 영국 행 비행기에 올랐다. ‘영어 공부도 할 겸 유럽 여행을 해보자!’
또 한번의 도전이 시작 되었다. 처음에는 항상 해 보고 싶었던 영어 공부를 조금은 늦게 시작했다. 그리고 여행도 하며 많은 문화와 접해보니 하고 싶은 공부가 생겼다. 1년 넘게 방황하며 무기력하게 있던 나에게 목표가 생긴 것이다. 이 목표가 생기기 까지 여태껏 그래왔듯이 많은 생각과 고민을 거쳤다. 그리고 다음에는 같은 실패는 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며 나름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첫 사회 생활에 대한 로망은 무너져 내렸지만 다시 한번 무언가 해보고 싶은 것이 생겼다는 사실에 너무나 기뻤다. 처음 겪어봤던 큰 상처가 아물었는지 힘들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나 자신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이 또한 살면서 반복 될 것이란 것을 배우기 시작한 때도 내 나이 20대 중반이 지나갈 무렵이었다. 아마 이 나이의 모든 청년들이 비슷한 경험을 할 것이고 좌절이라는 것도 맛보게 될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 처음 맛본 좌절이 아주 쓰디 쓰지만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꼭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