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없다.
아무 일이 없다.
하루 동안 내가 꼭 해야할 일이라곤
아침에 일어나서 108배를 하는 것과 출근해서 고양이 밥을 주는 일이다.
그리고는 나를 찾는 사람은 없는지 메신저의 1을 지워나가는 일.
새로운 곳으로 이사 오고나서는 일상이 단조로워졌다.
같이 사는 사람도 바뀌고, 출근하는 방식도 바뀌고, 출근하면서 보는 풍경도 바뀌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 기도를 하고 집안을 정비하고 출근 준비를 하고 걸어서 출근하는 길이면 오늘은 어느 카페에서 어떤 커피를 마실까 고민하던 시간이 사라졌다. 이제는 남들이 다 출근했을 시간에 겨우 일어나 기도방석을 펴고 108배를 한다. 그리고 밥을 먹고 씻고 자동차로 출근을 한다. 매일 아침 논밭을 가르며 '오늘 날씨 좋네, 벼가 이만큼 자랐네'하며 여유롭게 출근을 한다.
서울에서 경주에 이사온지 5개월차다. 이사 준비와 결혼 준비, 그리고 새로운 곳에 적응하던 시간이 지나고 안정기에 접어드니 나의 '가만히 못있는 병'이 도지게 되었다. 어렸을 적부터 시간을 알뜰히 쓰고 빈 시간을 남기지 않고 이것저것 다 하던 나였는데 30대가 되면서 취미생활들을 정리하고 마음공부와 직장일로 삶을 채워가는 것이 익숙해졌다. 이 또한 시간이 꽉꽉 채워지고 여러사람들과 부대끼며사는 삶이라 심심할 틈이 없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많은 활동이 비대면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사람을 만나지 않고 일을 하게 되고, 결혼하면서 남친은 남편이 되어 하루 종일 같이 있게 되었고, 연고 없는 경주에 이사까지 오게 되면서 나의 시간은 혼자서 견뎌야 하는 시간이 많아지게 된 것이다. (남편이랑 같이 있어도 각자 할일을 하는 타입이다.)
그렇다고 내가 사람을 만나서 에너지를 받는 타입은 아니다. 결혼 후 알게된 부분은 나는 나름 '집순이'였다는 것. 주말에 늦잠자고 일어나서 아점으로 라면 끓여놓고 티비로 밀린 드라마 보니 밖에 나가지 않는 것도 괜찮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또 곰곰히 생각해보면 집에서 나가 어디로 이동하는 것 자체가 번거롭다보니 귀차니즘으로 인해 집에 있는 걸 더 선호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서울은 집앞에 나가면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곳이 많았는데 지금 우리집을 경유하는 버스는 딱 한대 뿐...)
그렇게 몇번의 주말을 집에서만 있다보니 현타가 왔다. '뭐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예전에 내가 좋아하던게 뭐지?' 곰곰히 떠올려봤다.
1. 요리하기 (실험적인 요리 좋아함. 냉장고 파먹기가 특기. 음식 남기는거 싫어하고, 많은 사람들이 다 먹어주면 좋아함.)
2. 관심분야 책 읽기 (꽂히면 읽는 타입, 완독은 거의 못함, 믿을만한 인플루언서가 추천해주는 책 위주로 읽음)
3. 인스타에서 본 곳 가보기 (대부분 서울)
4. 사진찍기 (나의 리코 카메라야 미안하다. 요새 고양이 아니면 아이폰으로도 잘 안찍는다.)
예전에는 쉬웠던게 이제는 뭔가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변한걸수도 있겠다 싶어 가장 손쉬운 2.관심분야 책 읽기를 도전했다. 알라딘을 뒤지다가 예전에는 관심도 안가졌던 '컬러링북'도 주문했다. '아 내가 정말 심심하구나...' 알 수 있었다. 혼자만의 킬링타임에는 침착맨 유튜브를 틀어놓고 앉은자리에서 컬러링북 한장을 다 칠해본다. 다 하고나면 그렇게 뿌듯한 느낌도 없다. '아 오늘 뭐라도 하나 했다' 정도의 마음으로 인증샷을 하나 남긴다.
남는 시간에 유튜브만 보고 인스타그램만 하는 나 자신이 너무 답답해서 계속 탈출구를 찾고 싶었다. 바쁘게 사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이 되겠지만은 나는 앞으로 살아야할 시간이 많기에 그 삶 속에서 나만의 시간 보내는 법을 터득하고 싶었다. 꼭 어딜 가야하고, 돈을 써야하고, 누구를 만나지 않아도 되는.
'글쓰기를 해볼까?'
SNS에서 보는 사람들, 책을 통해 접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끌리는 나는 은연중에 나도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평소에는 과묵한 편이지만 누군가 나에게 질문을 하면 수다쟁이가 되곤 했다. 그런데 사람을 안만나게 되고, 이제 더이상 누군가 나를 궁금해하지 않게 되면서 나는 점점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누군가 나에 대해 물어봐주지 않는다면,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누군가에게 말로 하기 어렵다면 '글'로 풀어보면 어떨까 싶었다.
말과 글로 내 생각을 표현하기 어려웠던 시절에 나의 소통창구는 '사진'이었다. 사진 덕분에 어두었던 청소년기의 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다시 마주한 나의 상처를 돌아봐 준 것은 상담 공부를 하면서 만나게 된 '글쓰기' 였다. 그 이후로 나는 블로그에 익명으로 어디서도 말 못하던 마음 속 응어리들을 사진과 글로 일기쓰듯 뱉어냈던 것 같다. 그렇게 마음정리가 끝나자 나는 감정을 뱉어내는 글쓰기를 멈췄다. 나를 아는 누군가가 볼까봐 조금 부끄러웠던 것 같다.
한동안 글쓰기가 필요없던 삶이었는데, 나는 다시 '글쓰기'를 찾아왔다. 도대체 어떻게 시작해야하지? 막막했다. 블로그로 돌아가자니 정보와 광고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글쓰기 온라인 클래스를 검색해보다가 '브런치'를 알게 되었다. 글쓰기 강의를 구독할까 말까 고민하다 성격 급한 나는 일단 지금 답답한 이 마음과 생각을 어딘가 털어놔야겠다 싶어 브런치부터 로그인을 했다. 그렇게 나는 첫 글을 이렇게 쓰고 있다.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글쓰기가 주특기, 그리고 귀차니즘이 많은 사람이라 과연 브런치를 꾸준히 쓰고 과연 이 글을 공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온라인 클래스를 등록하면 들인 돈이 아까워서라도 꾸준히 쓰려나? 모르겠다. 오늘까지만 한번 고민해봐야겠다.
이 글을 쓰면서 마음 한켠에는 '남편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을텐데' 라는 바람도 조금 있었다. 그런데 나의 남편은 논리적인 사람이며, 남에게 관심이 없다. 나랑 똑같은 성향이다.ㅎㅎ 그런 사람에게 나의 바람대로 너는 내 이야기를 경청하고 적절하게 질문해주며 나의 생각을 다 들어줘야해.라는 것은 서로에게 힘든 일이라는걸 안다. 나는 남편에게 의지하지 않고, 나의 방식으로, 그리고 장기적인 방법으로 '홀로 이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우려고 한다.
내가 아는 이혼한 60대 남성은 본인의 은퇴 후 혼자만의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고 계셨다. 나는 아직 30대이지만 지금부터 연습해보려고 한다. 이 다짐이 부디 좌절되지 않고 가늘고 길게 이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