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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Jan 27. 2021

엄마와 스카이다이빙, 사진도 없다 영상도 없다

패륜 여행기, 호주편EP6

여섯 번째 패륜 : 쓸데없이 돈 아끼기


지금 와서 돌이켜 여행을 함에 가장 잘못된 선택은 추억에 돈을 아끼는 것이었다.


나는 체험에 돈을 아끼지는 않았다. 할 수 있는 액티비티나 프로그램이 있다면 돈을 더 주고서라도 신청했다. 경험이 전부고 추억이 전부니까. 내가 이 호주에 와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못하고 한국에 간다면, 호주 여행을 온 이유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겐 돈을 벌어보지 못한 학생으로서의 시간밖에 없었기 때문에 오직 나의 판단만으로 소비 가치를 가름했다. 직장인이라면 10만 원 정도야 하루 일하면 버는 금액이지만, 대학생인 나는 한 달을 50만 원으로 살아왔었다.


지금 와서 가장 후회되는 점은 스카이다이빙을 하면서, 영상과 사진을 별도로 구매하지 않은 점이다. 이 선택은 정말 죽을 때까지 나를 괴롭힐 것이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 행복했던 순간을 다시는 볼 수 없음에 괴롭다.


당시 나는 이미 스카이다이빙에 1인당 35만 원, 엄마랑 나 70만 원을 지불한 상태였고 동영상을 추가하려면 1인당 17만 원이라는 금액이 더 필요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별것 아닌 비용인데, 단지 한국 와서 파인 레스토랑 두세 번 안 가면 되는 돈, 치킨 여덟 번 안 시켜먹으면 되는 돈인데 이상하게 여행을 할 때 크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엄마에게 1인당 17만 원을 더 주면 동영상을 찍을 수 있다고 하며, 엄마만 찍으라고 말했었다. 그렇게 딸이 말하는데 그 어느 부모가 "그래 알겠다" 하겠는가. 당연히 돈 아끼라고 필요 없다고 말하지. 딸내미가 이렇게 약았다.


Tip) 패키지, 옵션, 체험, 식비 등 어떤 때는 정확한 가격을 부모님께 말하지 않는 센스가 필요합니다. 또는 가격을 낮춰 말하고 한국에서 본인의 주머니를 졸라맵시다





내가 간과했던 건,

스카이다이빙이라는 이 경험이 소름 끼칠 정도로 예상치도 못하게 퍼펙 했다는 것

내가 느낀 그때의 감정과 순간들을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는 것

기억은 점차 퇴색되고, 카타르시스 절정에 있는 나를 내가 볼 수 없다는 것

엄마가 스카이다이빙을 할 수 있는 순간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겠지 라고 합리화한 것.   


나는 엄마에게서 엄마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간직할 기회를 뺏어간 것이다




호주 케언즈에서 스카이다이빙은 육지와 바다 두 가지를 고를 수 있는데, 나는 뷰가 더 아름답다고 하는 미션비치와 가장 높은 고도를 선택해서 가장 좋은 코스를 예약했다. 한 번을 하더라도 최대한 길게 제대로 하고 싶었다. 도시에서 약 2시간을 달려 비행장에 도착하니 우리 엄마 연배는 아무도 없었다. 점차 걱정되기 시작해서 스태프를 잡고 메디컬 체크업을 계속 물어봤다.


내게는 젊은 스카이다이버가 붙었고, 엄마에겐 가장 베테랑으로 보이는 스카이다이버가 붙었다. 준비를 단단히 하고 경비행기를 타러 갔다. 한 8명 정도 되는 사람이 있었는데,


세상에.. 우리 엄마 순서가 제일 먼저였다. 옆에서 외국인들이 언니랑 같이 온 거냐면서 묻길래 엄마라고 나이 말해주니 놀란다. 그리고는 너네 어머니가 일등으로 뛰어내리실 거라고 대단한다고 응원해주었다. 응원받는 엄마는 뭔가 신나 보였다. 귀여움


경비행기는 끝없이 하늘 위로 올라가고 큰 모터 소리에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묻힐 법도 한데, 기분 좋은 떨림인지 긴장감인지 모를 저릿저릿함에 흥분하고 있었다.


갑자기 비행기 한 편의 문이 확 열려 바라보니, 파아란 허공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엄마에게 뭐라 말을 건네기도 전에 엄마와 스카이다이버가 연결된 채로 사라졌다. 억 소리도 못 들었다. 그리고 바로 연달아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사람 빠진 공간으로 엉덩이로 움직이니 1분도 안돼서 나는 바로 심연의 푸른 아가리 바로 앞에 놓여있었다.


"이야! 우리 3초 후에 뛰어내릴 거야?! ok? "

"o.. ok.."

1초... 오케이 후하 후아...

2ㅊ 억!


3초는 무슨 1초 하고 바로 2초에 밀어 떨어뜨려졌다.  


정신없이 중력이 느껴지지 않는 허공에서 15번은 돈  것 같다.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는 건 없었고 비행기에서나 어렴풋이 보이던 구름 속을 빠르게 수직 낙하하고 있었고, 강한 바람에 눈을 못 뜨다가 간혹 눈을 떴을 때는 하늘에서 구름, 구름에서 계속 하늘. 말 그대로 정신이 없다는 게 뭔지 이젠 안다.


그리고 바로 귀가 찢어질 듯 아팠다. 이대로라면 고막이 나간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와중에 걱정 엄청 했다. 소리라도 안 지르면 심장이 터져버릴까 싶어 입을 벌리면 바람이 폐까지 점령하듯 쏟아져 들어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딱 2초만 더 있으면 숨 막혀 죽겠다 눈앞이 흐려졌다 싶을 때, 팡! 하더니 슉! 하더니


나는 말 그대로 파아란 하늘에 있었다. 남색 물빛 드넓은 지평선의 바다를 아래로.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파란색인 그 색채는 어찌나 황홀한지.


심장이, 세포 하나하나가 뻥 뚫리는 기분


모든 근심도 생각도 현실도 잊은 채

그 푸르른 고양감이 주는 그 순간에만 녹아있었다.

 


엄마는 이때를 이렇게 말한다.


"지금 바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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