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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miman Aug 05. 2021

왜 이렇게 책을 어렵게 썼습니까?

그래야 할 때는 그래야 한다

 책을 쓰고 나서는 수 많은 피드백을 접하게 된다. 많은 분들이 책을 아껴 주신 덕분에 높은 평가를 받고 있고, 덕분에 지금도 책은 그럭 저럭 팔리고 있다. 평가들을 읽다 보면 이러한 평가들이 보이곤 한다. 


"책이 너무 어렵다"


 이러한 느낌이 드신 분들, 정답이다. 왜냐 하면 저자는 책이 꽤 어려울 것을 감수하고 책을 썼기 때문이다. 다만 그냥 실력 자랑하고 싶어서 그렇게 쓴 것은 아니고, 나름의 이유가 있다.


 여러 자잘한 이유들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책을 읽으면 그 책만의 독특한 경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첫 출판제의를 받은 뒤, 각종 커뮤니티와 유투브, 교육용 책들을 둘러보았다. 어떤 내용들은 만화의 형태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나노), 영상으로 되어있으면서 내용이 깊기도 하고 넓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뭔가 큰 그림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반도체에는 굉장히 진부하다 못해 고인물에 가까운 비유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CPU는 인간의 두뇌에 해당한다, 메모리는 공책이나 메모장에 해당한다는 비유가 이에 해당한다.

 좋은 비유들이긴 하지만, 지나친 단순화는 문제를 이해하기 힘들게 한다. 저런 비유들은 아래의 답을 얻는 데 어떠한 인사이트도 제공할 수 없다.


어째서 인텔 x86만 남고, 모토롤라 등은 죽었는지

어째서 ARM이 다시 떠오른건지

NVIDIA는 왜 지금 날아다니는 건지

(등등등...)


 그냥 CPU가 두뇌같은 것이라고 하면, 두뇌를 잘 만들어서 팔면 되는거 아닌가? 인텔이 연구개발에 매 해 수조원씩 쏟아붓기 때문에 따라갈 수 없는건가? 그런데 수 조 달러 규모를 가진 중동 국부펀드들이 보면, 투자 못 할 돈도 아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CPU회사를 만들어 돈을 쏟아부으면 되는 쉬운(???) 방법을 두고, 일단 글로벌파운드리 지분 인수를 하는데 그쳤다.

 

 음 그럼 연구개발비 이외의 +a가 있는건가? 그렇다. 근데 그거 사실 그냥 조그만 +a가 아니고 매우 큰 부분이다. 대체 그 연구 개발비로 무엇을 하고 있는것이냐에 대한 답이 되기 때문이다. 같은 액수를 쓴다고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내가 만약 워렌 버핏과 강원랜드 앞에서 마주친 누군가에게 1억원씩 투자금을 주고, 10년 뒤에 투자 성과를 비교해본다면, 투자금은 매우 큰 차이가 날 것이다.

 기존에 있던 각종 반도체 관련 개론서들이나 분석 레포트는 이런 내용이 빠져있다. 인텔이 컴퓨터의 두뇌를 매해 새로운걸 만드는데, 대체 뭘 개선하는건지? 그냥 내가 먼저 더 좋은 노광기 쓸어가면 인텔 말려죽일수 있는거 아닌가? 음 아무도 안 하는거 보니 그럴리가 없다. 


 이해의 수준이 이러니 열심히 일하는 연구원들 속도 모르고 '왜 못하고 있느냐' '망한다' 등 단편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밖에 하지 못하고, 지원대책은 늘 보조금 이야기밖에 없는 것이리라.


 그리고 저 +a는 사실 이해하기 쉬운 것이 아니다. 어려운건 어렵다. 롯데월드 타워를 짓는데 들어갈 자재를 10kg 백팩에 다 들어가게 만드는 방법은 없다. 

 만약 이 기술이 동네 10살짜리 꼬마도 이해할 수 있는 기술이라면, 전 세계 시장의 수십 퍼센트를 장악해야만 연구개발을 이어갈 수 있는 대형 산업도 아닐 것이고, 그 변화에 따라 추후 IT, 소프트웨어 시장을 뒤흔들지도 못할 것이다. 이런 수준의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설명도 어려워지게 된다. 어려운 과학기술을 설명하는데 어렵고 얕은 (실패한)설명은 있을 수 있지만, 쉽고 깊은 설명은 아예 가능하지가 않다. 어렵고 깊거나, 쉽고 얕거나 이 둘 중 하나를 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 작가 소신을 위해 책의 독자 층 넓이를 포기한 것이다. 별 수 없지 않은가. 내가 지금 호텔 주방장에게 요리에 대해 배운다고 해서 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설명을 듣다가, 아 이 이상하게 생긴 것도 조리도구였어? 이러고 있을 것이다. 기본 공부가 안 되어 있다면 복잡한 호텔 주방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요리라고는 라면과 볶음밥밖에 하지 못하는 사람도 이해하게 알려주세요! 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저 전략은 나름 나 자신에게는 큰 용기를 주었다. 특히나 '앞으로도 이런 종류의 책이 더 나와야 한다'는 종류의 감상은 최고의 찬사였다. 그런 감상을 남겨준 분들께 감사하다.


 어디 적을 곳이 없어서 그냥 여기에라도 적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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