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뎌야 할 때가 오면

by 은수
그때 모르던 일을 시간 지나 깨닫게 되면,
안타까움 보단 멀리서 험산을 보는 마음이 됐다.


호들갑 떨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가 힘들었으니, 주어진 시간에서 최선을 찾아 살뿐이었다. 할 수 있다면 내게 주어지는 '경험'에 감사할 일이었다.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절망이 찾아올 때 어둔 땅을 뒤적여 희망을 찾아야했다.


글쓰기 교실에서 가르치던 아이들은 대부분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아이들과 만날 수 없는 일이 생계를 걱정하는 문제와 연결돼 있는 건 슬픈 일이었다. 무엇보다 아이들 웃음소리 나 정곡을 찌르는 아이 다운 질문을 듣지 못하는 날이 길어질 때, 아이들이 올 수 없다면 내가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코로나 첫 해엔 벌어둔 돈을 야금야금 빼먹으며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지만, 다음 해도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코로나19는 새로운 변이를 만들어 내며 매일 확진자 최고 숫자를 갈아치웠고, 그나마 백신이 나와서 학교는 부정기적이나마 문을 열기 시작했다. 학생 수가 많지 않은 작은 학교들은 확진자가 나오기 전까지는 정상 수업을 원칙으로 하게 됐다.


키워야 할 아이들을 데리고 먹고사는 일의 준엄함 앞에서 나는 꽤 많은 것을 증명했다. 강사 자리를 얻기 위해 이력서를 썼고, 그곳에서 원하는 사람이 '나'라는 것을 부단히 설명하며 작은 이력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여전히 글쓰기 교실로 오던 몇 안되던 아이들의 글쓰기 수업과 제주 시내 학교로 방과 후 논술수업을 하러 왕복 3시간 반을 다녔다. 방역도우미, 시간제 사서, 어린이 인권강의 까지의뢰가 들어오면 시간이 허락하는 데로 모두 했다. 한 푼의 불로소득도 없는 날것 그대로 노동하는 사람의 시간이었다.


방역업무는 아침 7시 40분에 학교로 출근해서 아이들 손 닿는 곳을 소독하는 일로 시작됐다. 전교생이 손소독을 마치고등교 마무리가 되면, 학교가 조용해진 그때부터 두 시간가량책 볼 시간이 있었다. 주중에 4개에서 5개의 일을 병행하던 때라 물리적으로 책 읽을 시간을 내기 어려웠기 때문에 나는 그 두 시간을 알차게 보낼 생각에 일하러 가는 것이 꽤나 즐거웠었다.


평소 어려워서 집중하기 어렵던 <숀탠- 이너시티 이야기>의 25편 동물이야기와 500페이지가 넘는 <신동흔-옛이야기의 힘>을 방역 근무하던 그 해에 모두 읽고 이야기마다 독후감을 써둘 수 있었다. 그때,

삶은 내게 ,
지금은 밖이 어두우니
여기서 가만히 견디라고 했다.


내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시간은 흘러가게 두는 대신, 동이 틀 때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견디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