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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Aug 12. 2023

사라진 뒤 선명해지는 것

‘내가 꿈꾸는 그곳’ 작가님을 보내드리며!

산 자가 바라본 죽음은 무력하고 야멸차다. 급히 닫힌 문으로 삶과 죽음의 명확한 경계가 지어졌다. 완성이니 미완성이니 하는 말은 애초에 죽어보지 못한 이들의 불안이 지어낸 이야기 일 뿐이었다.


지난 8월 9일 '내가 꿈꾸는 그곳' 작가님의 부고를 접했다. 매일 몇 개의 글을 올릴 만큼 열정적으로 활동했던 작가님 소식이 어느 날 갑자기 끊겼었다. 궁금한 마음에 남겨 둔 안부 덕에 소식을 조금 더 빨리 접하게 됐다. 작가님은 마지막 글이 올라온 6월 23일 작고 하셨고, 따님이 브런치에 부고를 알린 지도 며칠이 지나 있었다.


작가님이 브런치 공간에 얼마나 애정을 갖고 있었는지는, 피드에 남긴 1820개에 달하는 진심 어린 기록만 봐도 알 일이었다. 소통하던 분들의 기도 속에 작가님이 떠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 피드에 부고 소식을 올려놓고, 작가님과 연결된분들의 흔적을 찾는대로 문을 두드렸다.


매일 쓰고 있던 내 글의 발행을 멈추고, 한 분이라도 더 많은 분이 소식을 접하길 기다렸다. 뒤늦게 비보를 접하신 분들이 작가님 피드에 조문글을 남겨 주실 때마다 드디어 작가님이 기다리던 분들을  만나게 해드린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작가님 피드에 남겨진 기록을 다시 읽어보고 있다. 대자연을 여행한 작가님의 기록에는 마치 언제든 떠날 것을 준비한 것처럼 삶과 죽음에 대한 담대한 소회와 이웃과 작고 여린 것들을 향해 열어놓은 여러 개의 문이 있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미사여구들이 존재하며 흔해빠진 가르침이 존재한다. 시간을 지내놓고 보니 그런 것들은 한낮 스스로를 돋보이게 할 뿐 별로 도움이 될 일이 없었다. 그땐 그럴싸해 보였지만 세월이 지남에 따라 색 바랜 잡지장처럼 낡은 가치로 변했다.(중략)
세상의 그 어떤 선물보다 나를,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은 당신의 행복을 비는 일이다. 언제 어디에 있을지라도 변함없는 관심의 행방은 당신의 행복을 비는 일, 나 말고.. 옆지기 혹은 타인의 행복을 빌때 하늘이 감동한다.
   당신의 행복을 빌어요!

 (2023년 6월 10일 <행복해지고 싶을 때> 중에서)


우리가 힘든 삶에서 행복해질 방법은 '타인의 행복을 빌어주는 일'이라는 글귀가 작가님의 유언처럼 전해졌다. 나는 비로소 ‘사라진 뒤에 선명해지는 것'을 목도한 것 같았다.


죽음은 기록 안에 남겨진 작은 오타 하나 바꿀 수 없을 만큼 무력하지만, 자신의 온 우주를 동원해 보여 준 행위가 남긴 메시지는 오히려 더욱 선명해졌다.

세상일은 그 누구도 모르는 법!
산화와 환원 과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죽어야 살 수 있는 부활의 조건'과 매우 흡사했다. 철이든 비철이든 용광로 속에서 1차적으로 완전히 산화가 된 다음 환원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환원재는 알칼리성 물질로 환원재가 투입되면 전혀 다른 물질이 생기게 된다.(중략)
우리가 사는 동안 겪게 되는 산화와 환원과정 속에도 반드시 특별한 환원 물질이 필요하게 된다.

(2023년 6월 2일 <이탈리아 공화국 축제와 이상한 일>중에서)


그 특별한 환원 물질은 우연인지 필연일지 알 수 없는, 타인을 향한 마음의 움직임, 기도 같은 것이라고 작가님은 적었다. 브런치 스토리의 '내가 꿈꾸는 그곳'은 더 이상 업데이트 될 수 없는 피드가 됐지만, 끊임없이 구독자가 늘어나고 댓글이 멈추지 않는 곳이 되길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산화되고 환원되는 과정에 꼭 필요한
'특별한 환원재'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님의 부고 소식에 함께 기도해주시고 마음나눠주신 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혹시 뒤늦게 소식을 접하신 분들께도 위로의 말씀 전합니다. 작가님을 몰랐던 분들도 '내가 꿈꾸는 그곳' 작가님이 남겨두신 기록들을 만나보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https://brunch.co.kr/@yookeun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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