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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Jan 26. 2024

그게 나라고 말할 용기

<기사를 가져와 내 이야기로 글쓰기>

폭력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전쟁은 언제든 벌어졌고 어떤 곳도 전쟁터가 될 수 있었다. 가정이나 학교, 직장,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길거리를 걷던 중에도 우린 다양한 형태의 폭력에 노출됐다. 우리가 발 딛는 곳은 어디든 상관없었다.


애초에 누가 전쟁터에 버려지고 싶겠는가! 전쟁의 속성이 그렇듯 그것은 당하는 이에겐 덮치듯 왔고, 오히려 당한 이에게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교묘히 진화했다.


'이게 나다!'

그녀는 한 장의 사진을 들고 있다. 사진과 함께 실린 기사의 문장과 행간 사이로 나는 침묵이 내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침묵이 소리를 내다니. 그것은 소리에 그칠 뿐 아니라 나로 하여금 숨죽여 읽게 하더니 ‘이게 나다!' 그녀가 선언하는 순간, 알 수 없는 힘으로 내게 옮겨왔다.

<패션모델로 복귀한 르프랑이 산테러 생존자의 권리를 위한 화보를 찍은 모습>

그녀는 2009년 집배원을 가장해 찾아온 옛 연인으로부터 황산테러를 당했다. 패션모델이자 세 아이의 엄마였던 '르프랑'은 3개월간 의식불명 상태였고, 그녀는 자신의 몸이 마치 ‘아스피린처럼 녹아내렸다.’ 회고했다. 그 후 그녀는 100번의 수술을 거쳤지만 얼굴은 이미 알아볼 수 없게 무너져 내렸다.


우린 그녀를 덮친 폭력과 이후 그녀가 견딘 영겁 같은 시간조차 서너 줄로 간략히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선언하듯 말하는 것이다.


"패션은 한 철이지만 산 테러 생존자의 눈물은 평생 간다. 가해자는 몇 년 뒤 감옥에서 풀려나지만, 나는 평생 타버린 피부 속에 갇혀 지낸다. 처음엔 나를 살린 의사를 원망했지만, 이제 나는 살아있는 이유를 안다. 생존자들의 권리를 위해 맞서 싸우려 한다."


 나는 르프랑의 목소리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받은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얼굴엔 폭력이 남긴 흉터가 고스란히 남았지만, 그녀의 눈빛에서 나는 잔혹한 폭력이 그녀의 내면까지 무너트리지 못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어떤 상처도 입지 않은 사람처럼 단호한 결의에 차 있었다. 그때 그녀로부터 내게 넘어 온 힘을 나는 용기나 격려라고 느꼈다. 하지만 감동의 순간은 잠깐이었다.


르프랑의 결의에 찬 침묵을 깨고 폭력은 다른 모습으로 이어졌다. 그녀의 상처 입은 외모를 비하하는 댓글은 깃털처럼 가볍게 내려앉았고, 그들은 마치 세치 혀로 황산테러쯤은 몇 번이라도 더 할 수 있다는 듯 비아냥거렸다.


'나를 떠난다면 차라리 망가뜨리는 게 낫겠어!'

망상에 빠진 남성의 폭력에서 그녀의 불행이 시작된 것이라면 댓글 폭력은 그녀가 선택한 적 없는 불행의 결과와 그 책임까지 그녀에게 되묻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나는 그제야 화들짝 정신을 차린다. 된통 볼을 꼬집힌 채 현실로 이끌려온다. 아, 그런 세상이었지. 우린 이미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볼 수 없는 시대에 버려졌구나! 실망한 사이 나는 그녀의 손을 놓쳤고, 온갖 조롱하는 목소리에 떠밀려 다시 멀리서 표류했다. 이러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낳은 이로부터 '남자아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부정당하는 폭력을 겪었다. 여러 형태로 가해진 폭력 때문에 나는 줄곧 그녀를 가해자로 지목했었고, 그러고도 참을 수 없을 때는 그녀의 악행을 까발리는 글을 서럽게 쓰곤 했었다. 물론 이제 와서 그녀가 가해자가 아닐 수는 없지만, 그 안에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것이 얽혀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녀가 내게 가한 폭력의 배후에는 남성우월주의라는 다른 장르의 폭력이 있었다.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건 그 폭력이 아주 오랫동안 이유를 설명할 필요조차 없이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것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 일은 괴이하게도 폭력의 주체인 남성 (아버지)을 제외한 여자들의 전쟁으로 치닫으며 파국을 맞았다.


그는 아내와 다섯 명이나 되는 딸들의 아버지였지만 동시에 내 아버지였고, 나를 낳은 이를 절대 놓아주지 않았었다. 그렇다고 아내와 딸들을 놓고 떠나 올 생각도 없었다. 그가 남자의 권위를 내세우며 양쪽을 태연히 오가는 사이 그를 제외한 나머지 여자들의 터전은 전쟁터와 다름 아니었다.


결국 여자들은 모두가 피해자인 채 서로에게 가해자가 돼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운 꼴이었다. 그 바람에 가장 어린아이였던 나는 그저 무방비한 폭력에 노출된 일뿐 아니라 몇 번의 생사를 넘는 경험을 했지만,  끝내 살아남아 학대 '생존자'가 될 수 있었다.


'나를 나라고 말할 용기'

세상의 수많은 사건과 사고의 생존자는 살아난 존재가 되는 순간부터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았다.


비슷한 상처를 갖은 이들에게 '이게 접니다. 그래요, 그 일은 우리 잘못이 아니었지요! 보세요 내가 생존자예요.' 말하는 구조자의 의무 말이다. 하지만 끊기지 않고 끈질기게 이어지는 다른 형태의 폭력을 마주하면 '이제와 그런 말은 해서 뭐 하나!' 차라리 표류하기를 선택하고 마는 것이다.


무던히 견딘 과거는 낡은 시간, 아무런 가치도 없이 억울한 시간일 뿐인가? 스스로의 삶을 그저 억세게 운이 나쁜 인생, 그 이상 아무 의미도 없는 일로 인정하긴 쉽지 않다. 그 때문에 표류를 결정한 뒤의 삶은 어느 때보다 무력해진다.


나는 다시 그녀의 눈빛을 응시한다. 표정만으로 그녀의 의도를  간파할 수 없다 해도 눈빛만은 확신에 가득 찼다. 그녀는 말했다. '더는 집안에 머무르며 가해자에게 만족감을 주고 싶지 않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삶의 소용돌이를 빠져나온 이가 이게 바로 나라고 말하려 할 때, 용기가 필요하다면 그곳은 여전히 폭력이 끝나지 않은 곳, 전쟁터였다.




산문적인 인간 2의 소개글에 적은 대로 ‘테마가 있는 글쓰기로 연재합니다.’ 지난 1화가 작가를 오마주 하며 내 이야기 쓰기였다면, 이번 2화 '그게 나라고 말할 용기'는 '기사를 가져와 내 이야기 쓰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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