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초면입니다만
때가 됐던 것이다. 만날 사람은 만나고 마는, 그때 말이다.
제주도 내 책상에서 쓴 글이 정확히 누구에게 가 닿았는지 알 수는 없었다. 단지, 가상공간이란 좀 더 용기를 내도록 했으니, 마음 밑바닥에 가라앉은 것을 퍼올려 그곳으로 보낸 게 전부였다. 간혹, 메아리처럼 돌아오는 소리에 위로받고, 저 너머에 누군가 있다는 반가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그다음은 혼자 살아내는 것이었다.
지난주, 공교롭게도 사흘 간격으로 반가운 두 분의 방문을 받았다. 그냥, 별 계획 없이 제주도로 여행을 오게 됐다는 두 분의 브런치 작가님이셨다. 작가님들은 갑자기 연락을 해 시간을 뺏은 것 아니냐며 조심스러워했지만 사실, 무척 황송한 방문을 받은 건 나였다. 나야말로 기회가 되면 두 작가님 모두 꼭 만나고 싶던 분들이었는데, 그야말로 제주도에 사는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임시 공휴일에 이뤄진 깜짝 번개는 앞니맘 작가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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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흙의 기운을 닮은 작가님 글을 나는 좋아했고, 작가님이 가진 태생적 에너지를 무척 부러워했었다. 그런 작가님이
오신 것이다. 제주에 왔노라고, 차 한잔 할 수 있냐고 연락을 주신 것이다. 차 한잔으로 보내 드릴 수 없어서 연락을 받자마자, 알고 있는 맛집을 떠올리며 설렜다.
토요일에 제주에 왔다며 연락을 주신 분은 김봄 작가님이었다. https://brunch.co.kr/@bomkbom
주말 수업이 더 많은 현실에 바로 달려 나갈 수 없었음에도 작가님은 이곳저곳 여행하며 수업 끝나길 기다려주셨다.
김봄 작가님은 또 누군가. 일 년 전 브런치 시작 초기에 <육군 장교엄마와 공군 장교 딸>에 대한 브런치북을 읽고 단숨에 온 맘으로 존경한 작가님이었다. 작가님 역시 별 일정 없이 제주행 비행기를 탔노라며 시간 되면 차 한잔 하자고 연락을 주셨다. 나는 신이 나서 다시 맛집을 검색하고 우린 토요일 오후에 바닷가 근처 작은 식당에서 만났다.
두 분 작가님과는 단 한 번의 전화통화조차 나눈 적 없이 그야말로 생판 모르는 사이였다. 하지만 우린 단번에 서로를 알아봤고, 반가움에 덥석 손을 마주 잡을 수 있었다.
그것은 두 개의 거대한 세계가 나를 향해 걸어온 것처럼 감동적이었다. 마치 몇 권이나 되는 책을 통째로 선물 받은 것 같기도 했다. 우리는 오랜 지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가 삶의 고비를 무던히 건너온 딸이었으며, 자식을 키워 낸 여성이며 어머니란 사실은, 서로의 나이 따위 물을 필요도, 필명 외에 실명을 알아야 할 이유도 없을 만큼 고개를 끄덕일 많은 단서가 됐다. 우리가 눈을 맞추며 손을 잡을 때, 백 마디 말보다 더 강렬한 위로와 연대가 스쳐 지났다.
하하, 우리가 오늘 처음 본 사이라니!
연신 신기했고, 인간관계가 늘 이런 식이라면 관계에 얽힌 고뇌 따위도 필요 없을 것만 같았다.
바닷가를 끼고 바튼 길을 내려간 골목의 작은 식당 앞, 봄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았던 날씨, 식당 앞 유채꽃 밭, 사진 찍으려는 여행객의 설렘으로 일렁이던 그 길에서 반가운 이를 기다리며 바다처럼 출렁이던 내 마음, 우리가 함께 봤던 바다와 물총새라도 된 듯 낮게 날던 비행기, 함께 나눈 맛있는 음식까지 이제 모두 한데 어우러진 추억이 됐다.
무엇보다 대화 도중 한 번씩 목이 메고, 반대로 자주 웃던 순간은 초면이란 사실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처럼 우리를 가까이 당겨 앉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서로의 밑바닥에서 퍼올린 것을 글로 공유했다는 사실이었다.
다시금 손을 꼭 마주 잡은 뒤, 공항 검색대 안으로 들어가던 앞니맘 작가님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던 내 마음과 반대로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다음 행선지로 떠나시던 김봄 작가님과의 다정한 포옹이 따뜻한 온기로 남았다. 우리가 서로 나눈 따뜻함은 한동안 살아갈 에너지가 될 것이었다.
이곳 제주에서 거의 속세를 떠난 것 같은 맘으로 살고 있던 나는, 지난 한 주 동안 두 번의 만남과 두 번의 이별을 겪은 뒤 마음을 앓으며 주말을 보냈다.
다시 한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짧은 여행의 여정에 초대해 주신 마음에 감사를 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