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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조선미
Mar 14. 2022
아이가 뒤를 돌아보는 것
용기가 필요한 순간
오빠가 먼저 출발해 버렸다.
학교까지는 내 걸음으로 걸어서 30~40분은 가야 하는데, 아직 여덟 살이던 나는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아침부터 할 일이 많았던 엄마는 내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버스도 많이 없던 80년 대의 시골길...
찻길을 걸어가다가는 지각할 것이 뻔했고, 엄마는 지름길로 나를 데려갔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은 엄마가 나고 자란 집이었고, 내가 다니던 학교는 엄마가 졸업했던 학교였기에 엄마는 나보다 학교로 가는 지름길을 더 잘 알고 계셨다.
마른 들풀이 가득한 농로를 따라 걸으며 내 머릿속에는 온통 엄마와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엄마, 교실까지 데려다주면 안 돼?"
"선생님이 엄마를 보면 안 되잖아. 엄마 옷도 이렇고, 얼른 일하러 가야 하고. 엄마가 여기서 지켜볼 테니까 어서 들어가 봐."
엄마는 학교 후문에서 나를 운동장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나는 텅 빈 운동장을 가로질러 터덜터덜 걸었다. 자꾸만 눈물이 났다.
이미 지각이었기에 넓은 운동장에는 오직 나뿐, 내가 가야 할 곳은 정해져 있었지만 어린 내가 혼자 걸어야 했던 조용한 운동장을 걷는 일은 두렵고 힘든 시간이었다.
그때 내가 한 행동은....
뒤를 돌아보는 일이었다.
나 혼자 걷고 있다는 두려움에 눈물이 날 때마다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마다 엄마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용기를 내어 한 걸음 내딛고 운동장의 절반을 지난다. 그리고 다시 뒤를 돌아본다.
엄마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어서 들어가"라며 손등으로 허공의 공기를 밀어낸다. 그 공기의 힘으로 나는 또 몇 걸음 걸어 운동장의 끝에 다다른다.
이제 실내화 주머니에서 실내화를 꺼내 갈아 신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순간이다.
무거운 마음으로 실내화를 갈아 신고 뒤를 돌아보았다.
왈칵 눈물이 솟구친다.
엄마는 아직도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엄마가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그 넓고 쓸쓸한 운동장을 걸을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다.
월요일 아침, 세 아이와 함께 학교를 향해 걸었다.
반듯반듯한 보도블록이 깔려 있고, 부모님들이 초록색 조끼를 입고 노란 깃발로 교통지도를 해 주는 안전하고 활기찬 등굣길이다.
둘째가 4학년 교실이 있는 첫 번째 건물을 향해 교문으로 들어선다. 아직 첫째와 셋째의 교실이 있는 건물로 들어가야 할 교문은 더 멀리에 있다.
둘째가 교문을 통과해 들어가다 뒤를 돌아본다.
'아, 서후가 돌아보네.'
형과 동생은 엄마와 더 오랜 시간 함께 걸을 수 있지만 엄마와 빨리 헤어져야 하는 둘째의 쓸쓸한 마음이 느껴진다. 문득 이 아이가 건물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나 몇 걸음 걷다가 아이가 또 뒤를 돌아본다.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든다. 어릴 적 우리 엄마는 손등으로 허공을 저었지만 나는 손바닥을 펴고 두꺼운 팔뚝을 흔들며 힘차게 손을 흔든다.
'엄마가 여기 있어! 씩씩하게 들어가렴!'
그 후로 건물로 아이의 얼굴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나는 손을 흔들고, 아이는 그런 내 모습을 자꾸만 뒤돌아 보았다.
아이가 뒤를 돌아보지만 그 아이의 발걸음은 앞을 향해 가고 있다.
나는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었을 뿐인데, 두꺼운 팔뚝을 열심히 흔들었을 뿐인데, 아이는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아이가 힘을 얻고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것은 뒤를 돌아보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를 돌아봤을 때 "역시나" 하고 나를 향해 응원을 보내는 엄마를 발견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아이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엄마의 안정감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혼자서 겪어야 하는 공간이다. 때로는 그저 황량하게 넓기만 하고, 마른 모래 바람이 불며,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외롭고 힘든 시간을 견뎌야 하는 공간이다.
그런 공간으로 나아가야 하는 순간이 막막하고 힘겨울 때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용기를 낼 수만 있다면, 엄마가 늘 자신을 향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만 있다면 아이는 그 시간을 견뎌 자신이 가야 할 곳으로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엄마와 같은 존재는 친구, 연인, 배우자, 절대자 등 다양하게 변하는 것 같다. 그러나 머뭇거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용기, 누군가 나를 응원하고 있다는 확신이다.
오늘 나는 아이들을 통해 그 확신을 얻는다. 그냥 서 있기만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는
것, 내가 나로서 있을 뿐인데 세상의 어느 생명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확신.
이것이 내가 돌아보면 보이는 것이고, 오늘도 그 힘으로
나의 광야를 향해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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