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하다. 고개를 들면 곳곳에 보이는 것이 묘지인데 공포와 두려움보다 편안한 마음이 먼저 드는 곳이라니. 묘지에 잠든 사람들의 마음을 닮아서인지 이 땅을 밟을 때면 청소기 먼지통 같던 마음이 싹 비워지는 기분이다.
마음이 가벼워지니 소음을 담고 살던 귀가 맑은 소리를 담아낸다. 의식적으로 말을 줄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더 많은 소리를 듣게 되는 것 같다. 새소리, 물 흐르는 소리,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들이 들리면 그쪽으로 눈이 따라간다. 하늘도 올려다봤다가 길 옆에 흐르는 물가도 한 번 보게 되고, 다른 사람들은 누구와 이곳에 왔을까 앞서 걷는 사람들의 신발 수를 세기도 한다.
나는 혼자였지만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발이 이끌어가는 대로 걷느라 외롭진 않았다.스물여섯 꽃다운 청춘을 하늘에 바친 한국 천주교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잠들어 있는 미리내성지에서 홀로 평온했다.
비 중에서 봄에 내리는 비는 이렇게 짓궂게 내리더라도 환영받는 존재인 것 같다. 한여름 가뭄 속에 내리는 세찬 소나기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봄에 내리는 비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귀한 손님이다. 농부는 한 해의 농사를 기대하고, 도시인들은 극심한 황사나 미세먼지를 씻어주기를 기대하고, 나와 우리 아이들은 이 봄비가 어서 꽃을 피워주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눈을 들면 보이는 검은 산 위에는 흰 눈이 내리는 것처럼 하얀 빗발이 무섭게 솟구쳐 내린다.
든든한 산에 의지하지 못하고 길가에 선 나무들은 음악에 심취한 지휘자처럼 가지들을 이리저리 흔들며 리듬을 탄다. 이제 막 연둣빛 싹을 틔운 나뭇가지들과 바닥에서 올라오는 작고 약한 들꽃들에게는 부슬부슬 조용하고 얌전한 비가 내려주면 좋을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요란하고 무서운 바람과 함께 찾아왔을까.
봄을 기다리던 7년 전, 두 아들을어린이집에 보내고 남편과 함께 셋째를 만나러 병원으로 향했다. 맑고 화창한 날이었다. 앞으로 우리 집에는 행복만이 가득 찰 것만 같아 딸과의 만남이 더욱 설레던 날이었다. 그때 우리 가족이 만났던 세찬 비바람은 지금도 봄꽃이 필 무렵이 되면 바람에 몸을 눕혔다 다시 일어나는 불길처럼 되살아난다.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는 곧 구급차에 실려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실밥을 풀고 처음 면회를 갔던 날, 규칙적인 기계음과 아이를 둘러싼 복잡한 장치들은 엄마가 없는 공간에서 이 작은 아이가 겪었을 공포와 두려움을 헤아리기에 충분했다.
의사가 읊어주는 진단명들이 나오기까지 수없이 주삿바늘에 찔리고, 이런저런 검사들을 혼자서 감당해야 했을 이 작은 생명은 작고 하얀 모자를 쓰고 튜브에 의지해 숨을 쉬고 있었다. 생명을 살리는 공간에서 처음 본 이 낯선 모습은 아이를 만났다는 반가움보다 공포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아이와 함께 신생아중환자실을 나가는 것이 30대 중반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었고, 그 시점은 중환자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목련이 필 때까지로 정했다. 그러나 그해 꽃은 쉽게 피지 않았다. 아마도 오늘 내가 본 그 세찬 빗줄기를 몇 번이고 견딘 후에야 피어났던 것 같다.
건방지고 무례했다. 신도 의사도 아닌 내가 뭐라고, 한 생명을 그때까지 살리네 마네 했을까. 난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차가운 플라스틱 상자에서 이 작은 아이가 외롭지 않도록 매일 면회를 가서 목소리를 들려주는 일이 전부였다.
아이는 혼자서 수술을 견디고, 수많은 검사를 견디고, 아파서 울어도 안아줄 사람이 없는 외로운 시간을 견뎌냈다. 그 사이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미세먼지가 자욱하고,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수술 결과가 좋아 아이는 산소호흡기가 없이도 숨을 쉴 수 있게 되자 2.3kg의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이미 두 번이나 신생아를 키운 엄마였지만 이번엔 부담스럽고 두려웠다. 수술 부위 때문에 제대로 씻길 수도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퇴원하고 며칠 후 수술부위가 덧나기까지.
응급실도 찾아갔었지만 수술하신 교수님의 외래 진료를 본 후에야 재수술을 막기 위한 약 처방이 내려졌다. 진료 후 집에 가려고 택시를 타러 내려오다가 갑자기 머리가 쨍 하더니 끝없이 솟구쳐 오르는 뜨거움을 느꼈다.
행복함이었고, 감사함이었다. 중환자실 옆 창문으로 보이던 그 목련이 어느새 활짝 피어 있었던 것이다. 아이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이겨내고 밖으로 나와 거센 봄비가 피워준 목련을 볼 수 있었다.
우산을 접고 지붕이 있는 건물로 들어가 차창 너머로 비를 바라본다. 비를 맞으며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무들은 곧 연둣빛 잎들을 틔워 살아있는 생명으로서의 존재감을 나타낼 것이다. 앞으로 더 세찬 바람이 불어오더라도 견딜 수 있을지 자신을 시험하기도 하고, 그동안 간지러웠던 곳곳을 긁기도 하며 겨울보다 따뜻한 봄비의 기운으로 말초까지 쭉쭉 생명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삶은 봄비와 같았다. 살살 다뤄주길 바랐지만 '어디까지 견디나 보자' 싶을 정도로 매섭게 때렸다. 좀 따뜻하고 편안한 날이 오려나 싶으면 '아직 때가 아니야'라며 태풍 같은 바람을 몰고 오기도 했다. 무언가 시작하며 기대감이 쭉쭉 상승하고 있을 때에도 바닥의 흙을 더 단단하게 잡지 않으면 뽑혀나갈 거라며 기본을 알려주었다. 지금 이 시기가 맞는지, 지금 내가 잎을 틔워도 되는지 분간이 안 되는 시기에 차갑고 아픈 빗줄기들은 더 튼튼하고 예쁜 꽃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주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나에겐 지금까지 만났던 횟수보다 더 많은 봄비를 만나야 할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알고 있다. 이 비는 내게 좋은 거라는 걸...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소중하고 고마운, 내가 견딜 만큼 필요한 생명수였다는 걸 알기에 저 멀리 보이는 검은 산 위에 내리는 새하얀 비는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