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할 수 없는 놈에게

김개미의 『레고나라의 여왕』을 읽고(2022.05.24.)

by sempe

큰 일이다.

얼마 전 나의 하나뿐인 동생 김동생씨가 아주 어마어마한 대형 사고를 친 바 있다. 이렇게 글을 써놓고 그의 프라이버시를 운운하는 것은 굉장히 앞, 뒤가 안 맞는 일일 테지만, 그래도 그의 프라이버시를 위하여 어떠한 대형사고 인지는 밝히지 않겠다. 그가 근 7년간 가족에게 숨겼던 그 ‘대형 사고’는 정말 우연히도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빠가 내게 전화해 헛웃음을 치며 던진 “넌 알고 있었니?”라는 물음으로 내게 다가왔고, 나는 7년이 지난 뒤라 화도 안 나는 황당한 마음을 “나는 내 아들이 아니라 웃기기만 한데, 엄마는 엄마 아들이라 참 속상하겠다.”라는 어줍잖은 위로의 말 속에 담아 엄마에게 전했다가 한 소리 듣고야 말았다. 그래서일까. 김개미의 『레고 나라의 여왕』을 읽으며 눈에 들어오는 동시들은 많았지만, 글을 쓰는 지금 내 마음에 콕 박혀있는 것은 동생에 관한 동시들이다. 이러면 안 되겠다 생각하며 2주 내내 찾아본 김개미의 다른 동시집들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동생에 관한 동시들뿐이니, 이것 참 큰 일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것은 큰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김개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 마치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 이 된다

김제곤, 「상상이 지닌 힘과 아름다움」, 『창비어린이』, 2019, 199쪽.

는 김제곤의 말처럼,


김개미 시인의 동시에 있는 김개미만의 아이(시적 주체)
송선미(2018), 「다섯 명의 아이와 유리병 편지」, 『레고 나라의 여왕』, 창비, 98쪽.

가 내 어린 시절을 소환해낸 것이 아닐까?

그러니 이것은 김개미의 동시를 읽는 내내 나와 내 어린 시절 속 동생을 들여다봤을 시간의 필연적 결과일지도 모를 일이겠다. 그리하여 나는

‘한 아이가 겪는 가족의 해체와 그에 따른 내면의 상처 그리고 회복의 과정’으로 읽히며, ‘각각의 동시들이 전체로 꿰어지듯 구조화되어 한 편의 이야기가 되는 동시집’

김재복, 「동시, 주기와 말하기 사이에서」, 『창비어린이』, 2019, 167쪽.

이라는 해석도,

‘동시집 속 화자가 상상에 기초하여 고단한 현실(=가정의 문제)을 ‘놀이 세계’로 바꾸고 그 안에서 내면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해 내고자 한다.’
김제곤, 위의 책, 198쪽.

는 해석도 뒤로한 채, 김개미의 동시 속에서 가만히 들여다보게 된 나의 동생 김동생씨에 관한 글을 쓰고자 한다.



1. 귀찮은 놈


자고로 동생이란 어떤 존재인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김동생은 내게 항상 귀찮은 존재였다. 한창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에는 계속 내 말을 계속해서 끊임없이 따라 했으며, 초등학생 때 밖에 나가서 친구와 놀려고 할 때면, 기를 쓰고 같이 놀겠다며 함께 따라오곤 했다. 친구와 놀 때 따라오는 동생은 정말이지 귀찮고도, 귀찮으며, 귀찮은 존재이다.



동생과 놀아주기


엄마가 너랑 놀아 주라고 하니까

이제부터 이 천사 같은 언니가

너랑 놀아 줄 테다!


자, 나는 세 살짜리 아기야.

어서 나를 이불 속에 눕히고

우유병을 줘.

너는 엄마니까 내가 잠들어도

깨우지 말고 집안일을 하도록 해.


자, 지금은 관절염 걸린 할머니야.

어서 빨리 내 다리를 주무르고

등을 두드려.

아파서 꼼짝도 못 하니

물도 떠다 주고 밥도 먹여 줘.


자, 이번엔 손님이야.

친절하게 인사를 하고

차를 내와.

제일 좋은 자리에 나를 앉혀서

마음껏 텔레비전을 보게 해.


자, 다음에는 아빠야.

내 방은 회사고.

그러니까 내가 방에 가서 안 나와도

나한테 오면 안 돼.

회사는 아이들이 오는 데가 아니야.


자,자,자,자…….

또 뭘 할까?

그래, 엄마가 좋겠다.

내가 엄마니까 저 곰돌이가 나야.


그러니까 이젠 저 곰돌이랑 놀아!


김개미(2019[2018]),『레고나라의 여왕』, 창비, 80-82쪽.


동생 떼어 내기


숲에 가고 싶다고?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백과사전에도 없는 벌레들이

독을 뿜으며 반길 텐데

괜찮겠어?


수풀을 찢으며

육식 공룡들이 모가지를 내밀고

시조새가 따라올 텐데

괜찮겠어?


보아 구렁이가 뚝뚝 떨어지고

거대한 시체꽃이 네 이름을 불러

게다가 늪 천지야

물론 늪의 주인 악어는

먹잇감을 한 번도 살려 보낸 적이 없어


이건 정말 말 안 하려 했는데

거긴 발만 들여놓으면

지구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블랙홀도 있어


사랑하는 동생아

형이 가서 안전한 길을 찾아보고 올 테니

너는 집에서 기다리는 게 어떻겠니?


김개미(2016), 『커다란 빵 생각』, 문학동네, 56-57쪽.


김개미의 동시 속 누나도, 형도 과거의 나와 비슷한 상황을 처해 있는 것 같다. 차이점이 있다면, 나는 ‘싫어, 안돼, 안 들린다~(귀를 막았다 떼었다 하며)아아아아아아’와 같은 유치한 말싸움과 냅다 달리기로 동생을 떼어내기 위해 애를 썼다면, 두 작품 속 누나와 형은 ‘뛰어난 언어 구사력을 활용한 역할놀이’와 ‘엄청난 상상력을 발휘하여 동생의 보호를 가장한 겁주기’로 동생을 떼어내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단 점이다. 나도 저런 방법을 썼다면 좋았을까? 잠깐 고민해보니 내 동생은 ‘곰돌이랑 놀아!’라고 이야기하면 엄마한테 일렀을 것 같고, ‘독을 뿜는 벌레들’과 ‘공룡’, ‘악어’를 보러 가겠다고 기어코 따라왔을 것 같다.



2. 얄미운 놈



동생 밥 먹이기


동생이 아, 할 때

나도 아, 한다.

내가 더 많이 아, 한다.


김개미(2017), 『쉬는 시간에 똥 싸기 싫어』, 토토북, 42-43쪽.


씻기 싫은 날


가끔은

정말 진짜 죽도록

씻기 싫다


그런 날

팔을 통나무 같고

다리는 돌덩이 같고

눈알은 쇠구슬 같다


그런데 그런 그런 날

동생은 간신 같아서

내 동태 하나하나를

엄마에게 일러바친다


그리고 또 그런 날

엄마는 화난 상태로 퇴근을 해서

당장 소리 지를 준비가 돼 있다


그리고 또 그런 날

아빠는 잠잘 때까지 쌩쌩해서

눈에 힘을 팍 주고

끝까지 나를 지켜본다


내가 하루 안 씻는다고

전염병이 도는 것도 아닌데……

얼굴이 썩어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런 날은

씻기 시작하면 멈추기도 싫다

수돗물을 틀어 놓고 대충대충

힘없는 손으로 하염없이 씻는다


김개미(2019), 『오줌이 온다』, 토토북, 18-19쪽.


첫째의 입장에서, 동생의 출생은 생애 첫 번째로 맞이하는 위기이며, 동생의 출생으로 인해 가정의 유일한 아이로서의 존재가 흔들리고 부모와의 관계도 변화하게 된다.

박경자, 박미현, 정영선, 「첫째아의 사회·정서적 문제행동에 동생의 출생이 미치는 영향」, 『생애학회지』, 2017, 2쪽.

는 연구 결과를 보고 있노라면, 첫째들은 동생이 생기면 ‘남편이 바람 피던 애인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함께 살자.’라고 하는 것과 같은 충격을 받는다는 소리가 마냥 우스갯소리만은 아닌 것 같다.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즐겁게 살던 첫째는 동생이 생기는 순간, 부모의 관심을 끌기 위해 ‘동생보다 더 많이 아(「동생 밥 먹이기」, 『쉬는 시간에 똥 싸기 싫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또 ‘언니/오빠/누나/형’과 같은 새로운 역할과 끝없는 인내를 요구하는 일들이 생기게 되는데, 엄마가 아플 땐 씻기고 재우며(「난 주인공이 아니야」) 엄마 아빠 없을 땐 그의 보호자가 되어 동생을 아주 잘 돌봐야 하고, 아끼던 내 물건은 동생이 더럽힐까봐(「이럴 수가」, 『커다란 빵 생각』) 잘 숨겨두어야 한다. 앞서 보았듯 아무리 귀찮아도 동생과 놀아주어야 하기도 한다(「동생과 놀아주기」). 이렇게 수많은 역할과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나의 동생은 ‘내 동태 하나하나를 엄마에게 일러바치는’(「씻기 싫은 날」, 『오줌이 온다』) 간신이 되어 내 은혜에 보답하니, 정말이지 극악무도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3. 그래도 미워할 수 없는 놈


이토록 어린 시절 나를 귀찮게 하던 얄미운 놈은 다 커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이 없어 나를 궁금하게 하니, 이것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가끔 용돈 떨어지면 “누↘나~↗”하며 전화가 오거나, ‘태블릿이 있으면 공부에 너무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누나 남는 태블릿 있어?’하고 문자가 오면 하루, 이틀 동안은 세상 얄미워서 속에서 불이 나다가도, 3일쯤 되는 날 슬그머니 송금을 하고, 살금 살금 태블릿을 주문해주고 있는 나를 보자면 이건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맞다.



미워할 수 없는 놈


동생이 다리가 부러져

수술을 했지요

엉덩이에 매일매일

주사를 맞지요


간호사가 오면

나보고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지요


한참 있다 와 보면

눈이 빨간 동생이

코를 풀고 있지요


조금 더 있으면

“주사 자국 좀 봐 줘, 형.”

하면서

또 엉덩이를 까겠지요


김개미(2016), 『커다란 빵 생각』, 토토북, 48-49쪽.


이불 속에서 불을 켜고


이불 속에 들어가 불을 켜면

동생이 갑자기 관심을 보인다


불을 켜고 꼼짝하지 않으면

동생이 이불을 조금 걷고

내가 뭐 하나 본다


나는 별것도 안 하면서

동생을 못 들어오게 한다


그러면 동생은 이불을 꼭 쥐고

눈물을 글썽거린다


그러면 나는 못 이기는 척

들어오라고 한다


동생이 입을 딱 벌리고 내 옆에 누우면

별 수 없다


거짓말이라도 하나 해 준다


김개미(2019), 『오줌이 온다』, 토토북, 14-15쪽.


동생 그림


너를 괴롭힐 때도 많은데

나를 그려 줘서 고마워.

이렇게 더운 날

내 손에 커다란 아이스크림을 그려 줘서 고마워!


김개미(2019[2018]),『레고나라의 여왕』, 창비, 40쪽.


그렇다면 나는 이 귀찮고도 얄미운 놈을 왜 미워할 수 없는 것일까? 내가 욕하는 건 괜찮은데, 왜 남이 욕하는 꼴은 못 보고 펄펄 뛰게 되는 걸까? 학습된 누나로서의 책임감일까? 같은 환경과 같은 가정에서 자라나는 그에게서 나의 과거를 본 까닭일까? 다 맞는 말일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건 그가 내 손에 그려준 커다란 아이스크림(「동생 그림」)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한없이 밀어내고 싶은 밉상이지만, 내가 하는 일은 모두 관심을 가지며 따라하고 싶어하고(「이불 속에서 불을 켜고」), 짜증을 부리다가도 나에게 의지하고,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는(「미워할 수 없는 놈」) 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 말 그대로 미워할 수 없는 놈이기 때문이다.


잠자리 날개를 뜯는 6살배기의 행동에 경악하면서도, 함께 잠자리 잡는 것이 즐거웠으며(「가을 하늘」), 졸라맨에 푹 빠져 졸라맨 만화만 그리던 시절도 있었던(「졸라맨」) 놈. 야인시대를 보고나면, 둘이 함께 방에서 엄마, 아빠의 가죽장갑을 끼고는 뱅글 뱅글 돌면서 ‘바람처럼 스쳐가는~’ ost를 부르며 김두한을 따라하곤 했던. 엄마, 아빠 없을 때, 딱 한 그릇 시켜서 나눠먹던 짜장면은 왜 그리도 맛있었는지. 엄마가 미운 날 레고 침대에서 잠이 들어도 꿈 속에선 살짝 만나고 싶은 놈(「레고 나라」). 엄마가 잔소리 할 때면 엄마의 행동을 꼭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다(「따지는 거 아니야」)는 궁시렁을 함께할 수 있고, 분명히 말하지만 이건 아빠만 손해라고(「우리의 안부」) 아빠를 놀려대면서(?) 면박을 줄 수 있는 놈(참고로, 우리 아빠는 집을 나갔던 적이 없다. 다만, 「우리의 안부」를 재미있게 봤을 뿐이다.). 내 결혼식 때 가방순이말고 가방돌이를 자처하여 그 떨리던 날 내게 든든한 손발이 되어주던 놈. 엄마, 아빠에 관해 의논할 일이 생기면 그닥 도움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가장 먼저 전화하게 되는 놈. 알바해서 번 돈을 매형이랑 맛있는 것 사 먹으라며 봉투에 담아주는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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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나의 하나뿐인 동생, 김동생씨에게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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