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의 '그러나'

내 오랜 친구를 보내며 (2022.12.08.)

by sempe

내가 그 책을 처음 만난 건 중학교 2학년 학교 도서관이었다. ‘팔백삼십삼 점…….’을 되내이며 정리하던 책이 들어갈 위치를 찾던 내 눈에 그 책이 들어왔다. 홀린 듯 그 책을 읽은 나의 감상은 어땠더라.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책이 정말 마음에 들었었던 것은 확실하다. 종종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그 책을 권하곤 했으니 말이다.

잊고 있던 그 책을 다시 만난 건 대학교 3학년 ‘미술교육의 이해’ 시간이었다. 동기 언니가 소개해주고 싶다며 그림책 몇 권을 가져왔는데, 거기에 그 책이 있었다. 책 표지 속 빨간 얼굴을 한 아이와 눈이 마주치고 들었던 생각은 ‘부끄럽다.’였다. 과외에, 멘토링에, 과제에 허덕인단 이유로 책을 잊은 내 자신이 갑자기 너무 부끄러워졌다. 다음 달 과외비가 들어오자마자 나는 그 책을 샀다. 그건 내가 번 돈으로 처음 산 그림책이었다. 그리고 그 해 나는 100권의 책을 읽었다.

이후로도 그 책과 나는 수많은 순간들을 함께 했다.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선물했던 책도 그 책이었다. 좋아하던 연예인에게도, 연애하던 시절의 남편에게도 가장 먼저 선물한 책이었다. 그 책을 선물할 때면 꼭 이런 편지를 쓰곤 했었다. “읽을 때마다 제게 소소한 행복을 주는 책입니다. 읽고 나면 행복해져요. 제가 느낀 행복을 선물하고 싶어 이 책을 보냅니다.”

작가의 신작은 나오는 족족 구매하였으며, 초판본을 찾아 헌책방을 들락 날락 거리기도 했다. 패키지로 간 첫 해외여행에서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들었던 생각은 ‘아, 나는 지금 상페와 같은 나라에서 숨 쉬고 있구나!’였다.

오랜만에 펼친 책은 여전히 다정하면서도 유쾌했다. 그랬기에 올해 8월이었다는 작가의 작고 소식은 이 책에 담긴 나의 긴 기억과 추억을 더듬기에 충분했다. 책과 사람 사이에도 사랑이란 개념이 존재한다면, 나의 첫사랑은 단연 이 책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궁금해졌다. 나는 이 책 속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1. 왜 나는 얼굴이 빨개지는 걸까?


꼬마 마르슬랭 까이유는 다른 많은 아이들처럼 아주 행복한 아이로 지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르슬랭은 얼굴이 빨개지는 이상한 병에 걸려 있었다. 얼굴이 빨개지는게 무엇이 대수인가 싶겠지만, 마르슬랭에게 있어서 문제는 얼굴이 아무 이유 없이 빨개진다는 것이었다. 반대로 얼굴이 빨개져야 할 순간(대부분의 사람들이 얼굴이 빨개지는 순간)에는 빨개지지 않았고. 책은 마르슬랭의 병이 그의 삶에 미친 영향에 대해 장장 29쪽에 걸쳐 소개하고 있다.



< 얼굴이 빨개지는 병이 마르슬랭의 삶에 미친 영향을 나타낸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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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이 빨개지고 있는 것 같아…”
“정말 빨갛네…!”
마르슬랭의 얼굴은 그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주로 빨개졌다.(10쪽)
“넌 부끄럽지도 않니?”
“부끄러워요, 하지만 얼굴이 빨개지지 않는 걸요.”
반대로 당연히 얼굴이 빨개져야 할 순간에는 빨개지지 않았고…….(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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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얼굴이 아주 빨개, 마르슬랭!”
“나?”
마르슬랭은 결굴 계속 빨개지는 얼굴로 다녀야 했다.(16쪽)
“마르슬랭! 빵점에 또 빵점! 너는 남의 것을 베꼈기 때문이야!”
물론, 정말 얼굴이 빨개져야 할 때를 빼놓고는…….(…)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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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마르슬랭은 외톨이가 되어 갔다. 그리고(…)그의 꼬마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게 되었다.
“저 꼬마 아이 얼굴이 얼마나 빨간지 보셨어요?”
“저 아이는 병에 걸린 게 틀림없어요.”
“야, 정말 빨갛다!”
“어쩌면 그렇게 빨갛니, 마르슬랭!”
“빨개!”
“얼굴이 너무 빨개!”
“내가 빨갛다고? 잠꼬대 같은 소리!”(18쪽)
왜냐하면, 아이들이 자기의 얼굴 색깔에 대해 한마디씩 하는 것이 마르슬랭은 점점 견디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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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슬랭은 바닷가에서 보내는 여름 바캉스 철을 항상 그리워했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 얼굴이 모두 함께 빨개졌고, 사람들은 빨개진 얼굴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또 모든 사람들이 추위로 얼굴이 새파래지는 한겨울에, 혼자 계절에 맞지 않는 이상한 얼굴색을 하고 다니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기도 하다.(2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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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르슬랭은 ‘그렇게까지’ 불행하지는 않았다. 단지 자신이 어떻게, 언제, 그리고 왜 얼굴이 빨개지는지를 궁금하게 여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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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궁금증은 아주 오랫동안 그를 잠 못 들게 하곤 했다.(26-29쪽)


해당 장면들을 통해 마르슬랭이 가진 병의 특징을 요약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첫째. 마르슬랭의 얼굴은 그가 예상치 못 한 순간에 빨개진다.(10쪽)

둘째. 반대로 얼굴이 빨개져야 하는 순간에는 빨개지지 않는다.(11쪽, 17쪽)

셋째. 둘째 상황은 마르슬랭을 자주 난처하게 만든다.(11쪽, 17쪽)

넷째. 주변 사람들은 마르슬랭의 얼굴 색깔에 대해 한 마디씩 한다.(16쪽, 19쪽)

다섯째. 넷째의 상황을 견디다 못해 마르슬랭은 점점 외톨이가 되어간다.(18쪽, 20쪽)

여섯째. 마르슬랭은 다른 사람들같이 평범해 보이고 싶어 한다.(22쪽-25쪽)

일곱째. 위와 같은 이유로 마르슬랭은 불행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27쪽)

한 마디로 마르슬랭 까이유는 꽤 복잡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던(12쪽) 것이다.


마르슬랭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얼굴이 빨개지는 병’이다(10쪽). 하지만 그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그의 병이 아닌, 그의 병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마르슬랭을 보며 저마다의 의아함과 비난(11쪽), 추측과 가르침(16쪽, 18쪽-19쪽)을 담아 한 마디 씩 하기 시작한다. 이에 마르슬랭은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이야기해보기도 하고(11쪽), 당황하기도 한다(16쪽). 침묵도 해보고(17쪽),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방어도 해보지만(18쪽-19쪽)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자기의 얼굴 색깔에 대해 한마디씩 하는 것이 마르슬랭은 점점 견디기 힘들어져(19쪽)’간다.

결국 마르슬랭이 택한 방법은 ‘멀어지기’이다. 자신은 ‘혼자 놀아도 재미있다(20쪽)’고 혼잣말을 하며 점점 외톨이가 되어간다. 하지만 그는 항상 여름 바캉스철을 그리워한다. ‘사람들 얼굴이 모두 함께 빨개졌고, 사람들은 빨개진 얼굴에 만족(22-23쪽)’하였으며, ‘겨울철에 혼자 계절에 맞지 않는 이상한 얼굴색을 하고 다니는 것이 싫었기 때문(24-25쪽)’이다. 그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에게서 멀어졌지만, 그럼에도 사람들과 함께하고(같아지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마르슬랭은 아주 오랫동안 잠들지 못 하며 ‘ 나는 얼굴이 빨개질까?(13쪽, 28쪽)’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게 된다.



2. 너한테는 말해줄게


그러던 어느 날, 마르슬랭은 여느 때처럼 얼굴이 빨개진 채로 집으로 돌아오다가 재채기 소리를 듣게 된다. 그것은 르네 라토의 재채기 소리였다. 르네 라토에게는 희한한 병이 있었는데, 바로 감기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끊임없이 재채기를 하는 것이었다.


<재채기를 하는 병이 르네의 삶에 미친 영향을 나타낸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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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르네 라토는 아주 매력적인 아이였고, 우아한 바이올린 연주자였으며, 훌륭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르네는 갓난아이 때부터 아주 희한한 병에 시달리고 있었다,(36쪽)
그것은 전혀 감기 기운이 없는데도 자꾸만 재채기를 하는 병이었다.(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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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는 마르슬랭에게 말했다. 이 귀찮은 재채기가 자기의 인생을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어느 날 저녁엔가 브루시니 쉬르 오르즈 마을의 뵈바르쉬 부인 집에서 열린 매우 수준 높은 음악회에서, 꽤 유명한 사람들과 함께 연주를 할 때도 그는 재채기를 했다) 이 일이 한때 사람들 사이에 얘깃거리가 된 적도 있었다고.(38쪽)
그 후. 르네 라토는 혼자 강가를 산책할 때에만 겨우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잔잔히 흐르는 강물과 새들의 지저귐만이 그의 깊은 고통을 위로해주곤 했다.(39쪽)


르네는 자신이 앓고 있는 희귀병(감기 기운이 없는데도 자꾸만 재채기를 하는 병)이 그의 인생을 귀찮게(37-38쪽) 만들고 있다고 설명해준다. 또한 르네 역시 마르슬랭과 마찬가지로 그의 병으로 인해 사람들 사이의 얘깃거리가 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르네의 병과 상황은 마르슬랭에 비해 짧게 소개되고 있지만, 마르슬랭처럼 ‘혼자 강가를 산책할 때에만 위안을 얻을 수(39쪽)’ 있었다는 르네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르네가 마르슬랭과 같은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단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의 힘으로도, 마법의 힘이나 의학의 힘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희귀병을 가진(14-15쪽, 40-41쪽) 두 소년은 이렇게 만나게 된다.


마르슬랭과 이야기하던 르네는 마르슬랭의 얼굴이 빨개진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르네는 마르슬랭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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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모르겠지만, 재채기를 하는 건 아주 귀찮은 일이야! 어, 근데 넌 왜 그렇게 얼굴이 빨개지니?”
“내 얼굴이 빨갛다고? 너한테는 설명해줄게.”(42쪽)


마르슬랭이 왜 ‘르네에게는’ 자신의 얼굴이 빨간 이유를 설명해주었을까? 희귀병을 앓고 있고, 사람들의 말에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는 르네라면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단지 사람이 너무 그리웠던 날 우연히 르네를 만나게 되어 자기도 모르게 툭 하고 내뱉은 것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둘이 꼭 만나야만 하는 운명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정확한 이유는 마르슬랭만이 알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서로 만났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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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함께 신나는 나날을 보냈다.(5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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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전혀 놀지 않고도, 전혀 말하지 않고도 같이 있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함께 있으면 전혀 지루한 줄 몰랐기 때문이다.(59쪽)
계단에 앉아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던 두 소년은(43쪽) 어디에 도착하든 서로를 찾고(48-49쪽), 함께 신나는 나날을 보내며(52-53쪽), 전혀 놀지 않고도, 전혀 말하지 않고도 같이 있을 수 있는(59쪽) 정말로 좋은 친구가 된다(58쪽).



3. 어쩌면 삶이란 ‘그러나’와 ‘그리고’가 반복되는 문장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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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이 글자는 좀 더 까만색이다. 왜냐하면 이어질 이야기들이 조금은 슬픈 것이기 때문이다.) (65쪽)


좋은 친구로 서로에게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된 마르슬랭과 르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독자 앞에 난데없이 ‘그러나’라는 글자가 등장한다. 서술자는 당황한 우리에게 친절하게도 앞으로 슬픈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는 부연설명까지 덧붙여주고 있다. 그렇다. 마르슬랭이 일주일동안 할아버지 댁에 다녀온 사이(66쪽) 르네는 이사를 가게 된다것이다(70-71쪽). 정신이 나간 것처럼 엉엉 울며 집에 간 마르슬랭(72-73쪽)에게 엄마는 르네가 편지와 주소를 남기고 갔다고 이야기해준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마르슬랭에게 편지를 찾아줄 시간이 없이 바쁘다.(74-75쪽)

스스로 외톨이를 자처하던 마르슬랭의 유일한 친구 르네가 떠나갔다. 더군다나 바쁜 엄마, 아빠 때문에 르네가 남기고 간 편지와 주소는 찾을 수도 없다. 마르슬랭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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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로제 리보두도 빼놓을 수 없는데, 붉은 머리에 안경을 끼고, 항상 주의가 산만한 아이였다.(80-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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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슬랭은 리보두를 아주 좋아했는데, 이 아이는 너무 주의가 산만하여 항상 그를 웃겼기 때문이었다.(82-83쪽)


시간은 흘러가고, 놀랍게도 마르슬랭은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된다.(76쪽) 손가락으로 휘파람을 불 줄 아는 파트리스 르콕, 조립에 일가견이 있는 쌍둥이 필리파르 형제, 끊임없이 말다툼을 하는 폴 발라프루아와 여동생 카트린, 운동을 좋아하고 몸집이 크면서도 마르슬랭을 싸움 방패막으로 써먹는 로베르와 프레데릭 라조니 형제, 뭐든지 잘 하는 롤랑 브라코, 항상 주의가 산만하여 마르슬랭의 이야기를 단 하나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 하는 로제 리보두.

마르슬랭은 누구 하나 평범한 이 없는 이 친구들과 웃으며 행복하게 지낸다.

Graphic Novel 잡지는 이러한 마르슬랭의 놀라운 변화를 ‘콤플렉스의 극복’이란 관점으로 해석하며 작품이 가지는 보편적 삶의 적용 가능성을 밝히고 있다.

‘마르슬랭은 자신과 거울처럼 닮은 르네 라토를 만나 자신의 콤플렉스를 비로소 이해받는다. 르네와의 만남은 작은 우주의 탄생이었으며, 둘은 서로의 절대적 이해자이자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결정적으로 상뻬는 르네와의 이별을 통해 마르슬랭에게 이 만남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알려준다. 마르슬랭이 방학 동안 할아버지 댁에 머문 사이 르네가 이사를 가게 된 사건으로 부각되는 것은 르네의 빈자리가 아니라, 르네로 인한 마르슬랭의 변화다. 르네는 떠났지만 마르슬랭은 더 이상 외톨이가 아니다. 르네를 만나기 이전과 달리 마르슬랭에게는 학교 친구가 생겼고, 그럼에도 마르슬랭은 르네를 잊지 않고 언제나 그와 만날 준비를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어른이 된 마르슬랭과 르네의 이야기다. 마르슬랭은 그저 ‘얼굴이 가끔 빨개질 뿐’인 어른이 되어 바쁜 도시에 섞여들고,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르네와 재회한다. 어린 시절 대다수 만남이 시간이 지나면서 퇴색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들의 재회는 기적의 연장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그들이 다시 만나 어린 시절의 우정을 지속하는 것, 서로를 이해함으로써 나아가 자신과 같은 콤플렉스를 가진 아이들에게 관대해질 수 있는 것은 우정에 관한 짧은 이야기가 보편의 삶에 적용 가능하도록 스며드는 지점이다.’

롤로토마시(2016), 『Graphic Novel-15』, 피오니북스, 25쪽.


어쩌면 사람은 자신이 이해받은 만큼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르네에게서 절대적인 이해를 경험한 마르슬랭은 조금 독특해보이는 친구들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관대하게 이해할 수 있게된다. 그리고 마르슬랭은 어른이 되어간다. 종종 빨개지는 자신의 얼굴이 여전히 신경 쓰이긴 하지만(86쪽) 자신의 병을 숨기면서 스스로 외톨이를 자처하던 모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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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이 글자가 왜 분홍색으로 씌여졌는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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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러분을 우울하게 만들 생각이었다면, 이제부터 여러분에게 이 두 친구가 자신들의 일이 떠밀려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려 했을 것이다. 사실 삶이란 대개는 그런 식으로 지나가는 법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우연히 한 친구를 만나고, 매우 기뻐하며, 몇 가지 계획들도 세운다.
그러고는 다신 만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시간이 없기 때문이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며,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살기 때문이다. 혹은 다른 수많은 이유들로.
그러나 마르슬랭과 르네는 다시 만났다. 게다가 그들은 아주 자주 만났다.(110-111쪽)


L: 『얼굴 빨개지는 아이』도 비밀스러운 장애를 가진 두 소년이 우정을 맺는 이야기입니다…….
S: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게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서로 모르던 두 소년이 자기네가 가진 장애 때문에 오히려 가까워지고, 세상이야 나 몰라라 하며 함께 커가는 그 이야기를 정말 좋아합니다.

장 자크 상페(2019[2017]), 『진정한 우정』, 열린책들, 62쪽.


만약 이 작품이 변화된 마르슬랭의 모습만을 보여준 채 끝이 났다면, 아니, 르네와 재회한 마르슬랭의 모습을 보여준 뒤 다시 만나지 못 하는 일상적인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고 끝났다면 나는 이토록 이 작품을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르슬랭과 르네는 자주 만난다.(111쪽) 게다가 그들은 여전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있을 수 있었다.(117-119쪽) 이처럼 책은 함께 있으면 결코 지루하지 않은 그들의 관계를 비춰주며 끝난다.(120-122쪽)


어쩌면 삶이란 ‘그러나’와 ‘그리고’가 반복되는 문장일지도 모른다. 그 끝없는 반복에 우리는 종종 무기력해지기도, 시니컬해지기도, 인류애가 사라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나는 또 한 번의 ‘그러나’가 등장하는 이 작품을 사랑한다. 다름으로 인해 상처받은 존재가 같은 상처를 가진 존재를 만나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세상이야 나 몰라라 하며 행복하게 함께 커가는’ 모습을 잔잔히 보여주는 책. 그것이 내가 이 책 속에서 발견한 바로 그 '무언가'이다.


4. 그리고 나의 오랜 친구를 보내며


뒤늦게 그의 작고 소식을 듣게 된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묘한 상실감에 빠졌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멍하게 흘려보낸 뒤 내게 찾아온 것은 ‘그의 작품을 모두 다시 읽어야 한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그의 작품들-프랑스판 책, 다이어리 굿즈, 초판본 등등-을 모두 가져야겠다.’는 집착 어린 강박이었다. 어쩌면 나만의 애도 방식이었을, 며칠간의 독서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해외 주문이 끝난 후. 이 글을 쓰면서 잠잠히 생각해본다. 대체 그는 나의 무엇이었기에, ‘나는 무얼 바라/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나는 무얼 바라/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윤동주, <쉽게 쓰여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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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또 다른 데생 중에, 한 남성이 고전 작품들이 꽂힌 책꽂이에 대고 정중하게 모자를 벗어 인사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작가들에 대한 존경심도 우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S: 나는 그렇다고 봅니다.
L: 절대 만나 볼 수 없을 작가와도 대화할 수 있을까요? 이를테면 이미 죽은 작가하고도요?
S: 나한테는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음악가와도, 화가와도 그렇듯이 말입니다……. 거기엔 우정과 흡사하달 수 있는 교감이 있습니다.(109쪽)
장 자크 상페(2019[2017]), 『진정한 우정』, 열린책들, 109-111쪽.


존경하는 작가들에 대한 존경심도 우정이라고 말할 수 있단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래. 어쩌면 나는 그와 우정을 나누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나를 모른 채 이 세상에 작품들을 보냈겠지만, 그 작품들은 어떻게든 나에게로 다가와 나를 웃게하고, 울게하고, 생각하게 했다. 그도 나도 모르는 사이 우리의 우정은 차곡 차곡 쌓여간 것이다. 매일 이별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 삶이지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존경하고 좋아하던 친구를 또 한 명 잃은 것이다. 그렇게 나는 친구를 보내며 홀로 침전하였구나.


‘절대 만나 볼 수 없을 작가와도 대화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이 진실이라면, 그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국적도, 언어도, 세대도 다르지만, 이따금씩 이 황량한 세상 어딘가에 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왠지 모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했다고. 마르슬랭과 르네가 보여준 살만한 세상에 내 세상도 살만할 것이라 믿으며 견딜 수 있었다고. 지금껏 당신의 작품을 읽으며 느꼈던 행복함과 앞으로 당신의 작품을 읽으며 느낄 행복함에 내 삶이 조금 더 나아졌다고.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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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이런 생각을 해본다네. 누군가가 미소 지으며 길을 건너와서는, 내게 악수를 청하며 말을 거는 거야.
<감사합니다. 당신이 안 계셨더라면 이 황량한 세상에 정말 뭔가가 부족한 듯 아쉬웠을 겁니다.> (24쪽)
장 자크 상페(2018[2001]), 『어설픈 경쟁』, 열린책들, 24-25쪽.

고맙다고. 당신이 없었더라면 이 황량한 세상에 정말 뭔가가 부족한 듯 아쉬웠을 거라고.

나의 오랜 친구 장 자크 상페Jean Jacques Sempe를 보내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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